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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영화, 음식을 캐스팅하다] ‘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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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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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가 뛰노는 청정 자연속, 허위와 위선 민낯 드러내는 인간군상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A장조 D.667 ‘The Trout’를 걸었다. 이 곡을 듣지 않고 글을 쓸 순 없었다. 당대의 피아니스트라면 한 번은 녹음했을 ‘송어’의 최고 연주는 1977년 알프레드 브렌델과 클리블랜드 콰르텟이 함께한 필립스 녹음. 아침햇살 머금은 듯 브렌델의 영롱한 타건이 현악기의 힘찬 운궁을 견인하는 명연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송어’라는 이름을 클래식으로 먼저 알았다. 심지어 중학교 시절 음악교과서는 이 곡을 숭어(거울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라고 표기했다. 최초 번역자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온 국민이 숭어와 송어를 헛갈린 것이다. 1급수 어종인 송어를 처음 본 건 1990년대의 일이고,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송어양식장에서였다. 그리고 박종원 감독의 1999년 영화 ‘송어’에서 송어를 다시 만났다.

산골 송어양식장에 찾아온 옛 친구들
갇힌 송어, 고립 선택한 이들과 닮은꼴

주황색 속살 드러내며 한상 차린 송어
파·산나물 더한 매운탕으로 화룡점정
너무 맛있어서 주체할 수 없었던 과식
물리고 보기도 싫은 지루한 존재 전락
빗나간 분노, 피 튀기는 아수라장 변모

겨울산란 무지개송어 이듬해 겨울 제맛
전국 각지 한겨울 ‘송어축제’개최 인기


한적한 산골,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 정착한 창현의 송어양식장에 옛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청정자연의 상징인 송어와 인간의 이기심을 대조하는 극에서 마주하는 건 허위와 위선의 민낯이다.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화를 자초한 동창 일행이 벌이는 사투를 담는 영화에서, 연극을 접고 고립을 택한 창현과 친구들은 좁은데 갇혀 있는 송어와 닮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자살을 택하는 송어의 특징은 의심과 질투와 욕망과 폭력의 파노라마를 경유하며 친구들에게 전이된다.

주황색 속살을 드러낸 송어가 한상 가득 차려지고 듬성듬성 썰어낸 파와 산나물을 더한 매운탕이 화룡점정을 찍는 식사는 먼 길 달려오고도 남을 가치 있는 추억을 선사한다. 화무십일홍이요 꽃노래도 삼세번이라지만 송어는 단 하룻밤 만에 친구들 기억에서 사라진다. 너무 맛있어서 과식을 주체할 수 없던 송어는 물리고 보기도 싫은 존재로 바뀐다. 회 말고 구워먹을 순 없냐고 일행이 물을 때, 대접할 게 이것밖에 없다고 송어를 상위에 올릴 때, 송어는 신박함에서 지루함으로 전락한다.

갈등과 파국을 다룬 대개의 드라마가 특정인물의 시점으로 술회되는 데 반해 ‘송어’는 줄곧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된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두메에 고립된 극중 인물들이 지닌 정보는 극 외부로 전달되지 않으며 관객마저 정보에서 소외당한다. 이는 극 후반 인간의 이기심에 무너진 도덕성을 전시하기 위한 필수 선택이다. 아내의 행실과 처제의 어정쩡한 태도와 창현의 미심쩍은 행동, 무엇보다 성급하고 변덕스러운 도시 남자의 폭력성을 설명하기에 관찰자 화법만한 것은 없었을 터다. 2박3일간 카메라가 거의 고정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동감 넘치는 화면도, 고속촬영과 노출과 유려한 트레킹도 아닌 건조하고 무심하게 난장판을 담는다는 것.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산속 일상에 친구들은 무료함을 느끼지만 그곳을 터전 삼은 이들에겐 매일이 변화무쌍이다. 지역 엽사들이 동물의 피와 토끼고기로 질척대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창현의 친구들은 송어 말고 다른 거 없냐고 투덜대던 참이었으니까. 마침내 텃세에 숨죽이며 희생양을 찾던 그들의 빗나간 분노는 개 키우는 소년에게로 향한다. 송어가 뛰노는 청정의 자연은 아수라장이 되고 피와 살이 튀는 사각의 링으로 변하는 순간, 친구들의 차가 진창에 빠졌을 때 있는 힘을 다해 도왔던 소년은 절규한다. 내가 뭘 어쨌다고,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고! 때문에 “불이 너무 세면 고기가 타는 법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불을 줄일 생각은 안하고 불판만 바꿔달라고 한단 말이야”라던 한 친구의 말은 시사적이다. 증폭되는 의심에 정비례해 자신들의 도덕성이땅에 떨어지는 줄 모른채 외부로부터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친구들은 모두 상처 입은 채 서울로 향한다.

‘송어’는 공생의 원리를 잊고 산 도시인이 자연에서 혹은 자연친화적 삶과 맞닥뜨렸을 때의 생경함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아무도 해코지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겐 모든 게 낯설고 미심쩍었다. 누구나 한번쯤 겪었거나 느꼈을 원인 모를 불안의 중심을 찾아가는 이야기. 그들 중 하나가 불을 줄이려는 노력만 했더라도. 그럼에도 도시의 일상이 날것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한다(하룻밤 사이에 회에 질려 구워먹기를 청하는 장면을 기억하라).

매년 겨울이면 송어축제가 열린다. 원조 격인 평창뿐 아니라 경기도 일원에서도 열리는 송어축제는 직접 낚시로 잡은 고기를 즉석회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왜 하필 추운 겨울일까? 요즘 먹는 송어는 모두 ‘무지개송어’다. 한반도에서 서식하던 고유어종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수입해 양식·유통·소비되는 과정에서 자리 잡았다. 무지개송어는 겨울에 산란한다. 이때 태어난 무지개송어는 만 1년이 되는 이듬해 겨울에 가장 맛있다. 이를 ‘햇송어’라 부른다. 양식장에서는 겨울 아닌 계절에도 1년산 햇송어를 확보하기 위해 가을과 봄에 수정란을 확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1년산 햇송어라도) 겨울에 산란한 무지개송어가 가장 맛있다는 게 정설이다. 평창을 비롯한 각지에서 한겨울에 ‘송어축제’를 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특임교수)
언제부터인가 무지개송어 회를 콩가루채소비빔과 함께 먹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콩가루의 고소한 맛에 채소의 신선함을 더해 맛있게 먹는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다르다. 무지개송어의 맛이 떨어지는 계절에 그나마 먹을 만하게 만들려고 개발된 조리법이다. 질 좋은 겨울 무지개송어 회는 고추냉이와 간장만으로 충분히 맛있다. 그러고 보면 ‘송어’의 시간적 배경은 늦봄이다. 송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계절이니 하루 만에 송어에 질린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음식도 때가 있는 법인데 겨울에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추운 겨울밤 오순도순 체온을 나누면서 맛있는 송어회를 오래오래 즐기지 않았을까. 제철 음식이란 말이 괜히 있을라고.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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