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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칼럼] 아버지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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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5

‘아버지의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 대구 MBC에 근무하는 한 지기(知己)는 안식년 6개월 동안 무슨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인지 오래 고민한 끝에 이렇게 결심했다고 한다.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그 결단은 전폭적인 호응과 지지를 받았고, 더하여 그의 자녀들도 그리 머지 않은 훗날 ‘아버지의 자서전’을 대를 이어 집필하기로 뜻을 모았단다. 아마도, 틀림없이 ‘부모님 자서전 쓰기’가 그 집안에 대물림되고 가풍으로 자리매김할 게다.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어머니를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무지를 뒤늦게 자각하고 자성의 결심을 굳혔다. 자서전 직접 쓰기와 대필이 흔하고 글쓰기의 한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도 확인하고 새삼 놀랐다며, 자서전 쓰기와 대필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강좌는 물론 대필 회사까지 성업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자서전 쓰기 열풍이 칼럼 소재로 어떠냐는 그의 물음이 마지막 주문이자 타진이었다.

글감 제공은 숙제에 가깝기도 하지만, 그 고마움은 으레 품앗이의 의무를 지우게 된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마침 어제 다 읽은 책,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가 자서전 쓰기에 참고할 만할 것 같아 읽어보기를 강추한다. 목표는 세웠지만 막상 글을 쓰려면 막막한 건 일반인이 건 작가 건 매일반이다. 누구든 모방하고 준용할 수 있는 기존의 텍스트를 찾게 되는 건 글쓰기의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하다.

‘앵무새 죽이기’는 우선 글의 형식이 자전적·고백적 소설 스타일이어서 자서전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고, 1인칭 관찰·참견적 시점으로 주인공 어린이(6~9세) 화자(話者)에 성인인 작가 자신의 관점과 해석을 투사시킨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해, 서술과 묘사 기법은 익혀 차용(借用)하고 변용할 만하다. 물론 어린이의 언어에 어른의 생각을 입히는 바람에 주인공을 ‘애 어른’으로 빚어버린 작위성이 간간이 간파되기도 한다. 그러나 구체성과 보편성, 특수성과 일반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며 조화와 균형을 꾀한 곡예사적 기술(記述)과 구성의 기법은 전지(全知) 작가적 평면성이란 흠결을 가리기에 충분하다.

내용 또한 형식의 정제미 못지않게 감동의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성장소설의 한 특징이 교훈적 메시지를 담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특장과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면, ‘앵무새 죽이기’는 3년에 걸친 한 가족의 일대기를 일화(逸話)와 에피소드로 정교하게 교직함으로써 주제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우리에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다. 음미할 수 있게 하고 얘기가 연속극처럼 기다려진다면 좋은 소설이고 자서전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소설적이거나 드라마틱한 극화가 중요하다는 얘기고, 그러자면 최고로 심혈을 기울여야 할 작업은 일대기적 사건들을 밋밋하게 나열하기보다는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자서전의 형식은 흔한 서술형의 전기문이나 수기 양식뿐만 아니라 소설적 기술 방식 등으로 자유롭고 다양하다. 이러한 형식이 내용을 규제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자서전 또한 독자의 읽기를 전제로 한다는 특성을 감안하면 아무리 자전적이고 회고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물샐 틈 없는 구조와 진실의 틀 안에서 축조돼야 공감을 자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서전이 자기와의 대화에 가깝지만 활자화되는 순간 기록과 증언을 넘어 하나의 문학장르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폴 발레리는 ‘모든 글은 미완성이다’고 설파했다. 아름답고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탁마(琢磨)해야 한다는 말이지만, 글을 쓰기도 전에 지레짐작으로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격려의 경구로 들어도 무방할 듯하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면 책 몇 권은 쓰고도 남는다.’ 우리 어르신들의 생애사는 이 같은 푸념처럼 대부분 파란만장하다. 어른의 일생 재현이란 장정(長征)에 나선 친구여, 직업적으로 간결하고 적확한 글쓰기 소양을 두루 익힌 익은 기자이기에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덧붙여 하퍼 리의 말을 빌리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만 ‘나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주는’ 글(자서전) 쓰기가 되길 바라네.
조정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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