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산·강·바다가 어우러진’ 순천만 갈대밭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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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26   |  발행일 2016-02-26 제37면   |  수정 2016-06-17
무진교 저편으로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이 무진장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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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갈대밭의 환상적인 달빛과 무진교 아래 S자 수로와 탐방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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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의 일몰. 탄성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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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교 다리를 오고 가는 탐방객들, 우측이 S자 수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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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자연생태관과 천문대 입구의 탐방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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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 속 세상
무진교 지나면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햇살 각도에 따라 은·금·자홍색 물결
노을빛 물든 흑두루미떼 群舞도 장관

야트막한 산 지나 용산전망대 오르면
썰물에 갯벌→갯섬 변신 진풍경 구경
대대포구서 가는 S자 물길 선상투어
6㎞ 안개 따라가는 몽환적인 체험도

 

순천만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칼은 온통 갈대로 일어선다. 순천만, 그 빛의 휘모리 같은 갈대밭 데크길을 걸어 본 자는 안다. 겨울은 가슴으로 쓰는 갈대의 시란 것을. 갈 데까지 가서 핀다는 갈대, 그 거대한 군락은 호시탐탐 갯벌을 점령하여 철새를 키우고, 가녀린 바람에도 눈먼 소녀가 부르는 진도 아리랑으로 흐느낀다.

순천만 습지 입구를 지나 잔디광장을 걷는다. 따사로운 겨울 햇빛이 알게 모르게 스킨십을 한다. 흑두루미 소망 터널을 지나 자연의 소리 체험관에 들른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곳이다. 순천만을 찾는 철새 울음, 바람의 입김으로 부는 갈대의 대금산조, 갯바람의 솔래솔래 소리, 개어귀 지역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소리, 서식하는 동물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들어 본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그지없이 맑고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는 호흡과 맥박을 고르게 해준다.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울화가 되어 남아 있는 상처와 아픔의 소리를 공감하는 치유의 데시벨도 있다. 저 신비로운 자연의 소리는 고막을 후비고 들어앉아 수시로 귓가에 맴돌 것이다.

◆아득히 뻗어 있는 무진길과 겨울 갈대들

무진교 다리 위에 선다.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의 배경이 된 대대포구를 이어주는 다리다. 무진은 안개의 나라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안개에 대한 적나라한 독백이다. 저 밀생하며 웃자란 하얀 갈대 이삭의 날숨인 안개가 피는 날마다, 무진기행은 끝나지 않는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순천만에 흐르는 글 향기는 문학도의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순천을 대표하는 작가 김승옥과 정채봉의 문학세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사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침 간조기라서 흑청색의 갯벌이 싱싱하게 드러난다. 순천만의 얼굴인 S자 형의 수로가 완연하게 나타난다. 겨울 철새들이 무리 지어 헤엄치는 수로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난다. 다리 아래 대대포구에는 선상투어를 하는 유람선 몇 척이 정박해 있다. 갯벌과 갈대 군락 사이 수로에서, 나일강의 갈대 배 같은 유람선을 타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겨울 철새를 가까이 볼 수 있는, 왕복 6㎞ 선상체험은 무진의 안개를 따라가는 몽환 같은 체험이다. 대대선착장에서 순천만 S자 갯골을 돌아 대대선착장으로 회귀하는 유람선은 만조 때만 운항한다.

눈이 닿는 곳마다 갈대다. 갈대밭이다. 탐방객을 위한 데크길을 걷는다. 마치 전통시장 음력 설장같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다. 바빠야만 살아갈 수 있는 저들을 무슨 힘이 이곳까지 데리고 왔을까. 한 번씩 멈추어서 갈대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갯게 몇 마리가 갈대 사이로 숨어버린다. 아마 몰라도 저 갈대밭에는 짱뚱어나 숭어, 전어, 문절어 등과 흑두루미, 황새, 저어새 등 많은 종의 물고기와 철새가 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토닥토닥 걷는다. 때맞춰 갯바람 불면 갈대들이 쉭쉭 시익 소리를 지르며 은빛 물결로 춤을 춘다. 햇살의 각도에 따라 은빛, 금빛, 자홍색으로 채색되는 갈대밭은 빛예술의 마당이며 신의 솜씨로 만든 정원이다. 물억새, 쑥부쟁이, 붉은 칠면초 군락도 드문드문 보인다. 느닷없이 흑두루미 떼가 날아오른다. 러시아의 아무르 강이나 바이칼 호수에서 날아온다는 흑두루미. 그 아무르 강가 모래를 물들이는 노을을 물고, 흑요석 같은 색감을 뿌리며, 수천 리를 날아온 흑두루미. 그 군무는 정녕 장관이다. 긴긴 날 동안 사무치게 찾아 다녔던 자연의 경이로움이 희열로 변하는 순간이다.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최고로 꼽은 ‘낙조’

더 지체할 수 없어 용산 전망대로 뚜벅뚜벅 걷는다. ‘용산전망대까지 왕복 40분’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대각선 쪽에 화장실도 있다. 언제 어디 가더라도 식당과 화장실을 먼저 설치하는 것이 인간의 문화다. 하루 세끼 먹고, 틈틈이 간식 먹고, 비만과 싸우면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또 먹고 비만해지는 인간, 가는 곳마다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첨단 건축 기술을 동원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종의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이제 야트막한 산으로 오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잡목가지 사이로 실루엣을 그리는 갈대밭의 잔영. 능선길에 오르자, 해는 점점 기울어지고 일몰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드디어 용산 전망대에 도착한다. 먼저 머리글을 읽는다. “순천만 낙조와 함께 둥근 갈대 군락을 보셨나요. 그러지 않고 순천만을 보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99번 이상 보고 나서 순천만을 보았다고 말하십시오”라고 적혀있다. 자욱하게 번지는 햇살은 이미 불그스레하게 물들고 있다. 그 빛의 에코에 의해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갈대밭은 감성의 가슴앓이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마치 둥근 연잎처럼 점점이 나타나는 갯섬은 검은 활자의 열반경이다. 멀리 와온해변의 솔섬까지 붉게 물들어 간다. 먼 바다로 흐르는 물길은 농악대의 상모처럼 눈을 이리저리 굴리게 한다. 총면적 약 49만5천868㎡(15만평)에 달한다는 칠면초 군락과 어우러진 갈대밭이 황금빛으로 찰랑이고, 물이 나가면서 갯벌이 갯섬으로 변하는 풍경은 아름다움의 심포니다. 그 어떤 데칼코마니도, 그 어떤 색의 오로라도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 순천만의 낙조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출사지이고, 20대 ‘내일로’로 여행자에게 여행의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꼭 가봐야 할 대표명소이며, 2012년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 책인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최고 점수 별 세 개를 달아준 우리나라 관광의 콘테스트 진이다. 어느 사이 해가 까무룩 기운다. 마치 불덩이 같은 핏빛의 해가 지금 막 지고 있다. 저 순천만 겨울의 낙조는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애송하는 시처럼 가슴에서 두고두고 공명할 것이다.

◆샐쭉한 달빛과 순천만천문대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산자락 길에서 갈대밭 데크길로 접어들자, 어둠은 복병처럼 나타나고, 어느 사이 샐쭉하게 달이 떴다. 밤바람 불면 서걱이는 갈대의 속삭임도 그렇지만 어디선가 끼룩끼룩 울고 있는 철새 소리에 위안을 얻는다. 어느덧 무진교에 닿는다. 전쟁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네의 그리움을 닮은 달은 S자 수로에 한의 머리채를 풀어놓고 있다. 겨울 초저녁 턱이 떡떡 붙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발길을 쉽사리 옮길 수 없다. 아 아 이곳은 정녕 99번 이상 찾아와서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램프 속 주술의 순천만 갈대밭인가.

나오는 길에 있는 순천만 천문대에 들른다. 우리나라 천문대 중 드물게 평지에 있다. 천체 투영실과 과학문화재 앙부일구, 첨성대, 풍기대, 측우기, 수표 등의 모형을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본다. 벌써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다. 별과 은하수는 입에 거듭 아 아 하고 영탄을 물린다. 나도 모르게 입안엣소리로 카로사의 ‘별의 노래’를 나직이 낭송한다.

내일이면 많은 별들이 반짝이리라/ 내일이면 그대는 내가 그리워 울면서/ 텅빈 창문을 들여다 보리라/ 그리고는 빛나는 먼 곳으로 달아나리라/ 그리하여 많은 별들이 잔잔하고 조그마한 별들이/ 온통 두 줄기 해맑은 눈물 너머로/ 태양처럼 커다랗게 떨려 보이리라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합천 시골 외갓집 마당 평상에 누워 밤하늘 별들을 얼마나 헤아리고 헤아렸던가.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얼마나 또 숨죽여 흐느꼈던가. 나의 초등학교 여름밤은 온통 별의 노래였다. 내 소년의 꿈이 오롯이 피어나는 순천만 갈대밭 트레킹. 오늘 대구로 귀가하는 길은 추억의 외갓집에서 그토록 숨죽여 흐느꼈던 별의 노래로 이어지리라.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우여행사 이사)

http://cafe.daum.net/dmschi

☞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매표소 입구-잔디광장-흑두루미 소망터널-자연의 소리 체험관-무진교(체험선)-갈대숲 탐방로-용산소공원-보조전망대-용산전망대-역순으로 나옴(문의 : 순천만 습지 (061)749-6052 www.suncheonbay.go.kr)

▶주위 볼거리: 순천만 국가 정원, 해룡면 와온해변, 화포해변, 순천문학관, 낭트정원, 낙안읍성, 거차뻘배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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