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정 쿤스트하우스 대표
언젠가 한 아이가 가족 그림을 그려 가져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입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물었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
아이는 한참 크레파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은 원래 말을 잘 안 해요."
순간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서툰 그림이었지만 어떤 설명보다 정확했다.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더 깊이 고립되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고 언제든 서로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롭다고 말한다. 관계는 연결되어 있는데 마음은 연결되지 못한다.
예술심리를 공부하며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색과 선으로 마음을 드러낸다. 어른의 눈에는 단순한 그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마음의 언어다.
상담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쉽게 "왜 그랬니?"라고 묻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은 설명보다 변명을 먼저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신 "어떤 기분이었어?" "그 순간 마음은 어땠어?"라고 묻는다. 그러면 아이는 정답보다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꺼내기 시작한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말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그 마음이 이해돼."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사람은 먼저 이해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 진심으로 바라봐 주었다는 경험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예술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 놀라운 순간을 만난다. 말이 거의 없던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다. 목소리가 작고 말이 서툴러도 괜찮다. 아이는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연다. 판단하지 않고 들어준다는 믿음이 생길 때,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은 공감의 언어이기도 하다. 음악 한 곡에 위로받고, 한 편의 글과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문다. 그 안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따뜻한 발견을 만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은 이해받는 순간 비로소 외로움에서 한 걸음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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