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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대명동 단포식당 손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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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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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韓中日 스타일 절충…‘개화기 웰빙 가정식’ 차림

한·중·일·양식이 총동원돼 탄생한 단포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랄 수 있는 ‘딤채소반’.
동해안 게딱지장비빔밥을 단포식당만의 버전으로 그려낸 신개념 비빔밥 ‘방해화반’.
일본 돈코츠 라멘 같은 느낌의 소면. 소면보다 굵은 중면을 사용한다. 손관우 대표의 친할머니가 좋아하던 ‘난징소바’를 모티프로 탄생하게 된다.
그는 왜 한말 개화기 음식에 꽂혔을까. 대구 남구 대명9동 ‘단포식당’(대표 손관우). 식당 앞에 ‘개화기’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외관이 꼭 개화기 때 식당 같다. 영천시 대호동 제3사관학교 근처 다리 이름이 바로 단포교인데 거기서 상호가 비롯됐다. 거기는 어린시절 손 대표의 최고 놀이터였다. 성장기, 아버지는 지역에서는 꽤 큰 철강회사를 운영했다. 덕분에 식모와 가정교사까지 집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 건설업체가 서울발 대형업체에 먹히기 시작하던 때 아버지 사업도 공중분해가 된다. 제대하고 집에 오니 가계는 벌써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다섯 남매는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장남인 탓이다. 장남의 책임감이 멱살잡지 않았다면 그도 어느 산골에 숨어든 자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포장마차, 잡화점, 막창집 두루 경험
볏짚으로 숙성한 돼지고기 사업까지
새로운 콘셉트에 대한 갈증 더 커져

광복후 日서 귀국한 조모 요리 영감
우동·소바·라멘 등 혼재한 ‘단포탕면’
건축·인테리어도 개화기 가옥 스타일
다국적 양식 혼용 신메뉴 ‘딤채소반’
게딱지장비빔밥 새 버전 ‘방해화반’
무농약·무조미료 원칙의 묵직한 맛

◆처음 시작한 포장마차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었다. 가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가 시작될 무렵 대구 수성구 범물동은 새롭게 개발되고 있었다. 곳곳이 공터였다. 그는 난생 처음 포장마차를 밀고 거기로 갔다. 페인트로 ‘청춘스케치’라는 상호를 삐뚤빼뚤하게 적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절박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예상 외로 벌이가 꽤 괜찮았지만 채 반 년도 안돼 합동단속반에 걸려 전을 걷어야만 했다.

소리꾼 장사익이 노래로 뜨기 전 카센터 직원 등 10가지가 넘는 별별 험악한 직종을 전전했다고 하는데 그도 그 못지않았다. 생수 배달원은 물론 각종 보험상품 중개인, 용역 에이전시 등 닥치는 대로 파트잡에 손을 댄다. 하지만 돈이 안됐다. 역시 자기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5년 중구 약전골목 염매시장 근처에서 생활잡화류 전문점인 D마트를 오픈했다. 일종의 할인잡화점이었다. 면적이 채 30㎡가 안됐다. 하지만 도시철도 공사 때문에 손님이 다 끊겨 버렸다. 설상가상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매장이 등장한다. 역부족이었고 그의 사업은 그대로 망해버린다.

누가 그에게 힘을 내라면서 “먹는 장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귀띔해준다. 갑자기 동공이 커졌다. “그래, 포장마차의 저력을 다시 이어가자”고 다짐한다. 98년쯤 중구 삼덕동 로데오골목 한 귀퉁이에서 ‘제크막창’을 오픈한다. 옷 투성이인 그 언저리에 등장한 첫 고기굽는 식당이었다. 일주일은 그런대로 잘 흘러갔다. 하지만 나중엔 하루 1~2명만 들락거렸다. 아니다 싶어 부동산에 그 가게를 내놓았다. 하지만 너무 후진 가게라 그 상태에선 그 누구도 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제값에 팔기 위해서는 부득불 가게를 회생시켜야만 했다. 배수진을 쳤다. 매일 아침 한 뭉치의 전단을 시내 곳곳을 돌면서 무차별 살포를 했다. 목욕탕은 물론 은행 여직원한테도 “내가 당신 은행을 이용하듯 우리 막창집도 이용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노력 덕인지 사람이 확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대박이 났다. 이제는 가게를 팔 이유가 없었다. 그 집이 대박나자 주변에 라이벌 가게가 많이 생겨난다. 더 맛있는 막창, 삼겹살 가게가 등장한다. 어느 날부터 단골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하도 이상해서 줄서는 집에 가봤다. 자기 집보다 훨씬 맛있었다. 비로소 ‘음식이란 뭐래도 맛’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돈벌이에 너무 매몰돼 있었다. 너무 다급했다. 음식의 본질, 음식의 기본기 등을 깡그리 무시했다고 판단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아이가 그를 감동시킨다. “아빠 식당 고기가 가장 맛있다”며 ‘엄지척’을 했다. 아이는 담임선생까지 가게에 오도록 측면에서 홍보를 하고 다녔다.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또 어금니를 악 물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드는 셰프란 평가를 받고 싶었다. 그날의 다짐이 외식업을 그의 천직으로 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일본가정식 특수 역이용

제대로 된 식당만들기 1탄은 삼덕동 ‘경성상회’다. 그는 그 식당 앞에 ‘한국 대표 전통식당’이란 수식어를 과감하게 달았다. 경성식당은 신개념 돼지고기 전문점. 일단 강원도 북부 산간에 있는 농장 3곳과 계약했다. ‘고기 맛도 절묘한 숙성과학의 결과물’이란 걸 알았다. 축산업자·고깃집 고수들의 뒷이야기를 수집하러 다녔다. 그 와중에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에는 다들 볏짚으로 고기를 묶어 바람 잘 드는 그늘에 걸어둬 부패를 방지했다. 그래서 더 숙성된 맛을 얻을 수 있었다. 청국장, 홍어 등을 숙성시킬 때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볏짚 아닌가. 거기 있는 바실루스균주가 숙성을 도와준다.

좋은 볏짚을 구입해 고기를 볏짚으로 묶고 저온숙성실에 넣고 15~17일 숙성했다. 일종의 ‘반건조숙성법’이다. 요리학원조차 가보지 않은 그가 그런 숙성비법을 알게 된 건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말자는 일종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궁하면 통했다. 길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 숙성법 덕분에 3년전 ‘중소기업기술인증’을 취득하게 된다.

특히 대구에 온 외국 관광객이 그의 집 고기를 좋아했다. 노보텔 투숙객 사이에도 소문이 날 정도였다. 그들에게 이 식당은 ‘코리안 바비큐 레스토랑’으로 통했다. 된장찌개도 다른 집과 다르게 끓이고 싶어 꽃게를 사용해 기본육수를 확보했다.

경성식당의 경험을 토대로 더 새로운 콘셉트의 식당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일본가정식 특수를 역이용하고 싶었다. 일본의 이자카야 같은 한국식 백반집 스타일. 하지만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스토리를 찾던 중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살다가 광복 직후 영천으로 귀국한 조모(추영분)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 평소 할머니가 집에서 잘 해먹던 일본 라멘의 시초로 알려진 ‘난징소바’가 떠올랐다.

1871년 청나라와 일본이 수호조약을 체결한다. 그때 일본으로 건너간 중국 노동자들이 후쿠오카 등지에서 먹던 주카(中華)식 국수였다. 할머니도 일본 시절 그걸 만들어 먹었던 모양이다. 고기육수가 감도는 중면 위에 한국식 불고기를 고명으로 올려주셨다. 우동·소바·라멘 등이 혼재한 듯한 스타일이었다. 그 메뉴를 ‘단포탕면’으로 정해놓고 시제품을 많이 만들어 봤지만 아직 조모가 해주던 그 맛이 안 나와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다.

◆가게도 직접 건축

트렌디한 현재 건축공법 대신 개화기 한국·일본·중국의 건축공법을 시공 때 차용했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보기 힘든 건축 스타일을 갖게 됐다.


단포식당을 지을 때도 한·중·일 건축스타일을 모두 차용했다.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밀정’을 여러 번 보면서 실내인테리어 모티프를 많이 생각해 냈다. 일본식 창호, 한국식 장지문, 중국 지방 상인의 숙소인 ‘객잔(客棧)’ 특유의 계단…. 꼭 개화기 가옥을 닮았다. 박가분, 은단, 일본 맥주와 청주 등 일제강점기 주요 신문광고를 벽에 붙여 놓았다.

단포식당의 기본 메뉴라인은 개화기가정식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각종 문헌을 훑어봐야만 했다. 일단 한·중·일 세 나라 음식의 기운을 하나로 합쳐봤다.

이 집다운 메뉴는 단연 ‘딤채소반’이다. 이건 한·중·일·양식이 혼용돼 있다. 묵은지에 이어 중식의 맛을 위해 두반장과 굴소스를 이용했다. 일식스러움을 위해 돈가스를 집어넣었다. 프리미엄급 돼지 등심을 유통하는 도드람 포크와 손을 잡았다. 가급적 두툼하게 썰어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다. 그다음 이탈리안 파스타의 맛을 위해 그린홍합으로 스튜소스를 빼고 거기에 올리브유를 첨가했다. 여기에 토마토홀을 적당량 투하한다. 그리고 소면보다 굵은 중면을 중앙에 배치했다. 다른 셰프들이 좀처럼 시도해보지 못한 다국적 신메뉴 하나가 대구에서 탄생한 것이다.

여기 오는 손님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방해화반’이다. 일명 ‘게딱지장비빔밥’이다. 그가 동해안 대게집으로 가족나들이 갔다가 가장 인상적으로 먹은 게 게딱지장을 이용해 만든 비빔밥이다. 게딱지장을 이용한 돈부리 같은 음식 개발에 나선다. 이를 위해 골동반에서 시작된 한국 비빔밥의 역사를 대충 추적해봤다. 단포식당의 대표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선 항상 이렇게 문헌조사부터 해야만 했다. 방해는 ‘빵게’의 고어란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게딱지장은 2~3일 사용할 양만 미리 확보해둔다. 맨밥 대신 버섯유부밥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미역밥을 했는데 비린 맛이 난다고 해서 교체했다. 두부튀김, 부추절임, 묵은지, 오이채, 피망채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그는 셰프만의 고집도 중요하지만 단골의 입맛도 고려하는 게 예의라 생각한다.

온면도 상당히 개성적인 맛을 유지한다. 난 그걸 먹었을 때 언뜻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집으로 불리는 평산옥의 돼지국밥이 생각났다. 바로 ‘돈코츠라멘’ 스타일인데 돼지사골육수에 소면을 넣은 것이다. 이 집의 온면은 중면을 사용한다. 제주고기국수와 일본식 돈코츠라멘, 그리고 중국식 우동 등을 절충해놓은 것 같다. 육수는 가스오부시 대신 디포리를 사용해 뽑아낸다. 강원도 감자전, 감자만두, 조랭이만두 등 5가지 분식류는 강원도 봉평 영농조합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것을 사용한다. 가지튀김은 단포만의 역발상이 돋보이는 메뉴다. 하지만 개업 초창기에는 보수적 입맛을 가진 대구사람들로부터 ‘무국적인 맛’으로 폄훼당했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게 손님들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전체 식재료 배합비율을 조금씩 조정해나갔다. 묵은지, 토마토홀의 양도 조절했다. 묵직한 맛을 위해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디포리와 다시마를 사용한 육수를 가미했다. 지금은 자릴 잡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그의 롤모델인 할머니 사진, 그리고 흑백 가족사진액자가 걸려 있다. 흔한 게 음식이라지만 이 집에선 특별한 자존감 같은 게 조금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남구 현충로 61. (053)657-1855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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