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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허장강 살던 한옥 카페, 두 형제의 日 가정식, 50년대 풍미한 추억의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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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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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향로드’를 걷다(하) 향촌동 랩소디

한옥카페 ‘% 14-3’의 외부 전경(위). 1950년대초 허장강이 잠시 살았던 한옥을 카페 ‘% 14-3’으로 개조한 박정숙·김가람 모자.
의기투합한 진두찬·두성 형제가 가게 앞에서 오순도순 오후 브레이크타임을 갖고 있다(위). 일본 가정식 전문 ‘2Chance’ 대표 메뉴인 냉라멘, 돈고츠라멘, 돈가스정식.
고향의 정서가 그리워 향촌동 골목에 레스토랑을 차린 ‘심풀’의 김재표 오너셰프(위). 가정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심풀의 시그니처 메뉴인 ‘뼈등심 포크스테이크’와 ‘멜란자네’.
대구문학관과 가장 오밀조밀한 교류를 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일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일본방문자센터 같은 북카페 ‘대구하루’다. 2015년 2월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대구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을 했다. 부산 일본총영사관의 고무라 데츠오 영사도 개소식에 참석했다.

‘대구하루’ 건물은 독특한 구조다. 중구청이 근대 건축물 개조 대상으로 선정해 전문가의 고증을 기반으로 외관을 살리면서 북카페 형식으로 단장했다. 1960년 지어진 건물로 지하 방공호 공간은 리모델링해 서가로 개조했다. 지금은 2층 같은 1층구조의 복층 스타일이다. 입구 오른쪽에 1933년에 제작된 ‘대구상공 안내도’를 붙여놓았다.

‘대구하루’ 박승주 대표는 중구 향촌동 수제화골목에 홍일점으로 나타나 일제강점기 대구 관련 자료를 아카이브로 관리하고 싶어 대구하루를 오픈했다고 한다. 일본 나고야대학원에서 근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9년째 영남대 일어일문학과 최범순 교수가 이끄는 ‘대구읽기모임’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박 대표는 ‘대구하루’가 책을 파는 서점이 아닌 대구와 일본의 근대자료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살아남길 바란다. 현재 6천500여권의 책이 서가에 꽂혀 있다. ‘하루’, 일본말로는 ‘봄’ ‘봄과 같은 하루를 이곳에서 인문학적으로 공감하고 갔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상호에 잘 담겨 있다.

◆배우 허장강이 세들어 살던 한옥
산부인과 거쳐 母子 주인이 카페 오픈
골동품 찬 정겨운 분위기속 꽃차 여유


북향로드 취재 중 6·25전쟁 때 대구로 피란온 영화배우 허장강이 세들어 살던 한옥의 소재를 파악하게 됐다. 전통음식연구가 김영복씨가 관련 자료를 건네주었다. 그 한옥은 지금 한옥카페 ‘%(퍼센트) 14-3’으로 변해 있다. 향촌동 골목이지만 실제 주소는 행정동으론 성내2동, 법정동으론 대안동에 포함된다.

허장강은 1943년부터 악극단 배우로 활약하고 있었다. 9·28 서울수복 후 동양극장 악극단 주연 배우로 활약하던 어느 날 뜻밖에도 영화감독 이강천과 촬영기사 강영화가 허장강을 찾는다. 이 감독은 대뜸 허장강에게 영화 출연을 권했다. 그렇게 해서 허장강의 첫 데뷔작 ‘아리랑’은 전주에서 촬영됐다. 대구에서 조직된 군예대는 서울에 있던 윤부길·윤철·허장강 등을 규합한다. 군예대 3개 소대는 150여명으로 늘었다. 허장강은 아리랑 촬영 후 반년이 지나 대구 하늘 높이 떠 있는 애드벌룬에 적혀 있는 ‘아리랑과 허장강’이라는 자기 이름 석자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 후 허장강은 1955년까지 대구KG홀(현 대구콘서트홀) 군예대에서 박노식과 함께 생활을 했다. 허장강은 현재 카페 ‘%’의 안채를 세 내어 어린 아들 기호와 함께 살다가 서울로 갔다.

카페 ‘%’를 경영하는 주인 모자를 만났다. 어머니 박정숙, 외아들 김가람은 카페 만들기에 올인했다. 2017년 9월 비가 새는 기와지붕이 천막과 폐타이어로 뒤덮인 철거 직전의 한옥을 매입한다.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등도 생각했지만 경상감영 바로 옆 근대골목길이니 한옥카페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오픈 하고 얼마 안 있어 두 명의 여성이 훌쩍이며 모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허장강 한옥은 훗날 산부인과로 변한다. 두 여인은 그 산부인과 원장 딸이었다. 그들도 자기 집에 허장강이 살았다는 얘기를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모자가 망고얼그레이밀크티, 티라미수, 꽃차 등을 소담스럽게 차려 나왔다. 이 카페는 메뉴보다 분위기가 더 압도한다. 청년들에겐 추억인 골동품이 수북하게 모여 있다. 1층보다 머릴 숙이고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2층 다락이 핫플레이스. 최근에 만난 가장 독특한 다락이었다. 교육자 집안이라 골동품 같은 게 많았다. 자개밥상, 주련, 고가구, 베개, 자개함, 재봉틀, 화장대, 문갑, 침대 등을 곳곳에 배치했다. 1층 정면 벽은 통유리창 덕분에 골목 발걸음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정지문 두 짝을 사용한 사당 같은 커플룸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50년대 부잣집 정원 같은 뜨락이 잘 보이는 2개의 사랑방, 항상 예약돼 있을 정도로 밀담 장소로 인기 절정이다. 정겨움이 필요한 시민이라면 바람 좋은 날 그 툇마루에 앉아 보시길.

◆마술램프 같은 향촌동
실버세대 즐기는 성인텍·고스톱방 성업
소설가 故 윤장근이 마지막 증언한 낭만


어느 날부터 젊음의 향촌동은 ‘실버 향촌동’으로 넘어간다. 국제, 그랜드, 판코리아, 향촌 등 숱한 성인텍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덕분에 지난달 21일 1회 향촌실버댄스페스티벌까지 열렸다. 그리고 최근에는 입장료 2천원짜리 고스톱방까지 성업 중이다.

작고한 소설가 윤장근은 ‘낭만의 향촌동 시대’의 마지막 증언자랄 수 있다. 그는 우남장여관 1층 ‘할매 스모노집’(일명 곤도주점) 주인 이월분 할매를 자랑스러워 했다. 당시 여든을 눈앞에 두고 있던 할매가 가장 자신있게 내놓은 메뉴는 일본식 초무침 요리인 ‘스모노(醋物)’였다. 일제강점기 대구로 흘러든 일본요리의 일단을 품고 있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곤도상’으로 불렸다. 창씨개명된 자기 성씨(權)였다.

10년 만에 북향로드를 취재하기 위해 향촌동 골목을 다시 세밀하게 뒤적거렸다. 곤도 할매의 흔적도 사라지고 없었다. 우남장은 우남모텔로 변해 있었다. 그밖에 후포실비회, 향촌순두부, 송림, 선산, 신남일, 우리, 동부, 초막실비, 길포차, 부엉이생고기, 한성, 청춘포차, 대창세탁, 한영원룸, 호텔 갤러리, 길카페, 자매매운탕 등이 들어와 있다. 거의 새로 생긴 업소다. 아직 그 자리에 있는 ‘황소집’이 반가웠다.

오사카밥집의 인기 메뉴인 오뎅세트.

◆식도락 탐방
냉라멘·돈가스 정식 가성비 좋아 인기
친구집 같은 편안함 이탈리아 레스토랑


새롭게 피어난 야생초 몇 송이를 발견했다. 커피클럽 ‘어울리’, 60년대 하얀 타일이 외벽을 덮고 있는 3층 건물. 여긴 커피를 제조·가공·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올해 14년차 커피맨. 한 때 칼리커피를 핸들링했던 김승효 대표. 그가 직접 볶은 콩을 전국 160곳에 납품하고 있다. 하루 200~300㎏을 볶는다.

경상감영공원 동쪽 맞은편 대보상가 1층에 있는 일본가정식 식당인 ‘2Chance’는 이심동체 진두찬·두성 형제가 지키고 있다. 뇌출혈로 구사일생을 한 동생을 위해 형이 팔을 걷어붙였다. 동생도 한 때 동성로 일식당 ‘산시로’에서 일 한 경험이 있다. 매운 돈고츠라멘인 ‘스파이스러브’, 냉라멘, 돈가스 정식이 인기가 있다. 근처 젊은 문화기획자들이 가성비가 좋아 많이 붐빈다.

또 한 명의 이탈리아 계열의 셰프가 향촌동에 포진하고 있다. 김재표(39). 영남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시내 호프 골목 옆에서 생애 첫 알바를 시작하면서 음식의 기본기를 요리학원이 아니라 식당에서 배워 나갔다. 부산으로 건너가 J’S 키친, 요기식 등 4개의 가게를 동시에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조리가 아니라 뭔가 조립한 음식 같았다. 1년 전 부산 남포동에서 향촌동 골목으로 건너왔다. 아버지가 대구우체국에서 근무해 향촌동 문화를 조금 안다. 어릴 때 아세아극장, 만경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도 났다. 그 시절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집 같이 편안한 음식점’을 차리고 싶어 ‘심풀(心FULL)’이란 가정식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열었다.

시그니처 메뉴는 다른 곳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돼지 뼈등심 포크스테이크’(2만1천원). 한 마리에서 갈비 8쪽을 추출해 굽는다. 1인분 300g. 숙성이 맛의 반을 차지한다. 너무 오래 숙성시키면 흰곰팡이가 피고 너무 이르면 질겨 먹기 불편하다. 그는 숯그릴로 270~300℃를 유지한다. 한 면당 3~4번 그릴에 닿게 한다. 이렇게 최적의 육즙이 머문 포크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것도 김 셰프의 열정 때문이다. 파스타 20가지 등 모두 35가지 메뉴를 핸들링한다. 특히 버터에 구운 가지 팔렛을 모차렐라치즈에 감싼 뒤 토마토소스와 섞어 그라탕한 요리인 ‘멜란자네’도 꼭 먹어보길 권한다.

◆피란 문인들의 안식처 다방과 먹거리
여전히 계란띄운 쌍화차 내는 청자다방 
日 본토서 원정 온 요리사 진미도 맛봐


광복 직후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이던 백조다방. 1980년대 문을 닫았는데 최근 리모델링된 모습으로 재등장했다 (위). 하지만 꽃자리다방과 함께 도심 뉴딜사업 때문에 조만간 철거될 전망이다. 밤의 ‘꽃자리다방’ 입구 전경.
‘꽃자리다방’. 1950년대를 풍미한 추억의 다방인데 되살아 났다. 신민식 사장은 계명문화대 관광과를 졸업했고 현재 단 디자인 대표. 그는 허물어진 성벽 같은 이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구상의 대표시 중 하나인 ‘꽃자리’를 상호로 정했다. 옛 피란 문인들의 안식처 분위기를 재현했다. 소파사운즈, 북성로어쿠스틱살롱데이, 북성밤마실, 롱아일랜드재즈밴드 스윙파티 등도 여기서 열렸다. 꽃자리빙수, 꽃자리모나카, 꽃자리 수제 에이드 등이 핫메뉴다. 그 건물 1층 ‘워커스’는 대구 첫 ‘디트로이트스타일 피자’를 판다.

바로 근처에 있는 ‘백조다방’도 광복 직후 이삼근씨가 차렸는데 80년대 문을 닫고 이후는 이용기기상사 건물로 사용됐다. 23개 발자국이 나올 정도로 열차칸처럼 길쭉한 다방이다. 2층으로 이어지는 17개의 나무 계단도 70년전 그대로다. 인테리어 전문가 홍원태씨가 부활시켰는데 1년간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진해양봉의 꿀을 사용한 카페 콘 미엘, 고흥 유자차, 크림떡 등이 주메뉴다.

1961년 개업한 ‘청자다방’도 아직 그 자리에서 영업한다. 아직도 계란 띄운 쌍화차를 판다. ‘다락방만두’의 찐교스는 이미 입소문이 난 상태. 종로초등 뒷문 옆 부산설렁탕, 경상감영공원 바로 옆 마산설렁탕은 향촌동 양대 설렁탕으로 자릴 잡았다.

일본 본토에서 대구 도심으로 원정을 온 요리사도 몇몇 있다. 선배격은 동성로 ‘산시로’와 ‘미야코’다.

미야코는 16년 전 중구 삼덕동1가 옛 동인호텔에서 야시골목 가는 길 첫째 골목 안에 1호점을 냈다. 이어 6년 전 대백프라자 바로 서쪽 이경빌딩 1층에 2호점을 냈다. 올해 73세로 다정다감하면서도 뭔가에 골똘한 포스의 도쿄중학교 출신 다케모토 가쓰시게가 요리를 진두지휘한다. 8종류의 말린 생선에서 우려낸 그 깊은 맛 때문에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어 최근 향촌동과 종로에 오사카밥집과 시게야를 오픈한 미츠다 형제가 있다. 형은 만경관 동쪽에서 ‘시게야 종로점’, 동생은 향촌동 골목에서 ‘오사카밥집’을 운영한다. 오사카밥집을 방문했다. 곤약, 삶은 계란, 우엉튀김, 무, 삼색어묵, 두부튀김, 스지(소힘줄) 등이 어우러진 오뎅세트는 울림이 크다.

이밖에 ‘향촌골’의 5천원짜리 소고기국밥, 3년 전부터 아프리카 콩고 출신의 흑인 여성이 주방을 지키는 ‘낙동강반점’도 찜해 보시길.

글·사진=이춘호 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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