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준비하고 기다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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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7  |  수정 2018-12-27 07:46  |  발행일 2018-12-27 제22면
[문화산책] 준비하고 기다리면

스물두 살 젊은 푸치니는 인정이 메마른 대도시 밀라노에서 밥을 굶고 추위를 견디며 힘겹게 음악원 시절을 보냈다. 괴롭고 비참함을 몸소 체험하여 누구보다 보헤미안의 삶에 대해 잘 아는 푸치니는 오페라 ‘라 보엠’을 통해 가난한 보헤미안의 삶과 사랑, 그 속에 그려진 주인공들의 감정과 정서를 마음 깊은 곳에 호소하는 아름다운 선율로 생생하게 표현했다. 고독한 두 젊은이가 만나 서로의 마음을 갈망하며 어루만지듯 사랑과 봄, 꿈과 환상을 노래하는 라 보엠은 이탈리아 베리즈모 오페라의 대미를 장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나는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라고 작곡을 마친 후기에서 밝혔다. 가난에서 벗어난 중년이었지만 지난 시절의 어려움을 뒤돌아보는 추억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자극했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본 가장 찬란하고 애잔한 삶의 순간이 모두의 가슴속에 되살아나게 하는 오페라다.

대구오페라하우스의 2018년 마지막 오페라 ‘라 보엠’이 지난 22일 막이 올랐고, 어김없이 주인공 미미의 마지막 순간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26일 네 차례 중 마지막 무대 막이 내려졌다. 이번 오페라의 당초 주역인 테너 강요셉이 건강상 이유로 하차하면서 단숨에 주역 로돌포역의 기회를 잡은, 행운의 사나이는 테너 조규석이었다. 커버(후보) 성악가였던 그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의 효과를 입증하며 진가를 빛나게 해준 성과이기도 하다. 2015년 오페라 유니버시아드 ‘마술피리’를 시작으로 영아티스트 오페라의 주역을 연이어 차지하며 가능성을 보인 조규석은 오페라 커버로 함께하다 영화처럼 엄청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파바로티와 도밍고도 스테파노와 코렐리의 커버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준비하는 자에게만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다. 어찌 그가 다만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땀과 눈물로 점철된 시간을 묵묵히 잘 견뎌 왔기에 자신 앞에 나타난 기회를 당당히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돌아볼 줄 안다면 돌아올 수 있다’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스스로를 버리게 된다’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중국 송나라 학자 진덕수가 쓴 유교 경전 ‘심경’의 글귀다.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마음이고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답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세상에 쉬이 노할 일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을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진 것 중 원래 나의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안다면 갖지 못해 슬플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더 큰 무대로 나가야 하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로움을 잃지 않기를 오늘도 다짐하며 2018년을 감사하게 마무리한다.

장윤영 (오페라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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