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바다 위에 그어진 선 하나

  •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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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09 14:59  |  수정 2026-06-10 09:06  |  발행일 2026-06-10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지은 CFA건축사사무소 대표

바다 위에 선 하나가 그어져 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찾은 포항의 한 방파제에서 문득 든 생각이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바다를 바라보던 평범한 시간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위성지도를 펼쳐보았을 때 그 풍경은 다르게 다가왔다. 넓고 푸른 바다 위에 길게 뻗은 방파제는 마치 누군가 연필로 선 하나를 그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자연은 의외로 단순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면(面)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위에 가느다란 선 하나가 더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그 선이 단순한 구조물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 위를 걷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선 하나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방파제는 언제부터 사람들의 장소가 되었을까. 방파제는 원래 파도를 막고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그 위를 걷고, 머물고, 바다를 바라보며 저마다의 시간을 쌓아간다.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어느새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장소가 된 것이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풍경과 장소는 다르다. 풍경은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장소는 머무는 공간이다. 아름다운 바다는 그 자체로 훌륭한 풍경이다. 하지만 방파제라는 선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만들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낸다. 풍경이 장소로 바뀌는 순간이다.


좋은 건축은 자연보다 앞에 서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더 잘 느끼게 한다. 강변의 산책길, 숲속의 데크길, 전망대에 이르는 오솔길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더해진 작은 개입이 사람들에게는 자연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 된다. 때로는 거대한 건물보다 이런 장치들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과 자연 사이의 거리를 조금 좁혀주는 것, 그것이 좋은 건축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건축은 선을 긋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 말이다. 포항의 방파제는 바다를 바꾸지 않았다. 그저 선 하나를 더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선 위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이 쌓여간다. 그날 내가 바라본 것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선 하나, 그리고 그 선이 만들어낸 장소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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