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경북, 프라이드 다문화 .7] 결혼이민여성들에 일자리 제공하는 ‘우리랑’

  • 이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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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03   |  발행일 2013-09-03 제12면   |  수정 2013-09-03
일자리 낳는 ‘착한 기업’…희망 품는 둥지로
지난해 ‘사회적기업’ 지정…축협 등 유통기업 손잡고
상호 윈윈…자립 큰 도움
“제품 생산에 노동력 활용” 지역기업 러브콜 쏟아져
수익·공익 가치 조화 추구
20130903
지난달 30일 영주시 하망동 영주시다문화희망공동체 작업실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당당한 삶의 시작은 취업에서”

지난달 30일 영주시 하망동의 한 4층짜리 건물. 이 건물 지하에는 사회적기업 영주시다문화희망공동체(이하 우리랑)가 지난해부터 둥지를 틀었다. 우리랑 식구는 모두 11명. 한국인 대표인 배순희씨와 업무 파트너 임경화씨,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중국과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출신 결혼이민여성이다.

사무실 입구 문을 열자마자 독특한 광경이 펼쳐졌다. 결혼이민여성들이 나라별 문화와 전통을 바탕으로 제작한 각종 장신구와 회화, 장식 인테리어가 한편에 전시장 형태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일과 문화·예술 병행 시너지 효과

이들 예술품은 1년에 한 번 지역 축제 때 선보여 고가에 팔리면서 우리랑의 매출 증대에 도움을 준다. 우리랑은 또 결혼이민여성들의 모국 문화와 이미지를 상징화한 그림을 손수건과 티셔츠에 입혀 판매용으로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결혼이민여성들에게는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표지만, 문화·예술을 통해 정체성을 갖고 한국인과 통합하려는 노력 역시 존중받아야 해요. 사회적기업이다 보니까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익사업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과제랍니다.”

배순희 우리랑 대표는 일과 문화적 가치가 양립하며 시너지 효과를 낳는 다문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2007년 영주에서 다문화 출신 여성들의 사랑방을 만든 게 오늘날 우리랑의 모태가 됐다. 이후 배 대표가 만든 공간은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한 사랑방 구실을 했다.

그러나 단순히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 과정에서 힘겨운 점을 서로 공유하는 것을 벗어나 다문화 구성원들을 위한 자립이 절실했다. 한국에 들어와 시댁 식구와 남편, 자녀 뒷바라지에만 몰입하다 보면 아무래도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랑은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 홀로 외로이 힘없이 살아가는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실낱같은 희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랑이 추구하는 가치는 수익과 공익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결혼이민여성들이 일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배 대표가 이끄는 우리랑의 기업 운영 철학이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으면서 배 대표는 이 같은 철학을 평생 간직하며 우리랑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사회적기업 존립 위해 매출 중요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평가하는 핵심 요소는 매출액. 배 대표는 이런 점에 착안해 지역기업, 각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취약계층인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각오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은 우리랑에 그대로 적용됐다. 우리랑 내부의 모든 물품은 배 대표가 따로 자비를 들이지 않았다. 대부분 지역사회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의 자활과 자립을 위해 기증한 것이다. 기증 받은 물품은 모두 결혼이민여성들의 예술적 감성을 살린 예술품으로 재탄생해 우리랑 내부를 환히 밝히고 있다. 우리랑의 사무실 공간 역시 지역 독지가로부터 기증받았다.

여기에 다문화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이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양질의 제품을 만들자는 제안이 지역 기업인들로부터 쏟아졌다. 대표적인 곳이 선일일렉콤. 영주지역의 조명 제품 전문 생산 업체인 선일일렉콤의 고위 임원으로부터 임가공 형식으로 작업 물량을 줄 테니 납품 기일에 맞춰 달라는 것.

당장 생산공정에 따라 조립하는 능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였다. 이때부터 배 대표는 3명의 결혼이민여성과 함께 3주간 선일일렉콤의 한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밤낮으로 일하며 조립 기술을 배웠다.

중국 출신의 고리언씨는 “그동안 우리랑에서 강의와 예술 작품 활동에 참여했지만 선일일렉콤에서의 기술 전수 경험은 인상 깊었다”며 “기술을 배우고 우리랑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다시 조립 기술을 가르치니 흐뭇했다”고 말했다.

◆유통기업, 축협과 손잡고 상생모델

우리랑에서는 모든 프로세스가 협업으로 이뤄진다. 선일일렉콤의 LED 조명등 제조 공정에는 4명의 결혼이민여성이 부품 점검과 조립, 작동 확인, 불량테스트, 포장, 운반 등의 과정을 함께한다. 나머지 5명의 결혼이민여성 역시 LED 조명등의 조립 후 성능 검사와 포장 상태 확인에 열중했다.

이런 일거리는 사회적기업인 우리랑의 안정적인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 또 직원인 결혼이민여성들에게 보너스와 각종 수당을 주는 데도 부담을 던다. 우리랑에서 일하는 결혼이민여성들은 주5일제가 원칙이다. 주말에 일을 하면 반드시 평일에 대체 휴무를 준다. 하루 8시간 근무는 철칙이다. 근로기준법만큼은 철저히 지켜 글로벌 스탠더드를 보여준다.

우리랑은 지역 유통 대기업인 홈플러스, 축협과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풍기 인견의 판매와 마케팅을 우리랑이 맡고 홈플러스는 매장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 사회적기업인 우리랑의 매출액 증대에 도움을 주겠다는 사회적 공헌의 일환이다.

영주축협 역시 자체 생산한 한우고기 육포와 곰탕, 스테이크의 판매를 우리랑에 맡겨 매출액을 높이는 데 상호 윈윈하기로 했다.

이 같은 다문화 관련 사회적기업의 케이스에 주목,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도 앞서 2010년 우리랑을 찾아 성공 사례를 연구하고 전폭적인 지원 약속을 받았다.

배 대표는 “다문화 사회적기업이 자립하는 데 구성원의 노력과 의지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과 정부의 협력과 상생 마인드도 필수”라면서 “우리랑이 앞으로 더욱 커 나가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의 상징이 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동참,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에도 사회적기업 지정 늘 듯

현재 전국의 인증 사회적 기업은 774곳. 경북에는 45개 사회적기업이 영업 중이다. 대부분 취약계층에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영업활동과 이윤을 지역공동체에 다시 투자하는 기업이다. 이 가운데 다문화 관련 사회적기업은 경북에는 영주 우리랑과 구미 다문화통번역센터 등 두 곳이다. 활동 실적에 따라 현재 다문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세 곳도 조만간 우리랑처럼 정식 사회적기업의 지위를 갖게 될 전망이다.

장흔성 경북도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해 대학 진학의 문을 넓히고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이자 앞으로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적 현실에 다문화 구성원과 한국인 간 통합효과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글·사진=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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