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수 국회 기재위원장 ‘한국경제의 진단과 해법’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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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31 07:26  |  수정 2015-08-31 07:30  |  발행일 2015-08-31 제3면
“불황터널 탈출 위해선 ‘내수시장 버팀목’ 중산층 두껍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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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 “한국경제는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했다”며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한국경제 실태와 이를 헤쳐나갈 해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여전히 불확실한 궤도를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 일자리 부족, 경제구조의 고착화, 양극화란 답답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상이한 진단이 펼쳐지고 있지만, 딱히 정답도 없는 상황이다. 정희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영천)이 30일 영남일보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한국경제를 진단했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포스코경영연구소 경영전략연구센터 센터장을 지냈다. 경제전문가로서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작금의 한국경제 실태와 이를 헤쳐나갈 해법을 들어봤다.


◆ 韓, 이미 日‘잃어버린 20년’ 진입

韓 경제상황 日사례와 비슷…불확실성 예측·극복이 관건

“예측 가능한 리스크(Risk)가 가져올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Uncertainty)에 대비해야 합니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려진 무지(Known Unknowns)’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 성장률을 높이고, 중산층을 두껍게 해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알려진 무지’란 영향력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현실화가 불확실한 위험을 가리키는 말로 2002년 2월 도널드 럼스펠드 전 장관이 이라크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테러리스트에게 제공했는지를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표할 때 쓰이며 유명해졌다.

2013년 9월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축소, 유로존 주요국들의 정치적 불확실성, 중국의 소비 주도 성장노선변화 등의 알려진 위험요소들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며 이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중산층 위기와 사회·경제 양극화 심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잠재성장력 저하, 그리고 수출 부진 등 한국경제는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했다고 본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1980년대 일본과의 무역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던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엔화의 가치를 높이고 달러화 가치를 낮추기로 각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과 합의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라며 “이 합의로 엔화가 100% 정도 올라 일본 상품의 가격이 세계시장에서 두 배나 상승하게 됐다”고 상기시켰다.

당시 일본기업들은 엔고(高)에 대비, 내수에 더욱 신경을 쏟는 한편 반도체와 컴퓨터 등 첨단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겨 환율변동 위험을 피해갔다. 그 결과 플라자 합의 이후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이전보다 오히려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로 인해 일본 국내에 넘쳐난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해일처럼 몰려가며 일본의 ‘대(大) 버블’이 생겼다.

정 위원장은 “일본의 버블 붕괴는 90년대에 있었고, 그 여파가 20년 넘게 지금까지 이어지며 일본 경제를 불황의 늪으로 빠뜨려 버린 것”이라며 “플라자 합의로 인한 엔화 상승이 가져올 수출 부진이란 예측 가능한 리스크는 훌륭히 극복했지만, 그 결과 야기된 ‘버블 현상’이란 불확실성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도 이 같은 불확실성을 얼마나 예측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란 의미다.


◆ 가계 부채·사회경제적 양극화

글로벌 금리인상땐 부채 큰 위험, 총량 관리 등 모니터링 강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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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위원장은 “그럼에도 일본 경제가 무너지지 않고 20년이나 버티다 최근 ‘아베노믹스’로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는 것은 튼튼한 중산층이 일본 내수시장의 버팀목이 돼 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60년대 황금기를 구가했던 일본은 70년대부터 부자나라의 반열에 오르며 1억3천만명의 인구 중에 1억명이라는 중산층이 형성됐다. 이른바 ‘1억 총중류’다. 이들이 일본 내수시장의 소비를 견인하는 한편 일본 국채를 사들이면서 일본이 장기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는 토대가 됐다.

정 위원장은 “상류층은 자신의 소득 중에서 아주 일부만을 소비하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 또는 투자를 한다. 하류층은 소득이 부족해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부채를 늘려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며 “중산층이 많은 국가일수록 경제가 건강하다. 중산층만이 건강한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사상 최대치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사회·경제 부문의 양극화가 중산층의 목을 조르면서 한국 경제의 체력도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중산층이었다가 지난해 저소득층으로 미끄러진 비율은 10.92%로,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불과 1년 동안 저소득층이 된 사람이 100명 중 11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정 위원장은 특히 가계 부채에 대해 정부와 다소 다른 시각을 보였다.

1천130조5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 중인 가계 부채에 대해 정부는 고소득 차주(借主)가 가계부채의 70%를 차지해 상환능력이 양호한 점, 금융자산이 금융부채 대비 2배 이상 많고 부동산 등 실물을 더한 총자산이 총부채의 5배 이상이어서 담보력이 양호한 점 등을 이유로 위험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정부 주장대로 고소득 차주가 가계부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대출이 많아도 소비를 줄이면 버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해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며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미국 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글로벌 금리인상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경우, 기존 부채가 고금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가계에도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 5건의 개정안을 내놓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개정안은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현황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도록 대출자의 개인별 부채와 소득, 자산 등 정보를 수집 및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국은행은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계부채의 총량을 관리하는 한편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등 가계부채 취약부문에 대한 미시적 분석과 더불어 모니터링도 강화할 수 있어 맞춤형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취지다.


◆ 상생 시장경제의 시작은 ‘노동개혁’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 구축위해 노동구조 양극화 해소 등 시급

정 위원장은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선 노동 양극화 해소와 노동개혁 등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정 위원장은 “일부 강성 노조로 인해 형성된 고임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를 겨냥, “노조의 협조를 얻기 위해선 국가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부의 실천과 의지를 일관되게 보여야 한다”며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이 튼튼하다. 걱정 없다’고 했었지만 IMF 외환위기는 왔다. 정부는 구조개혁과 경제정책 수립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노조와 기업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위원장은 “변화는 항상 일어난다. 21세기 경제는 금융제도 및 기업 지배구조, 노사관계와 교육·훈련을 포함하는 노동시장제도의 끊임없는 조정과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개방형 경제인 우리나라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구조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현 정부는 임기 내에 완료하겠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지역경제 발전 위해서는…

국가·자치단체·지역사회 협업…우수 벤처 창업 생태계 조성해야

정 위원장은 지역 경제와 관련해선 “지방정부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다”며 “국가와 지방정부, 지역사회의 협업이 이뤄지는 환경이 구축돼야 하고, 각 지방정부 수장은 대기업 유치와 함께 지역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적극 활용해 우수한 벤처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지역에 조성해야 한다”며 “기업은 지역민의 지속가능한 삶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은 ‘창조적 자본주의’는 시장의 힘과 제도 혁신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이바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시장의 힘과 기업이윤의 사회적 책임을 결합하는 상생의 자본주의를 무기로 지역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며 “그래야 지역으로 사람이 모이고 자본이 모여 새로운 부가가치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장이 형성돼 내수시장이 개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넓은 땅을 가진 경북은 제조업 중심 도시로, 250만명이라는 인구를 가진 대구는 소비도시로 기능해 경북이 생산한 물건을 대구가 소비하는 형태의 경제통합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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