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하게 재연 여고생 성폭행 살해 고개돌린 유족

  • 입력 2006-09-19   |  발행일 2006-09-19 제6면   |  수정 2006-09-19
태연하게 재연 여고생 성폭행 살해 고개돌린 유족
여고생 성폭행 살해사건 현장검증이 열린 18일 오후 용의자 김모씨(50)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야산에 A양(17)을 암매장하는 모습을 태연하게 재연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살인용의자 현장검증

"저 죽일 ×." "짐승만도 못한 ×."

18일 오전 10시20분쯤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송현시장 인근 주택가에서 난데없이 욕설과 주민들의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지난 4일 귀가 중 납치돼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S여고 2학년 A양(17)의 살해용의자 김모씨(50)의 현장 검증이 진행됐다. 스포츠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김씨에게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A양이 김씨의 마수에 걸린 곳은 집에서 불과 3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A양을 기억하는 주민들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주민 이모씨(45)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면서 "저런 ×은 감옥에서 다시는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격앙된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의 욕설과 손가락질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씨는 두 손과 두 팔이 수갑과 포승줄에 꽁꽁 묵인 상태에서 자신의 범행을 태연스럽게 재연했다.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어린 여고생이 흉악범의 추악한 손아귀에 잡혀가는 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납치된 A양이 김씨에게 위협당한 상태에서 "독서실 갔다가 집에 가겠다"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던 성서4차산업단지 옛 비상활주로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달성군 가창면 백련사, 사체가 유기된 야산으로 이어진 도로를 달리는 동안 하늘은 검은 구름을 드리우다 끝내 빗물을 뿌렸다.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곳은 백련사로 가는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300여m 올라간 곳. 김씨의 범행이 재연되자 처음부터 경찰과 동행하며 분노에 싸인 눈으로 지켜보던 유족들은 차마 이 장면에서만큼은 눈길을 돌렸다.

"아저씨 차는 흰색 프라이드야, 알겠지?" "아니요, 아저씨 차는 흰색 티코예요."

김씨는 A양이 자신의 차를 정확히 알고 있자 그냥 놓아주면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서 A양의 옷으로 입을 막고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사체를 인근 야산에 유기했다.

가창댐을 거쳐 범행 현장까지 오는 길은 조용했다. 한밤중에 불빛도 보이지 않는 이곳까지 끌려 오면서 A양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사랑하는 부모님과 동생을 두고 꽃다운 생을 마쳐야 했던 A양에게 그날 그 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전영기자


◇현장검증 유족 표정

"피의자 얼굴은 왜 가리느냐. 저런 사람에게도 인권 보호를 해주느냐."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 송현시장 인근에서 A양(17)의 납치살해용의자 김모씨(50)의 현장 검증이 시작되자 친지들은 술렁거렸다. 김씨를 죽이고 싶다는 심정을 드러낸 A양의 고모는 "어디 얼굴 좀 보자"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김씨가 탄 경찰차 문을 손으로 두드리면서 "너도 똑같이 당해 봐야지"라고 소리쳤다. 그러다가 현장 검증을 지켜보던 주민에게 기댄 채 울음을 터트렸다.

A양을 성추행한 대구시 달서구 대천동 성서4차산업단지 옛 비상활주로에서의 범행을 재연할 때, 고모는 손으로 입을 막고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 뒤돌아 승용차로 향했다. 또 성폭행을 한 현장인 백련사 인근 야산에서는 옆 사람의 등에 기대 울며 "어떡해, 어떡해, 죽일 놈"이라는 탄식을 연거푸 토해냈다.

현장 검증을 차례차례 지켜보며 줄곧 담배를 입에 문 A양의 큰아버지(55)는 "꿈을 꾸는 듯하다"며 "아직도 그 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저런 놈은 감옥에서 내보내지 말았어야지, 내보내서 또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느냐"며 담배를 연방 피워댔다.

이모부 장모씨(53)는 "범인과 대면한 적이 있었는데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하지, 왜 어린아이를 죽여서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당신 인생을 망치느냐'고 말했더니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며 "솔직히 죽이고 싶은 마음이야 많지만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며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 A양 부모는 17일 대구시립화장장에서 A양을 화장한 뒤, A양이 8세때 태어나서 처음 가봤다는 화진포해수욕장 인근 바다에 유골을 뿌린 뒤 경남 창녕의 한 사찰에서 딸의 명복을 빌고 있다.

태연하게 재연 여고생 성폭행 살해 고개돌린 유족
어린 조카가 살해될 당시를 용의자 김모씨가 마네킹을 놓고 재연하자, 고모는 끝내 눈물을 보이면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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