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스타 영어강사 오성식

  • 입력 2009-03-27   |  발행일 2009-03-27 제32면   |  수정 2009-03-27
스타 강사 오성식 "영어 잘하는 비결? 무조건 빨리, 많이 하세요"
우리말 잘해야 영어도 잘할 수 있어
경제난 때문에 굿모닝쇼 종방
굿모닝팝스는 한시대의 아이콘
[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스타 영어강사 오성식

1990년대 청취율 65%를 자랑하던 라디오 영어프로그램 '굿모닝 팝스' 터줏대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오성식 선생님, 인터뷰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아, 예. 들었습니다"라는 다소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 굿모닝 팝스에서 듣던 그 목소리가 맞나 싶었다. 뒤이어 그는 "그런데 제가 지금 전화 받을 상황이 안됩니다. 인천공항인데, 캐나다 가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제 e메일로 기자님 휴대폰번호 좀 남겨주십시오"라며 다급한 상황인 듯 서둘러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와 만날 여건은 되지 않아 애초부터 전화로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문자가 왔다. '우선 e메일로 인터뷰를 한 뒤 부족한 부분을 전화로 하시면 어떨지요' 이리저리 전화요금도 많이 나오겠고, 그 방법이 현명할 듯 해서 '좋습니다'라고 답을 보냈다.

오성식에 관한 자료를 이것저것 뒤져 20여가지의 질문을 메일로 보냈다. 혹시 단답형식 답이 오지 않을까 괜스레 염려돼 '너무 짧지 않은 답을 부탁드립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괜한 염려였음을 며칠 뒤 알게 됐다. 전화와 함께 e메일이 도착했는데, 답장은 언뜻 보기에도 성의가 꽉찬 A4용지 9장 분량이었다.


- 캐나다 메이플릿지 교육청과 계약을 맺고 조기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캐나다에는 그 일과 관련해 가신 겁니까.

"네. 2006년에 캐나다 메이플릿지 시 교육청과 초·중·고생의 캐나다 유학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2007년 1월에 '오성식 국제학교'(www.osscanada.org)의 1기생 11명으로 조기유학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불과 1년8개월이 지난 지금 모두 43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일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이 일로 저는 1년에 6번 정도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지요."



- 조기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시던데, 몇살 쯤 어떻게 영어교육을 받는게 좋은지요.

"언어 습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입니다. 우리 뇌에는 LAD(Language Acquisition Device, 언어습득장치)라는 것이 있는데, 이 기능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우리 뇌에서 소멸되게 됩니다. 따라서 사춘기 이전에 배우고자 하는 언어를 부지런히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조기유학을 떠나는 것은 말리고 싶습니다. 또 중학생이 되어 유학을 떠나면 귀국 후에 우리나라의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문제를 겪는 등의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따라서 초등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가 조기유학 연령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성식 선생님하면 굿모닝팝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90년부터 약 10년간 진행하신 프로그램인데, 애착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저를 굿모닝팝스의 오성식으로 소개합니다. 굿모닝팝스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굿모닝팝스는 팝송을 통해 영어를 배운다는 새로운 장을 만들어냈어요. 음악을 듣기 위한 방송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었죠. 10년 동안의 굿모닝 팝스를 통해 가장 뇌리에 남는 말은 저의 클로징 멘트였던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오늘도 정말 행복하셔야 합니다'일 겁니다. 다소 생뚱맞죠. 사실 굿모닝팝스를 통해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즐거움과 살아있다는 존재의 행복감을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행복하세요'라는 멘트는 굿모닝팝스를 통해 제가 최초로 쓴 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노래말이나 시에나 나옴직한 말이었거든요."

- 굿모닝팝스 시절 당대 최강의 영어 강사셨죠. 최고의 강사가 되신 선생님만의 비결은요.

"제가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족함에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고, 건강 상태가 양호한 사람도 아니고, 부잣집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제게는 타고난 성공의 밑천이었던 셈이죠. 뭔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니까요."



- '내 영어는 길거리에서 배운 것'이라고 표현하시던데, 한국 토종파 강사로서 선생님만의 영어학습 노하우는요.

"오성식에 대해 연구 많이 하셨네요.(웃음) 제가 이 정도로 인정받는 영어강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말을 잘해서일 겁니다. 영어만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미래를 향한 무기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도 무척 중요합니다."



- 영어 잘하는 비결 좀 알려주십시오.

"영어를 잘하는 비결은 딱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른 나이에 영어학습을 시작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많이 하라는 겁니다. 유창한 영어를 원한다면 정말 영어로 많이 떠들어야 합니다. 잘 듣기를 원한다면 많이 들어야 되고요. 하지도 않고 잘 하기를 바라니까 될 리가 없잖아요. 그죠?"



- 굿모닝팝스 방송 10년을 몇달 앞둔 2000년 4월 쓰러지셨는데요. 일하신다고 건강관리는 뒷전이셨던 모양입니다.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저는 확실히 일중독 증세가 좀 심합니다. 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고 일에 빠져듭니다. 그러다가 1998년 정기검진에서 C형 간염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낯선 지병을 갖게 됐지요. 의사 선생님은 당장 일을 그만두고 쉬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었어요. 텔레비전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로지 굿모닝팝스만 하고 있다가 병원신세를 지게 된 것이지요."



- 굿모닝팝스도 그만두고 200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는데, 미국 생활은 어땠습니까.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족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우리 큰 애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제가 본 딸의 모습은 자고 있는 것이 전부라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하느라 집안 일에는 소홀했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은 운명적으로 영어를 잘해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제가 다녔던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에 객원연구원으로 2년 동안 가족과 함께 가게 됐던 겁니다. 2년 동안 가족과 평생토록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그때 영어가 참 많이 늘었죠. 1년이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두 아이가 집에서도 항상 영어만 쓰더라고요. 그런데 2년이 될 때쯤에는 말·행동·생각 모두가 미국식으로 변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어요. 자식 교육을 위해 잠시 미국에 갔다가 부모·자식 간에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이 올 것 같더라고요. 겁이 나서 귀국했습니다."



- 2003년에 한국에 돌아오셨고, 투병 6년 만인 2006년에 '오성식의 굿모닝쇼'로 방송에 재기하셨죠. 그 사이에는 무엇을 하셨는지요.

"불과 2년 만에 귀국했는데도 많은 것이 변해 있더라고요. 그러던 중 2003년에 드디어 C형 간염에 대한 신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저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기쁜 소식이라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셨죠. 신약이었기에 후유증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치료기간을 1년으로 잡고 배 주위에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등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하면서 마치 항암치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어요. 머리카락이 빠지고 온몸에 열이 났죠. 우울증 증세가 심하게 오면서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 호흡 곤란 증세가 있어 하루에 두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게 됐습니다. 결국 6개월 만에 치료를 중단했어요. 이런 경우 재발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재발을 안했습니다. 치료를 중단하면서 서서히 컨디션도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06년 3월26일부터 원음방송에서 '오성식의 굿모닝쇼'를 시작하면서 방송에 재기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경제난으로 제작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지난 2월27일자로 종방을 하게 됐습니다. 조금 쉬다가 적당한 기회에 다시 방송을 해야죠. 방송은 제 삶의 일부니까요."



- 영어와 관련된 일만 20년 가까이 하고 계신데,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으신지요.

"없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 하는 조기유학 일은 새로운 분야여서 무척 재미있습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상태로 캐나다에 온 초등학생이 6개월 정도 지나 아예 우리말을 쓰지 않고 온종일 영어로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놀랍습니다. 교육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렇게 큰 교육의 결과물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또 있겠습니까?"

- 혹시 대구와의 인연은 있으십니까.

"대구와는 많은 인연이 있지요. 먼저 오성식 영어클럽이라는 영어학원이 대구지역에 많이 있어서 자주 내려오는 편입니다. 현재 캐나다 오성식 국제학교에도 대구의 초등학생들이 4명 재학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해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한 대한민국 영어교육박람회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대구라는 지역이 주관하는 행사이지만 규모면이나 실속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으뜸가는 영어교육 박람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올해도 이런 신화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작년에 이어 오는 5월22~24일에 대구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영어교육박람회(대구시·영남일보 공동주최)에도 초청강사로 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강연을 할 예정이고, 어떤 분들이 참석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신다면요.

"이번 강연의 주제는 '국제화시대의 자녀교육'입니다. 자녀의 영어 교육에 대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초·중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좋은 강연이 됐으면 합니다. 조기유학에 대한 도움말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지금까지는 제가 영어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하면, 앞으로는 영어교육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국제교류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 볼 생각입니다. 초·중생들의 관리형 유학도 그 한 분야이고, 추후에는 아시아권의 뛰어난 초·중·고생들이 온라인상에서 아시아 및 국제문제를 자신의 나이에 맞게 조명해 보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또 대학생들의 인턴십 프로그램과 교사들의 재교육 프로그램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영어 교육은 영어 그 자체만을 배우는 한정된 교육에서 벗어나 영어권 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영어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성식은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했다. 1990년 10월부터 당대 최고의 인기 영어 방송이었던 '굿모닝팝스'를 진행하다 방송 10년을 몇달 앞둔 2000년 4월 C형 간염으로 쓰러졌다. 투병 6년 만인 2006년 '오성식의 굿모닝쇼'로 방송에 재기했다가 지난 2월 제작 여건 악화로 종방을 하게 됐다.

현재 (주)OSS 에듀그룹 이사장, (주)오성식영어연구원 대표이사, (주)오성식 국제학교(OSS International Academy)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주니어 전문 영어학원인 '오성식 영어클럽', 유치원 전문 영어학원인 '오성식 키즈랜드', 원어민과 원께 하는 전화영어인 '오성식 전화영어', 방과후 수업 및 기업체 영어교육 전문프로그램인 '오성식 에듀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오는 5월22~2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영어교육박람회'(053-384-7245∼6)에 초청강사로 참여한다.

사진= 오성식 영어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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