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커피맛을 조금 아는남자’ 커피마케터 김현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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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1   |  발행일 2019-02-01 제41면   |  수정 2019-02-01
신장 107㎝ 커피맨의 특별한 핸드드립…‘커피복지 리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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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장애를 극복하고 2008년 남구 봉덕동에서 생애 첫 커피숍 ‘커피맛을조금아는남자’를 오픈한 김현준 대표. 오픈 2년 만에 수성구로 이전해 새로운 핸드드립커피의 신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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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책 제목을 모티브로 만든 상호는 초창기 독특한 상호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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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파티셰가 수제로 만든 진열장 속 다양한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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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서 생활하는 그의 일상은 그 어떤 정상인의 에너지보다 파워풀하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커피맛을 조금 아는남자’ 커피마케터 김현준


커피! 이것은 거대하고 다국적 포스를 가진 하나의 문화상품이다. 바리스타·로스터·드리퍼의 영역은 순차적으로 엮어진다. 생두를 수입해 그걸 자기만의 불에서 볶은 뒤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라인딩하고, 재차 자기색깔의 드리퍼에서 뽑은 원두커피를 자기만의 단골에게 대접한다고 하면, 그는 분명 커피산업의 전과정을 핸들링할 줄 아는 ‘커피마케터’일 것이다. 그런 유전자를 가질 때 스타벅스의 전략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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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커피·외국계 브랜드 벤치 마킹
봉덕동서 테이블 4개 둔 1호점 시작
평소 좋아하던 일본책 제목 손봐 상호

확장할 타이밍 눈에 든 범어복개천로
2010년 2호점 오픈, 봉덕점과는 이별
메뉴판에 고퀄리티 커피 등 정보 정리

직원이란 말보다 모두가 가족 마인드
모두 독립시켜 성공 했으면 하는 바람
조금 덜 갖고 공유, 행복 두배로 커져
장애인 배드민턴·휠체어 나눔도 앞장

의지 담기지 않은 충동적 창업은 도태
개성·열정·서비스 자기 메뉴 녹여야

◆나는 선천성 중증장애인

부산시 연제구 연상동에서 태어난 김현준. 갓 불혹을 넘긴 그는 지역 커피 마니아 사이에선 나름 실력과 열정을 동시에 인정받은 메이저급 커피맨이다. 그는 비정상적 몸을 갖고 있지만 커피권에선 거인의 풍모를 보여준다. 신장은 전국 원두커피숍 사장 중 가장 작을 것 같다. 107㎝. 그렇다.

그는 선천성 유리뼈를 가진 장애인. 지금도 종일 휠체어에서 생활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의 안목과 진두지휘력은 CEO급.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외모에서 중국 전자상거래의 전설로 군림하고 있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커피를 매개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개선시키려고 한다. ‘혼자 잘 먹고 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함께 빛나자. 그게 삶의 모토다.

그의 커피숍, ‘커피맛을 조금아는남자’를 찾았다. 그한테서 그 어떤 장애도 읽히지 않는다. 쿨한 성격, 담담한 화법, 대화의 맥을 짚고 거기에 맞는 어휘를 구사한다.

대학에선 정보통신학을 전공했다. 컴퓨터 능력이 상당하다. 구미에 있는 한 IT 관련 업체의 네트워크 사업부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그때 그에게 처음 다가온 커피는 자판기커피. 그 커피의 달달한 맛 너머 커피만이 갖고 있는 신대륙풍의 연대기를 천착해나갔다.

북구 침산동에서 구미로의 출퇴근길. 그 와중에 직장생활의 미래를 고심했다. 직장인으로 삶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커피로 제2의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에겐 그 어떤 경영자적 실력과 능력도 없었다. 그리고 중증장애인만의 트라우마도 없었다. 그는 남다른 용기의 소유자. 직선적이고 긍정적이며 치밀하고 꼼꼼했다. 그는 자기 주변에서 꽃을 피우고 있던 커피명가, 다빈치, 시애틀의잠못이루는밤, 핸즈커피 등 향토 커피브랜드는 물론 스타벅스 등 외국계 커피 브랜드의 운영방식을 꼼꼼하게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아직 대구 커피산업은 하이퀄리티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자신만의 색깔을 그려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는 마키아토, 라테 등 달달한 커피에서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메리카노, 마지막엔 커피명가에서 핸드드립 원두커피만의 향미를 터득하게 되었다.

◆일본 여행길 커피용품 사와

일본으로 여행갔을 때 커피용품을 수북하게 사들고 왔다. 당시로선 괜찮은 로스팅기기인 후지로열을 구입했다. 경기도 분당에 있던 커피용품점 겸 커피숍 브랜드인 ‘가비양’에 가서 물건도 사고 로스팅교육도 받았다. 2008년, 그가 30세가 되던 해였다. 그로부터 11년간 그의 내공은 놀랄 만큼 성장했다.

패션디자이너에서 외식산업 컨설턴트로 변신 중이었던 변상일씨를 만나 괜찮은 입지를 소개받았다. 남구 봉덕동 우봉아트홀 맞은편에 터를 잡았다. 다소 우중충했던 그 골목은 클래식 관계자의 내왕이 빈번한 곳이라 커피가 제대로 먹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봉덕1호점은 원래 어묵집과 부동산중개업소가 있던 공간이었다. 리모델링하면 예쁠 것 같아 계약했다. 대출까지 받아 올인했다. 부산에 있던 부모가 펄쩍 뛰었다. “그런 몸으로 새로운 창업은 불가능하다”면서 창업을 말렸다. 그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트럭커피를 몰던 김모씨, 지금 그의 아내가 된 박모양과 의기투합한다.

상호를 지어야만 했다. 평소 좋아했던 일본 책 제목이 떠올랐다. ‘커피향을 아는 여자’. 그걸 ‘커피맛을조금아는남자’로 바꾸었다. ‘조금’이란 부사가 압권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상호는 드물었다. 조금 아는 남자, 이게 어떤 이에겐 ‘커피를 엄청 많이 아는 남자’로 오해되기도 했다. 아무튼 재밌는 상호는 단골 확보에 일조한다.

◆아메리카노는 팔지 않아

일단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어디 가나 다 만날 수 있는 아메리카노는 뺐다. 그것 때문에 클레임이 자주 걸렸다. 다들 “왜 그 메뉴가 없냐”고 투덜댔다. 대신 테이크아웃을 하면 그걸 주었다. 핸드드립 문화 활성화 차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10명 중 1명 정도가 드립커피를 선호했다.

젊은층은 역시 달달한 커피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 레몬, 에스프레소, 수제크림, 시나몬 가루 등이 섞여 새콤달콤 시큼한 ‘카페로마노’가 초창기부터 자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조그마한 커피숍 안에는 테이블이 4개밖에 없었다. 직접 콩을 볶고 갈아 드립해 주었다. 하루 12시간 연중무휴로 몸을 놀렸다. 특수제작한 높이 1m짜리 높다란 의자에 앉아 일을 했다. 처음 온 손님들은 그가 사장인 줄 꿈에도 모른다. 다들 주인이 장애인을 도와주기 위해 특별하게 채용한 바리스타인 줄 착각한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덕분에 그는 사람들로부터 늘 집중의 대상이었다. 그는 그 강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부모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자잘한 커피숍 정보를 아들에게 실시간으로 보내준다.

커피 옆에는 디저트가 따라다녀야만 했다. 대신 치즈케이크만은 직접 만들었다. 쇼콜라·티라미수·컵케이크는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 제과점과 손잡고 팔았다. 현재는 전문 파티셰 서유민씨가 그걸 총괄한다.

◆범어동 시대로 이전

1년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커피숍을 확장하고 싶어진다. 그 무렵 부주의로 낙마해 다리가 골절돼 6개월쯤 입원을 했다. 그때 자신을 잘 챙겨준 독신주의 여직원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더없이 황량하기만 했던 범어복개천로변의 한 설렁탕집 건물을 찜한다. 앞으로 중요한 변수는 주차문제. 넓직한 이면도로를 확보한 상가를 보러다니다가 발견한 공간이다. 조금 고치면 아주 운치있는 커피숍이 될 것 같아 당장 계약을 했다.

2010년 9월 2호점이 오픈하게 된다. 오전에는 2호점, 오후에는 1호점을 관리했다. 비효율적인 관리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1호점은 주차하기가 여간 버겁지 않았다. 또한 두 영업점의 맛을 똑같게 한다는 것도 점차 어려워졌다. 1호점 단골도 점차 2호점으로 많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1년 봉덕점과 이별을 한다.

생두는 대구의 큐빈, 서울의 더 드립 등 4곳으로부터 매입을 한다. 현재는 에티오피아 G1 아리차, 케냐 AA, 콜롬비아, 브라질,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만델링 등을 핸드드립으로 판다. 고퀄리티 커피는 ‘과테말라 COE #7 플란 데 라 베가’(1만2천원)와 ‘에콰도르 루그마파타’(8천원). 메뉴판에는 커피 정보가 잘 정리돼 있다. 드립방식도 기본 ‘칼리타’, 500원을 추가하면 ‘고노’, 1천원을 더 내면 ‘융드립’을 먹을 수 있다.

◆김현준의 생각

그의 마인드 속에는 ‘직원’이란 말이 없다. 다 가족이다. 모두 독립시켜 성공시키고 싶다. 모든 걸 혼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전문가와 손을 잡고 함께 간다. 가족은 모두 11명이다. 2012년부터 인연을 맺은 로스터 이창재씨는 부대표, 이은주씨는 바리스타팀장, 엄사랑씨는 교육팀장, 김수진씨는 SNS마케팅 파트를 관장한다. 조만간 2호점이 근처 라온제나예식장 근처에서 오픈하는데 거기 점장은 이호준씨. 올해부터는 경영기조가 달라졌다. 2명에게 지분을 나눠주고 있다. 커피장사가 아니라 ‘커피경영시대’를 열기 위해서다. 그는 조금 덜 갖고 서로 공유하면 더 행복질 거라고 말한다. 커피복지의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청각장애인교육, 꿈 & 꿈 청소년창의센터, 장애인배드민턴, 굿네이버스 등을 후원하며 동시에 휠체어 나눔사업도 한다.

그는 대구커피문화의 미래를 걱정한다. 찾아보면 정말 무서운 고수가 골목마다 숨어 있는데 이들을 커피박람회 관계자가 끌어안아주기를 당부한다. 그는 다국적 커피제왕이 된 스타벅스를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존중한다. 광고도 없고 진동벨을 없앤 스타벅스의 남다른 마케팅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젊은 커피맨들에게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의지가 담기지 않은 충동창업은 곧 죽음이다. 자기 개성과 열정을 서비스와 자기만의 메뉴로 녹여야 한다. 손님과 사장이 따로 노는 커피숍이 너무 범람해 진성 커피숍을 더 힘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에서 현실을 읽는다. 틈만 나면 역사서를 탐독한다. 삼국지도 여러 번 정독했다. 예전에는 유비, 제갈공명, 관우, 장비, 조조 등만 보였는데 이제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케냐와 만델링을 좋아한다. 수많은 맛 중에서 향보다 바디감을 중시한다. 그 때문에 대구커피도 그의 신장만큼 자라난 것 같다. 수성구 범어천로 153. 070-4155-460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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