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 -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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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2 10:02  |  수정 2018-01-02 10:05  |  발행일 2018-01-02 제30면
20180102
장미 作
20180102
이서연

빈 방에 남아 빈 방을 닦고 있는 거울처럼



그 집의 벽들은 아직 비에 젖고 있다

현관 앞에 쓰러진 우산이 있고 지붕을 넘어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소리 내어 운다 나는 꽃을 들고 있다



이른 새벽 청소부가 올 때까지

쓰레기봉투처럼 웅크리고 싶은 밤이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8차선 도로를 천천히 가로질러



죽어가는 밤과 죽은 뒤의 밤을

죽은 사람 곁에 앉아 산 사람이 지샌다

삶이 죽음으로 옮겨가는 낮을 지나

죽음이 삶을 전염시키는 밤으로



눈을 감고 있으면 생각 없는 몸이 어딘가로 간다

생각만 남아 몸을 생각한다



엎어진 화분처럼

방문을 쥐고 있는 젖은 손이 있다

손잡이를 말아 쥔 둥근 손등만 보인다



창문이 없는 방에 바람이 들이쳤다

먹구름과 흰 구름이 방 안을 지나간다

감은 눈 안으로 구름은 어떻게 들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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