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비슬산 천왕봉 참꽃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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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19   |  발행일 2017-05-19 제37면   |  수정 2017-05-19
온종일 자전거를 들고, 끌고, 메고,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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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라이딩 끝에 비슬산 천왕봉 정상을 오른 기념으로 으랏차차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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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봉에서 이름을 바꾼 비슬산 정상 천왕봉에 지지 않고 피어 있는 참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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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난 반송임도에서 천왕봉 정상을 향해 오르는 비슬산 종주 등산로는 순라이딩 거리가 짧다. 자전거를 끌고 들고 메고 가는 고난의 라이딩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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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정상 등산로 1.5㎞ 지점 청룡산 가는 길 사이에 있는 명품 소나무 포토존.

2014년 10월 갤럽이 한국인의 취미를 조사했는데 등산이 1등이었다. 워싱턴포스트지가 “산이 많은 한국의 지리적 특성과 여가 시간의 확대로 한국인이 등산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북한산 국립공원의 연간 방문자 수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는 멀리 있는 높은 산보다 즐겨 찾는 산이 명산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똑 같은 이유를 풀이하는데, 월스트리트 저널은 “장시간 노동으로 녹초가 된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인기 있는 방법은 등산”(2015년 9월)이라고 보도를 했다. 등산의 유행 이유를 유수한 외국 언론의 눈에 비친 ‘과로사회’와 ‘여가 확대’ 사이에서 찾아내긴 어려운 일로 보인다.

등산 DNA를 가진 한국인이라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지리산, 금강산은 두발로 밟아봐야 한민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대구에 산다면 팔공산, 앞산, 비슬산 등 3곳 정도는 올라봐야 대구시민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등산인이라면 꼭 올라보고 싶은 산이 있는 것처럼, 가끔 산으로도 오를 수 있는 MTB 자전거를 타고 나서 유산(遊山) 목표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본리임도∼기내미재 쉼터 거쳐 반송임도
‘천왕봉 2㎞’ 표지판 보고 접어들어 15분
환상적인 낙엽송 코스 끝엔 막다른 길
믿은 안내판, 라이딩 후기도 ‘가짜’ 난감

비슬산종주 등산로로 정상 1.8㎞ 갈림길
좀체 줄지않는 거리에 포기하려다 재도전
1시간여 자전거 모시고 오른 정상 천왕봉
하산길 참꽃 군락 어두워져 시들한 모습



앞산은 통신대에서 가창댐까지 달려 보았으나, 팔공산과 비슬산은 도전 의지는 있었지만 버겁게 느껴져 먼 산 보듯 잊고 살았다. 달성 참꽃 축제가 열리는 주간, 올해는 비슬산에 올라보기로 작정했다.

4월의 마지막 주말 칠성시장으로 페달을 밟았다. 비슬산도 식후경이니, 능금시장으로 달려가 팔순할매 잔치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칠성역에서 대곡역으로 가는 지하철 1호선을 탔다. 본리임도로 가는 길에 이상정, 이상화, 이상백, 이상오 선생이 누워 쉬는 월성이씨 선영을 둘러보고 가려고 오래 전 랜드마크였던 시립희망원 골목길로 들어섰다 좌표를 상실해버렸다. ‘빼앗긴 들’의 상징적 가치로 대구 제1 인물로 기념되고 있는 상화 묘지로 가는 길 주변엔 안내판도 안보여 대곡그린빌 앞으로 난 명천로를 타고 대구교도소 담장을 지나 인흥길로 내뺐다. 명천로에 늘어선 밥꽃 같이 생긴 이팝나무들은 팔 걷어치우고 여름이 가까워졌음을 알려주었다.

본리임도는 어렵잖게 넘었다. 기내미재 쉼터에서 반송 3교까지는 6분 여 걸렸다. 최고 시속은 명곡로 다운힐 때 36㎞ 쾌속 그래프를 그렸다. 귓전에는 사하라 태풍 같은 것이 불고 있었다. 반송임도로 가는 길 이정표는 비슬산참숯가마 찜질방과 가기아트다. 2.8㎞ 거리인 반송임도는 산불감시 초소를 지나면서 시작되었다. 평균 시속은 평속의 절반인 10㎞ 정도였다. 반송임도 길 끄트머리에서 천왕봉까지 2㎞를 가리키는 표지판 또한 ‘짜가’였다.

반송임도에서는 갈증이 심하게 났다. 휴대한 물병이 바닥 나 물 뜰 곳을 찾고 있는데 승복바지를 입은 어떤 보살이 나타났다. 근처에 절집이 있다는 응답은 얼음물 한 바가지처럼 시원했다. 성도암이라는 절은 임도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고 우리가 올라야 할 비슬산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반송임도에서 만난 장관은 침엽수림 병풍을 한 일본잎갈나무 낙엽송 군락이었다. 15분간은 환상적인 낙엽송 투어코스가 펼쳐졌다.

천왕봉 안내판을 지나니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비슬산 대견사로 가는 대견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송임도’를 경유해야 한다는 라이딩 후기는 가짜뉴스였다.“자전거 탄 지 2개월 만에 본리임도 무정차면 반송임도 가능하다”는 말도 수긍하기 힘든 난코스였다. 2014년 달성군 개청 100주년을 계기로 비슬산 정상(해발 1천84m)의 이름은 대견봉에서 천왕봉으로 바뀌었다.

일전에 자전거 타고 대견사지에 올라갔다 되돌아오던 한 시민이 공원 안에서 사고가 나자 소송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 일로 공원관리소측은 자전거주행을 전면 금지하는 강경조치를 냈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팔공산 정상도 개방했는데 너무 가혹한 제재가 아닌가 한다. 교통사고 난다고 고속도로를 폐쇄하지 않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대견사로 향하는 임도 길은 열어놓고 사고예방에 주력하는 것이 소통하는 행정 아닐까?

대구의 큰 어머니산인 비슬산은 수목에 덮여있는 산이라 하여 포산(苞山)으로도 불리는데, 그 수목은 나라 제일 진달래가 압권이다. 우리가 이 봄에 비슬산을 오르는 목적은 산꼭대기 가득 떼를 지어 다발로 함께 피어 아름다움을 더 하는 진달래를 보기 위함이다.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인 식물사회학자 김종원 교수(계명대 생물학)는 진달래꽃을 늙어서도 죽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 인내하며 살아가는 결코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연의 다큐멘터리라고 찬양했다. 그는 진달래=참꽃에 ‘참’자가 들어가는 것은 유용한 식물 자원을 넘어 사람을 먹여 살리는 식량자원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진달래꽃은 먹거리의 즐거움을 주는 참꽃(밥꽃)이라는 것이다.

시인 박팔양이 노래한 연분홍의 진달래꽃은 이른 봄 산골짜기에 소문도 없이 피었다가 하루 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 백일홍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꽃, 국화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꽃, 모진 비바람 만나 흩어지는 가엾은 꽃,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피기도 전에 찬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봄의 선구자다. 요즘 진달래 개화 시기로는 봄의 소식을 먼저 전하는 예언자의 지위는 잃어버린 것 같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비슬산종주 등산로는 신록이 물씬했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것은 엄두가 서지 않았다. 사서 고생. 그만 하고 되돌아가자는 메아리가 들렸다. 우리가 반송임도에서 본 것은 650m 천왕봉까지 2㎞였는데 힘들여 올라도 거리가 줄지 않았다. 가창 정대 버스 회차지와 용연사 방향 갈림길 정상부 능선에 도착했는데, 비슬산 정상까지 1.8㎞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는 주저앉고 말았다. 청룡산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야영객에게 자전거로 천왕봉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길이 험하니 그만 하산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청룡산으로 가는 것보다 2.3㎞거리 정대 쪽으로 하산할 결심을 했다. 그런데 1.8㎞를 앞두고 포기하기 아까워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정상 도전을 했다. 비슬산 천왕봉 참꽃 라이딩은 순라이딩 거리가 500m도 안 될 것 같은, 온종일 들고 끌고 메고 자전거를 이고 가는 고행의 라이딩길이었다.

고도를 알 수 없는 정상부 능선에선 평탄한 길이 나와 수고를 덜어줬다. 1시간 정도 되는 고난의 행군 끝에 우리는 소망했던 비슬산 정상 천왕봉에 도착했다. 하늘은 약간 흐릿했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었다. 등산 기념으로 젖 먹던 힘을 뿜어 자전거를 들어올렸는데 바람이 세서 좋은 포즈를 방해했다.

자전거를 끌고 들고 메고 1천84m 산을 오른 이유는 좀 덜 힘들게 내려오기 위함이었는데 대견사지에 이르기까지 속도낼 곳은 전무했다. 산다는 것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니, 서서히 지고 있는 참꽃 군락지에서 본 것은 함께 피어야 아름답다는 것이고, 우리는 산에서 잠시 머무르다 내려오기 위해 산을 오른다는 것이었다.

하산 길에 만난 참꽃 군락지는 어두워져 시들해 보였다. 비슬산 정상과 대견봉 주변 참꽃 군락지에 야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미처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데크 길을 밟고 대견사지로 나와 비슬산군립공원으로 다운힐 하면서 비슬산 라운딩(라이딩이 아니었음)의 고생을 날려 보냈다. 공원 직원들이 퇴근하고 없는 밤길을 헤치고 우리는 무사히 유가면사무소가 있는 테크노폴리스 길에 안착할 수 있었다.

앞산 갓댐 이어 비슬산 천왕봉, 대견봉 라이딩을 했으니 남은 것은 팔공산이다. 군부대 철조망이 쳐져 접근 불가능했던 팔공산 비로봉 라이딩 길도 열렸으니 자전거 유산(遊山)으로 대구시민증 받을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비슬산, 앞산, 팔공산은 대구시민에게 3산5락이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지하철 대곡역-명천로 대곡그린빌-대구교도소-인흥길-본리임도-기내미재 쉼터-용연사길-반송2·3교-비슬산참숯가마-반송임도-비슬산종주 등산로-비슬산 정상 1.8㎞ 갈림길-천왕봉-대견봉 참꽃군락지-대견사지-대견사지 임도-비슬산군립공원-유가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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