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체험을 하루 앞둔 17일 밤, 저녁을 굶고 집 근처 학교운동장을 돌았다. 위 아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들으며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머릿속엔 2010년 에티오피아에서 만났던 와바루 소년이 떠올랐다. 여덟 살 와바루는 매일 노란 물통에 10ℓ나 되는 물을 가득 담아 어깨에 진 채 8㎞나 되는 험한 산길을 걸어 다녔다. ‘와바루에 비하면 이건 족탈불급이지….’ 10바퀴를 돌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조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수박 생각이 간절했으나 하루 종일 굶을 것을 대비해 일찍 잠을 청했다. 평소 같으면 새벽이슬을 맞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새벽까지 노트북에 얼굴을 박고 웹서핑을 하는 남편이 갑자기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하니 아내가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다.
![]() |
![]() |
![]() |
| 지난 18일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북동중학교에서 열린 기아체험24시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점심식사 대용으로 난민죽을 먹고난 뒤(위쪽), 난민촌체험장에서 마대로 옷을 만들고(가운데), 구슬꿰기를 하고 있다.(아래쪽) |
18일 아침 공복에 물을 한잔 들이켜고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 북동중학교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으니 수성구에서 달성군까지 30㎞가 훨씬 넘는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북동중학교 초입에 다다르자 취재 갔다 가끔 들르던 뚝배기 해장국집이 보인다. 뱃속에서 “꼬르르”하는 소리가 들렸다.
북동중학교 강당에 들어서자 200여명의 학생과 일반참가자들이 기아체험에 앞서 ‘지구마을 공동체 만들기’라는 주제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월드비전의 활동과 빈곤국가에 대한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함이다. 교장실에서 월드비전, 학교 관계자와 인터뷰를 했다. 중간에 과일과 쿠키, 차가 나왔지만 모두가 손을 대지 않았다.
기아체험의 세계시민교육체험프로그램은 크게 난민걷기, 난민촌체험, 빈곤 및 노동체험, 아동보건 체험 등이다. 캠프참가자는 팀을 나눠 인솔자와 함께 순서대로 각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참가자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운영본부에서 제공하는 식수 외 음식물을 먹을 수 없다.
![]() |
| 물이 든 대야를 이고 난민걷기 체험을 하고 있는 박진관 기자. |
복도에 마련된‘난민촌’
좁고 낮은 그물텐트서
마대자루로 옷 만들고
시멘트바닥서 새우잠
물 흘리지 않으려 조심
학생들 팔·다리 통증…
미숫가루 탄 난민죽에
참가자 “꿀맛” 들이켜
에어컨·전등 끈 채로
구슬꿰기 노동체험…
상당수 학생 행사 이후
“굶주림 고통 이해 계기”
부당 노동엔 안타까움
기부하는 이유 공감도
먼저 난민촌 체험장으로 향했다. 난민촌 체험은 34℃의 불볕더위라 운동장에서 실시하지 못하고 교실 복도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는 좁고 낮은 그물텐트 속에서 마대자루로 옷과 이불을 만들었다. 옷에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거나 쓰고 싶은 글귀를 써도 됐다. 포대기로 만든 이불을 덮고 시멘트바닥에서 5분 동안 새우잠을 자는 체험도 했다.
이어 난민걷기체험 순서다. 난민걷기는 지구촌 난민의 고통을 느끼며 운동장이나 학교주변을 5㎞ 정도 걷는 프로그램이다. 방법은 마대옷을 걸치고 플라스틱 대야에 물을 담아 두 손으로 받친 채 걸어가야 한다. 중간에 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걷는 도중 그물로 만든 터널 통과, 맨발걷기 코스도 있다.
길을 걷다 항아리나 물동이를 지고 맨발로 걸어가던 에티오피아 여인이 떠올랐다. 당시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걸어갔다.
식수를 배급받아 운동장을 2바퀴 돌고 코스를 따라 이동했다. 투덜거리는 학생들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중간 중간 인솔자가 물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팀원을 독려했다.
길을 걷던 김태현군(북동중 2)은 “너무 덥고 짜증이 나요. 마대옷이 까끌까끌한 데다, 다리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요”라고 토로했다. 김군에게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매일 이렇게 8㎞ 이상을 걷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니 “정말요”라면서 씩 웃어보였다.
행사에 참가한 심선아씨(43·송일초등 교사)는 엄마로서, 교사로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체험하고 싶어 두 자녀와 같이 참여했다”며 “나눔과 봉사정신 없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심 교사는 2년째 말레이시아의 한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인솔자인 허지연씨(23·계명대 영문학과)는 월드비전 비전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비전메이커는 올초 월드비전이 조직한 대학생자원봉사단이다. 허씨는 “졸업 후 PR전문가가 되고 싶다”며 “첫 봉사활동인데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맨발로 계단을 오르던 홍소영양(북동중 3)은 “우리가 편하게 살아가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줄 몰랐다”며 “매달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에 기부금을 낼 때 내 돈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귀찮고 짜증이 났는데, 이제부터 가장 먼저 돈을 낼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참가자는 들고 갔던 대야의 물로 발을 씻었다.
폭염에 촬영하랴, 메모하랴, 행군까지 하다보니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두끼를 굶어서 그런가. 약간 어질어질했다. 하루를 쫄딱 굶기는가 생각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주최측은 허기진 참가자에게 난민죽을 제공했다. 미숫가루를 탁구공 만하게 뭉쳐 1회용그릇에 담아주었다. 한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꿀맛이다. 참가자도 모두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음 체험순서는 빈곤체험이다. 먼저 비전메이커로부터 아동이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줄로 구슬 꿰기와 성냥곽에 성냥개비를 넣는 노동을 했다. 궁벽한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에어컨도 끄고 전등도 껐다. 참가자는 교실바닥에 앉아 팔찌를 만들거나 화약 냄새를 맡으며 노동체험을 했다.
![]() |
| 기아체험24시간에 참여한 북동중 학생들이 대야에 물을 담아 이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
구슬을 꿰던 정소현양(북동중 2)은 “구슬 팔찌 10개에 100원밖에 못 받는다고 하니 너무 불쌍해요. 20분만해도 힘든데 매일 10시간 이상 이같이 단조로운 일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나는 행복한 편”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참가한 현우성군(동평중 1)은 “그냥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게 확실히 다르네요”라면서 “나중에 생명공학 연구원이 돼 세계 빈곤아동을 구제하고 싶어요”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행사를 끝마칠 시간(오후 5시)이 다가오자 허기와 졸음이 동시에 몰려왔다. 속이 타는 느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타는 목마름’이 바로 이런 건가. 물만 계속 마셔대니 위장이 시위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순서는 아동보건체험이다. 아동보건캠페인은 전 세계 구호단체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5세미만 아동사망률을 감소시키기 위해 함께 벌이는 운동이다. 참가자는 온몸으로 숫자 ‘5’를 만들거나 모자이크로 ‘5’를 만드는 놀이를 하며 기아퇴치 운동에 동참했다.
행사를 마칠 즈음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오후 5시가 되자 참가자는 월드비전 직원과 비전메이커, 대구백화점 한마음봉사단원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강당으로 집합했다. 이어 기아체험 소감문을 작성했다.
장하늘군(북동중 2)은 “씻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몰랐다”며 “집에 가면 일단 잠부터 푹 자고 싶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안준호 교장은 “여러분 모두 장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참가자의 미소 띤 얼굴이 모두 환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단독인터뷰] 한동훈 “윤석열 노선과 절연해야… 보수 재건 정면승부”](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603/news-p.v1.20260228.8d583eb8dbd84369852758c2514d7b37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