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마음에도 벤치가 필요하다

  •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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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30 20:31  |  발행일 2026-08-31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공원의 벤치는 이상한 가구다. 돈을 내지 않아도, 이름을 적어 둘 필요도 없다. 먼저 앉았다고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슬며시 몸을 옆으로 옮긴다. 그 작은 움직임으로 한 사람의 자리가 둘의 자리가 된다.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다가왔다. 나는 옆의 가방을 무릎 위로 옮겼다. 노인은 빈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잠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다 노인이 먼저 일어섰다. 잠깐의 동행이었다. 그가 떠난 뒤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내어준 것은 겨우 한 뼘이었다. 사람 사이의 많은 일도 그 한 뼘에서 시작된다. 문을 잡아 주고, 좁은 길에서 먼저 비켜서는 일. 사소하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편안하게 한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면서도 서로를 모른 채 지나치는 곳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이름을 모르고, 같은 버스를 타도 얼굴만 익숙하다. 가까이 있으면서 멀리 살아간다. 그래서 작은 배려가 더 따뜻하다.


벤치는 그런 도시를 닮았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의 것도 아니다. 먼저 온 사람이 옆으로 움직이면 늦게 온 사람도 앉을 수 있다. 자리를 나눈다고 내 자리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 사람의 온기가 더해진다.


마음에도 자리가 있다. 내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올 틈이 없다. 내 사정만 앞세우면 타인의 형편은 보이지 않는다. 관계가 멀어지는 까닭도 상대가 앉을 자리를 남겨 두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 주는 것, 생각이 다르다고 곧바로 밀어내지 않는 것, 늦은 사람을 기다려 주는 것. 모두 마음속 벤치에서 한 뼘 옆으로 움직이는 일이다. 그 한 뼘은 작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우리는 좋은 세상을 거창한 변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하루는 작은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무거운 짐을 든 사람에게 문을 열어 주고, 힘든 사람 곁에 잠시 머무는 일.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한 사람의 하루에는 따뜻한 흔적을 남긴다.


공원을 나서다 뒤를 돌아본다. 조금 전 내가 앉았던 자리에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아이는 두 다리를 흔들고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벤치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내 자리를 모두 내주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앉을 수 있도록 조금 옆으로 움직여 주는 일이다.


마음에도 벤치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쉬기 위한 자리만이 아니라 누군가 지쳐 다가왔을 때 말없이 한 뼘 비켜 줄 수 있는 자리.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남겨 둔 작은 빈자리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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