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규 시인
호수의 표면은 햇빛 아래 눈부신 물비늘로 가득합니다. 버스킹하는 사람들과 그 앞에 둘러선 한 무리의 사람들, 재잘거리는 연인들과 느리게 걷는 노부부와 오월의 바람과 초록 잎사귀들, 저마다 오월의 호숫가에서는 아름다운 한 장의 풍경이 됩니다. 지금 이 시간은, 남은 생애의 처음이고 여기 이 순간은, 난생 처음 맞는 우주의 순간입니다. 뺨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과 낭만 가득한 색소폰 소리, 그리고 잠시 젖어보는 먼 그대 생각. 스쳐가는 이 순간은 다시 올 리가 없겠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사는 셈입니다. 시간은 매 순간 미래로 가고 우리도 매 순간 미래로 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호수는 지금 백만 개, 천만 개의 물결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물결에게 윤슬이라는 고운 이름이 또 하나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작년 어느 날입니다. 윤슬윤슬 발음하면 입안에서 향기가 났고 윤슬윤슬 되뇌면 내 감성의 저 아래에 있던 깊은 우물에서 불쑥 시의 한 행이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윤슬이라는 예쁜 이름 때문에 잠시 행복해 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처음이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때 설레고 각별하다 할 수 있겠는데 예를 들어 첫사랑, 입학식, 첫 출근, 그리고 내게는 윤슬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던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호숫가의 산책로에서, 태양이 이글거리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찻집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사소하고 사소한 모든 일상 속 지금, 여기, 이 시간은, 언제나 남은 생애의 첫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우주적이고 운명적인 이 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요. 삶은 또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요.
햇빛과 바람과 수면이 만나 천만 개의 각도에서 저토록 반짝이는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윤슬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삶의 모든 순간 만난 자연과 시간과 수많은 사상에 의해 우리도 성숙되고 단단해질 것입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면서 밀려오고 또 쓸려갑니다. 삶은 늘 가변적이고 고저장단이 있겠지만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렵다면, 불가항력인 미래가 두렵다면, 주춤거리거나 포기하거나 뒷걸음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는 지금 푸르고 싱싱한 호수의 시간, 호수는 한시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매 순간 찰랑이면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냅니다. 호숫가의 트럼펫 소리 앞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 있습니다. 음계를 딛고 훌쩍 한 시절이 지나갑니다. 이렇게 시간은 매 순간 미래로 가고 우리도 매 순간 미래로 갑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내면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다시 우리는,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유난히 서툴렀던 내 삶을 응원하면서 스스로 다독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겐 모두 응원하고 다독이고 싶은 지난한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호수는 늘 처음인 듯 거기 있겠지만 벤치 또한 거기 그대로 있겠지만 당신의 얼굴이 산산이 부서지는 일몰의 풍경 아래, 사람들은 아주 객관적으로 오월의 주말 하루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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