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상주시의회, 다수의 조용한 음성에 귀 기울여야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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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8 09:29  |  수정 2024-05-09 07:25  |  발행일 2024-05-09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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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수기자〈경북부〉

국가든 자치단체든 대규모 시설을 설치하거나 이전할 때 크고 작은 홍역을 치른다. 그것이 선호시설이거나 혐오시설일 때 더욱 그렇다. 선호시설에는 핌피 현상(Please In My Front Yard)이, 혐오시설에는 님비현상(Not In My Backyard)이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청이나 시청 같은 선호시설의 경우 누구든 자신의 이웃에 위치하기를 바라게 된다.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한다며 그 입지를 여론조사나 주민투표로 결정하면 어떻게 될까? 더욱이 특정 지역 A를 선정해서 투표에 붙인다면? A지역 주민들은 찬성, 나머지 B·C·D 지역 주민들은 반대 성향을 갖게 되지 않을까? B·C·D 지역 중 한 곳을 택해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지역사회의 발전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 이성적인 사고 등은 끼어들 여지가 크지 않다.


쓰레기 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을 놓고 투표에 붙인다면 A·B·C·D 지역에서 선호시설의 경우와 반대의 의사가 표출될 것이다.


선호시설이나 혐오시설의 입지를 주민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난센스다.
상주시의회는 지난 7일까지 열린 임시회에서 상주시청 신청사 건립 용역비를 모두 삭감했다. 청사이전신축에 주민여론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시는 2022년 7월 신청사 건립 추진을 시작, 지난해 5월 입지를 낙양동 구 잠사곤충사업장으로 결정했다. 같은 달, 청사건립과 입지선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체를 구성하여 시민들을 상대로 신청사 건립에 대해 찬반 여론조사를 하고 강영석 시장 주민소환을 추진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청사이전신축 반대 의견(49.4%)이 절반을 넘지 못했으며, 주민소환은 주민소환투표 청구서명이 청구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무산됐다. 이는 청사이전신축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두 번 물어본 셈이다. 두 번의 과정을 통해 시민 절반 이상은 청사이전신축을 반대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또 특정 지역, 구 잠사곤충사업소를 입지로 정해 놓고 실시한 여론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대가 절반을 넘지 않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핌피현상은 어디로 갔을까? 상주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 상주시의회가 신청사 용역비를 삭감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와 고충이 있었다. 적지 않은 반대 여론에 대한 집행부의 소극적이고 미숙한 대응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회가 다수의 조용한 음성보다 소수의 높은 목소리에 귀를 더 열어 놓은 결과가 아닌가 싶어 아쉽다.
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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