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가볼만한 곳] ‘굿 서머’ 별별 피서지 여행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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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0   |  발행일 2018-07-20 제33면   |  수정 2018-07-20
폭염을 위한 頌歌
20180720
한국의 마지막 청정 심산유곡으로 불리는 영양군 수비면 왕피천 상류 수하계곡에서 바라본 별의 궤적. 오로라급 밤하늘 별잔치를 만끽할 수 있어 국제밤하늘협회(IDA)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인정받았다. <영양군 제공>

그 시절엔 ‘폭염’조차 좋은 사색거리였다. 폭한보다 폭서(暴暑)는 인체를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었다. 밤하늘은 더 깊고 푸르고 초롱거렸다. 그래서 우린 중력이 사라진 ‘심우주(深宇宙)’를 떠도는 유성(流星)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만났던 그 경치도 산·강·바다·계곡을 삽입시키면 단번에 ‘풍경(風景)’의 차원으로 격상됐다.

다들 자기 일상의 팍팍함만 알았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고장의 여행지 같은 데서 남의 팍팍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란 얼마나 ‘문학적’인가. 폭염은 문학과 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린 바캉스 시즌 모두 반짝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이 계절 도서관도 숲속으로 피서를 떠난다. 숲속에서 고개 숙이고 책을 읽는 광경을 엿보는 것만큼 운치있는 광경도 흔치 않을 것이다. 읽다가 조금 무료하면 벤치에 지그시 눕는다. 읽던 책을 가슴팍에 얹어놓고 잠시 오수를 즐긴다. 한없이 살랑거리는 숲의 우듬지가 허공에 적어가는 여름날의 우수 같은 걸 그 자리에서 충분히 익힐 수 있었다. 그런 맘의 연장선상에 고향의 툇마루가 있었다. 부모가 바가지물로 시원하게 등짝을 식혀주던 ‘등목’, 냉장고 대용이었던 우물 안에는 늘 수박 한 개가 둥둥 떠다녔다.

출판사는 서둘러 바캉스 특선을 냈다. 대다수 편집만 달리한 베스트셀러북이었다. 우린 묻지 않아도 배낭에 장 그르니에의 빼어난 문장이 담긴 ‘섬’, 그리고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드는가’ 등을 넣고 무작정 완행열차나 시외버스를 탔다. 카페리조차 없었던 울릉도로의 여행은 해외여행보다 더 드라마틱한 구석이 있었다.

비치파라솔 아래 도사린 그늘, 심청색 바다, 우윳빛 모래사장. 그 그늘에서 만난 객수감으로 인해 여행자는 모두 ‘이방인’이 되었다. 지쳐 있던 일상의 스트레스는 펄럭거리는 뱃전의 해풍에 말끔히 지워진다. 그 틈을 비집고 흘러나왔던 키보이스의 바캉스 시즌 명곡으로 불리었던 ‘해변으로 가요’와 ‘바닷가의 추억’. 모두 그 여름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그땐 레포츠시설도 없었고 음청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리조트도 펜션도 없었다. 호텔은 언감생심, 다들 자기 사이즈에 맞는 텐트에 만족했다. 그 안에 식기 그리고 식재료까지 꽉꽉 넣고 떠났다. 동네 뒷산 만한 배낭을 진 여행자. 비록 그 하중은 자기 체중을 넘어섰지만 그 무게로 인해 여행자는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객차 안에서는 엉성한 음량의 야외전축, 튜닝도 제대로 되지 않은 통기타가 단연 주인공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부르면 열차는 졸지에 코러스가 흐르는 ‘서머트레인’으로 변했다. 발 디딜 공간이 없어 선반에 올라가던 괴짜 같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 시절 해수욕장이라고 하면 선택의 여지 없이 부산 해운대, 포항 송도, 강릉 경포대 정도가 고작이었다. 계곡이라면 지리산, 설악산, 대구권은 팔공산 정도였다. 조금 고생을 각오한 이들은 둘다섯의 명곡이자 한국 캠프송의 대명사로 사랑받는 ‘밤배’의 배경지였던 남해 상주해수욕장으로 갔다. 입구에 여인상 그리고 다이빙대까지 겸비했던 포항 송도해수욕장은 인산인해였다. 인파를 피해 그때까지만 해도 비포장길이었던 구룡포 해수욕장으로 빠져나갔다. 모든 게 불편해던 그 시절. 너무 편해진 지금의 심정으로 그 불편함이 그려냈던 추억을 회상하면 더욱더 감동적이었다. 이젠 모든 게 다 가능하고 모든 게 다 구비된 스마트폰 세상. 세상의 모든 바캉스조차 온라인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된다. 지자체마다 별별 올레길이 다 생겼다. 호텔, 리조트, 유스호스텔, 모텔, 펜션, 게스트하우스, 그것도 모자라 템플스테이, 고택스테이, 팜스테이 등 체험숙박공간도 줄을 잇는다.

하늘의 별빛보다 더 많을 것 같은 먹거리. 너무 푸짐하고 너무 편해진 지금 우리의 세상살이. 예전에는 충전이 답이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다. 다들 ‘방전(放電)’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 같다. 위클리포유도 2018년 지역의 괜찮은 바캉스 리스트를 보너스로 강추하니. 물건에 멍든 그대여,
부디 해브 굿 서머(Have good summer)!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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