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준영 중부지역본부 부장
어릴 적 대구는 완벽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네 또래들과 덜컹거리는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대구역에 내릴 때면, 눈앞에 펼쳐진 빌딩숲만 봐도 입이 떡 벌어졌다. 낙동강에서의 어설픈 물장구와는 차원이 다른 스포츠센터 수영장, 교동시장의 신기루 같던 돈가스, 놀이공원과 백화점이라는 신세계 앞에서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당시의 대구는 그 자체로 꿈이었고, 머지않아 도달할 미래의 이정표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찬란했던 동경의 도시 대구가 '낙후와 정체'의 그늘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 청년은 떠나고 도시의 역동성은 급격히 옅어졌다. 유년의 기억 속에 각인된 대구의 위상과 오늘날 지역민이 마주한 팍팍한 현실 사이의 간극은 깊은 개탄을 자아낸다.
취재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역시 이 답답함의 연장선에 있다. "또 새로운 계획입니까. 지난번 약속은 어떻게 됐습니까." 시장 상인도, 공장 대표도, 농민도, 청년도 한목소리로 피로감을 토로한다. 비전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은 남부권 산업 지도를 재편할 국가적 대역사(大役事)이며,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지방분권 시대를 선도할 획기적 모델이다. 영호남을 잇는 달빛철도와 AI·로봇, 반도체, 미래모빌리티, 이차전지로 이어지는 첨단 산업 클러스터 역시 지역의 생존이 걸린 핵심 과제다.
문제는 사업의 필요성이 아니라 추진력의 부실과 정부의 차별적 지원이다. 대구경북의 대형 현안들은 재원 조달과 국비 융자 지원 미반영이라는 문턱에 막혀 발목이 잡혀 있다. 반면 타 지역 현안 사업들은 정부 협의체 가동과 전폭적인 국비 지원을 발판 삼아 속도를 낸다. 국책사업의 짐을 지역에 덤터기 씌우는 형국이니, 지역민 사이에서는 '정부 재원 소외'라는 쓰라린 역차별 논란과 회의론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국가균형발전은 거창한 구호나 지방의 각자도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구와 경북이 하나로 묶여 시너지를 내는 동반성장의 청사진을 그렸다면, 정부 역시 그에 걸맞은 정책적·재정적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특정 지역에만 온기가 도는 균형발전은 허구다. 정부가 묵직한 책임감으로 재원 지원의 물꼬를 터주는 것이야말로 멈춰 선 대구경북의 성장 엔진을 돌릴 첫 번째 열쇠다.
물론 대형 국책사업만으로 지역이 살아날 수는 없다. 청년 일자리, 안심 보육, 골목경제, 교통과 의료 서비스 같은 생활밀착형 민생 정책이 톱니바퀴처럼 함께 돌아가야 한다. 거대 국책사업과 민생 정책은 경합 관계가 아니라 함께 굴러가야 할 수레의 두 바퀴다.
대구경북은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던 위대한 저력이 있는 도시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설레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국가 발전의 중심에 섰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고 이미 세운 비전을 완수해 내는 강력한 실행력이다. 미래는 수많은 계획서 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약속을 끝까지 지켜낸 실천의 시간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정부는 차별 없는 적극적 재정 지원으로 국가균형발전의 약속을 이행하고, 대구와 경북은 흔들림 없는 동반성장의 추진력으로 500만 시도민과의 약속을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어릴 적 비둘기호 열차 창밖을 바라보며 가슴 부풀렸던 그 동경과 설렘은 결코 지나간 추억이 아니다. 멈춰 선 엔진을 다시 강력하게 재가동할 때, 대구경북의 내일은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에게 가슴 뛰는 희망과 당당한 자부심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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