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영남사람들 .37] 민족을 지켜낸 여성들(김락·남자현·정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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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원<대구경북개발연구원기자 
  • 2004-09-07 1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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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영남사람들 .37] 민족을 지켜낸 여성들(김락·남자현·정칠성)

"안동의 양반 이중업의 처는 대정 18년(1919) 소요 당시 수비대에 끌려가 취조를 받고 실명했다. 이후 11년 동안 고생하다가 소화 4년(1929) 2월 사망했다. 아들 이동흠은 그녀가 밤낮으로 적개심을 잊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2001년 8월15일 독립유공자로서 건국훈장에 추서된 안동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 김락(金洛: 1862∼1929)에 관한 일본 경찰의 극비 자료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의 한 대목이다. 그녀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이 석 줄 분량의 글이 전부이다.

김락은 경상도 도사(都事)를 지낸 부친 김진린(金鎭麟)과 어머니 함양 박씨 사이에 4남3녀 중 막내딸로 1862년 안동 내앞에서 태어났다. 집안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다복하게 자란 그녀는 당시 양산군수로 있던 이만도의 장남 이중업과 결혼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결혼 6년만에 시어머니를 잃었고, 시아버지는 1896년 을미의병 당시 예안의 의병장을 맡았다. 그녀의 남편, 시동생, 그리고 모든 집안 종복까지 의병에 가담하게 되었을 때, 불안하고 심산했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의병장이던 시아버지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에 항거하여 단식하다 순국했다. 남편은 부친의 뜻을 받들어 독립운동에 투신, 1919년 유명한 '파리장서' 사건에서 당시 유림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친정 식구들마저 만주로 망명길에 올랐다. 게다가 맏아들 동흠은 대한광복회에 가담, 독립 투쟁의 대열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녀는 1919년 안동에서 벌어진 3·1 만세 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혹독한 고문 끝에 실명했다. 이후 죽음에 이르는 10년여간 앞 못 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남편, 자식들과 함께 항일 투쟁에 매진했다.

김락은 의병장도 아니고 독립운동을 앞장서 주도한 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러한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자리를 펴주고 보살폈다. 그녀가 없었다면 훈장에 추서된 26명이나 되는 그녀의 독립지사 친인척들은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만의 투쟁으로 그려졌던 의병 항쟁의 역사에서 김락과 같은 여성이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일 뿐이다.

1920∼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무장 운동 진영에는 유일한 여성 대원이자, 만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던 여걸, 남자현(南慈賢: 1872∼1933)이 있었다. 그녀는 영남의 석학 영양남씨 통정대부(通政大夫) 남정한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딸에게 손수 글과 학문을 가르쳤으며 민족주의에 입각한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그녀는 19세 되던 해에 의성김씨 가문의 김영주(金永周)와 결혼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896년, 남편은 민비 시해 사건에 격분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가담, 홍구동 전투에서 전사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된 것이다.

유교 가문에서 자란 남자현은 독립운동에 뜻을 두면서부터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3·1운동에 적극 가담하면서 새로운 종교의 필요성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1운동 당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경험하면서 만주 망명을 결심했다. 만주에서 그녀는 석주 이상룡(李相龍)이 이끌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여성 대원으로 입대했다. 그녀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간호하는 일을 맡는 한편,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전투가 계속되던 이동 생활 중에서도 가족들을 위한 안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동시에 홀로 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는 효부이자 유복자 김성삼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이기도 했다.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살면서도 민족의 위기 앞에서는 분연히 일어선 그런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활동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남성들도 하기 힘들다던 비밀 항일 투쟁단체인 의열단(義裂團)에서의 활동이었다. 그녀는 환갑을 넘긴 6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1933년 만주 주재 일본 대사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의 암살 계획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그녀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하얼빈의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녀의 투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영어의 몸으로 그녀는 단식 투쟁을 벌이는 작은 전쟁을 몸소 실천에 옮겼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몸이 극히 쇠약해진 그녀는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 해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기생 출신이면서 사회주의 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정칠성(1897∼1958)의 삶은 매우 독특하다. 그녀는 나이 일곱에 기생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기생들이 12∼13세에 시작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녀의 가정 형편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18세에 대구에서 상경하여 남도 출신 기생들이 모여 있던 '한남권번'에 금죽이라는 기명(妓名)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그녀는 3·1운동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가로 다시 태어났다.

정칠성이 기생에서 민족주의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일찍이 사회를 경험하면서 현실 정세를 민감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사상기생'이라 불렀다. 그녀는 이후 1922년 일본에 유학, 사회주의 여성 운동 이념을 학습했다. 1년여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24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으며, 이듬해 경북에서 조직된 '사합동맹'에도 관여했다. 그리고 27년에 창립된 신간회의 자매 단체 '근우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근우회'는 여성 항일 구국 운동과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단체로 잘 알려져 있다.

정칠성이 관여한 단체들은 한결같이 여성 해방과 무산계급 여성에 의한 새로운 사회 건설을 목표로 했다. 그녀에게 진정한 신여성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부인하는 강렬한 계급 의식을 가진 무산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은 계급 해방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1945년 광복되던 해 그녀는 '조선공산당 경북도당 부녀부장' '조선부녀총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렇지만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남한에서의 합법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남로당계 인사들과 함께 월북했다. 그녀는 일관되게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여성운동가로 살았다.



'암탉이 울어도 집안 안 망한다'..영남여걸들 남성 못지않은 활약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특히 영남지역은 유교적 성향이 강하고, 가부장의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어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여성들의 활약이 활발해졌지만 말이다.

하지만 영남지역의 여성들에게서 집안을 지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민족을 지켜 낸 사례들이 적잖이 발견되고 있다. 민족을 지켜낸 영남 여성들은 특수 계층에 한정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양반 집안의 여성들, 몰락한 집안의 딸들, 그리고 기생 출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교육을 통해 민족혼을 고취시킨 동양의 여걸"로 일컬어지는 김천의 최송설당(1855∼1939), 향토 문학을 통해 민족과 여성의 고난을 표현한 경산의 장덕조(1914∼?), 영천의 백신애(1908∼1939), 안동의 조애영 그리고 빈민의 딸로 태어나 농민운동을 주도한 풍산의 소작운동가 강경옥(1850∼?) 등.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제까지의 역사가 소위 대의(大義)로 여겨질 수 있는 일만 기록하고, 남성만이 그 일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일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이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여성의 과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를 새로이 써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연재인물은 전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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