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피아니스트 백혜선 "나 원래 수영선수였어요"

  • 입력 2009-11-13   |  발행일 2009-11-13 제38면   |  수정 2009-11-13
29세에 최연소 서울대 교수, 그런데 11년뒤에 그만뒀죠
왜냐고요? 제게 안맞는 옷이라고 생각했죠
실력 타고 났냐고요?
아뇨, 재능 있다고 생각 안해요
[클로즈업人 사람속으로…] 피아니스트 백혜선

"만4세11개월에 콩쿠르 도전"…"초등생땐 경북신기록까지 세운 촉망받는 수영선수…최윤희선수와 경기한 적도 있어요"

◇ 출생 : 1965년 6월20일 대구

◇ 학력 : 뉴잉글랜드 음악원 피아노학과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 수상 : 미국 메릴랜드 윌리암 카펠 콩쿠르 1위(1989년)

영국 리즈 콩쿠르(1990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은상(199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1위 없는 3위(1994년) 등

◇ 경력 : 1994~2005년 서울대 교수 역임

백혜선씨는 13일 오후 7시30분 천마아트센터 그랜드홀에서 세계 무대 데뷔 2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가진다. 5만~2만원. 1544-0113

지난 4일 신문을 들쳐보며 피아니스트 백혜선씨(44)가 대구무대에 오른다는 걸 알았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백혜선씨가 이렇게 유명한 피아니스트인지 신문기사를 모두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녀의 이력은 화려했다. 1994년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수상 직후 29세에 서울대학교 사상 최연소 교수로 임용, 2005년 전문연주자의 길을 가기 위해 교수직 사임…. 게다가 대구 출신이기까지 했다. 솔깃했다. 와이드 인터뷰 대상으로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둘러 알음알음 통해 연락을 취했다. 투어 공연 중인 그녀의 스케줄 등을 고려해 전화로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했다. 좀 아쉬웠다. 좀 더 일찍 공연소식을 알았다면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지난 10일 오후 7시35분쯤 공연 기획사인 부산아트매니지먼트 이명아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이 대표는 '지금 혜선씨가 집으로 가고 있다니 8시5분에 전화하세요'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숨이라도 돌리라고 5분 정도 늦게 전화하려고 했다. 진정 '기자 타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후 8시9분 이 대표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전화 안 온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녀는 말이 빨랐다. 기자의 타이핑 속도가 그녀의 말 속도를 따라가기는 버거웠다. 노트북을 물리고 볼펜을 쥐었다. 그녀와의 인터뷰는 9시까지 이어졌다. 사실 몇가지 질문을 더 던지고 싶었는데 그녀가 다른 업무가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웃으며 한마디했다. "지금까지 했던 말로도 충분하실 것 같은데요. 책도 쓰시겠어요." 기자도 웃었다. 그리고 동의했다. 어떻게 정리할지 스스로도 깜깜해하면서….

◇…피아노와의 첫 인연

- 언제 어떻게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습니까.

"부모님이 모두 의사였죠. 두분 다 늘 바빠서 외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외할머니가 되게 신식 분이셨어요. 영어도 하시고 그랬거든요. 1970년대 초반이었는데 만 4세인 저를 피아노학원에 데리고 다니셨죠. 숫자도 모르는 아이였으니 어려움이 있었죠. 학원 측에서도 좀 더 커서 오라고 했는데 외할머니가 그냥 계속 데리고 다니셨어요. 11개월 후인 만 4세 11개월 때는 서울 피아노 콩쿠르에 처음 나갔어요."

- 지금으로 쳐도 어린 나이인데요. 피아노 학원 가기 싫다고 떼쓴 적은 없었나요.

"재미로 했으니까요. 그리고 피아노가 그냥 하루 일과 중 하나였어요. 오전 6시 일어나면 외할머니가 코코아를 만들어 주셨어요. 그리고는 바로 피아노 연습을 했죠. 학원 갔다와서 또 연습을 했고요. 그때는 싫고 좋고가 없었죠. 그냥 그게 몸에 익은 습관이었어요."

- 초등학교 때 촉망받는 400m 장거리 수영 선수였다고요. 당시 수영과 피아노를 병행했다던데, 수영은 피아노보다 소질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하셨나요.

"초등학교 5~6학년 때 수영 경북 신기록도 갖고 있었어요. 소년체전도 나갔는데, '아시아의 인어'라 불리는 최윤희 선수와 함께 경기를 했어요. 제 옆에서 팔을 돌리는데 너무 빠르더라고요. 그걸 보고 내가 대구에서는 잘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기에는 트레이닝이 모자라는구나 절감했죠."

◇…중학교때부터 홀로 서다

- 서울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인 예원학교을 다녔더라고요. 그 학교는 어떻게 갔습니까.

"초등학교 때 방학마다, 현재 영남대 음대 추승옥 교수님이 저에게 레슨을 해 주었어요. 선생님은 대구 출생이었고,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이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수소문해서 선생님과 연결이 됐는데, 방학이면 서울에서 내려와서 하루에 10시간씩 피아노 지도를 해주었어요. 오전 9시에 와서 밤 10시에 가셨거든요. 예원학교가 있다는 것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돼 시험쳐서 들어갔어요. 2년 다녔을 때, 선생님이 유학을 가신다고 하더라고요. '유학갈 때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해서 같이 가게 됐어요. 인연이 엄청 깊죠. 그런데 선생님은 단 한번도 저를 키웠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겸손한 분이세요. 오히려 제 입에서 영원한 선생님이라는 얘기가 나오죠."

- 추 교수님께서는 백혜선씨가 재능이 있다고 봤나봐요.

"남다르다고는 생각했겠죠. 10시간씩 연습시키는 걸 다 따라하는 초등학생이 잘 없지 않겠어요. 선생님도 그래요. 어느 대학원생이 초등학교 연습시켜 달란다고 서울에서 내려와서 그렇게 레슨해 주겠어요."

- 그럼 추 교수님과 함께 유학생활을 한 거라 적응하기 쉬웠겠어요.

"1년 같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는 결혼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그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기숙사 생활을 했죠. 고등학교 때는 변화경 선생님, 대학교 때는 변화경 선생님의 남편인 러셀 셔먼 선생님께 사사를 했어요. 제가 유난히 스승 복은 많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 아! 아버지

- 서정주 시인은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음악적으로 이만큼까지 오게 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늘 저를 너무 우습게 보셨어요. 1989년 미국 메릴랜드 윌리암 카펠 콩쿠르에서 1위를 했을 때도 하신 말씀이 '너 하나밖에 안 나갔구나'였거든요. 저를 하찮게 보시니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안간 힘을 썼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 대한 반항도 심했고, 아버지 말씀의 반대로 나가려고 했죠. 저희 아버지가 정말 보수적인 분이였거든요. 유학간다고 할 때도 비행기 티켓 찢기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교회 반주나 하지 유학은 무슨 유학이냐' '여자는 24세 이전에 시집가야 된다' 그러시는 분이였거든요. 제가 뉴욕 링컨센터에서 세계 무대 첫 데뷔 독주회 가졌을 때 아버지가 공연장에 오셨어요. 그때 위암 말기여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무대를 보신 건데요. 공연 보시고 '이 정도로 할 줄은 몰랐다. 네가 피아노랑 결혼했다고 생각하고 가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네가 후에 정명훈씨랑 같이 무대에 서면 좋겠다'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죠. 정말로 10년 뒤에 정명훈씨와 함께 무대에 섰어요. 감회가 남달랐고,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었어요."

- 스스로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저는 지금도 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력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 그럼 하루에 최대 몇시간까지 피아노 연습을 해봤습니까.

"대학교 때, 쉬지 않고 피아노를 몇시간 칠 수 있나 테스트를 해봤어요. 14시간 치겠더라고요."

'화장실도 안 가고요'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에이~ 화장실이야 가죠. 그 정도의 짧은 휴식 시간은 가지고요"라고 답변했다.

◇…세상을 놀라게 하다

- 1994년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 최초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1위 없는 3위를 했는데, 그 상은 어느 정도 권위있는 상이라 생각하면 되는 겁니까.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당시에 러시아는 공산국가여서 입국하는 한국사람도 거의 없었고, 동양사람들이 그 대회에 참여하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동양인에 대한 괄시도 심했고, 자국 출신자에게 상을 많이 줬어요. 잔인한 콩쿠르였죠. 정명훈 선생님도 1974년 미국 국적으로 그 콩쿠르에 나가서 공동 2위를 했잖아요."

'그럼 당시 2위는 러시아 출신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네. 1위는 없었고, 2위 러시아 출신, 3위가 저였죠'라고 답했다.

-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 후, 29세의 나이로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이 되는데요. 교수 제의를 받고난 뒤 심정이 어땠습니까.

"제 뜻보다는 서울대 교수는 대단히 영광이고 영예로운 자리인데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변화경 선생님도 교수를 하라고 했거든요. 부모님도 교수 자녀를 두는 게 꿈이었고요. 중학교 때부터 한국을 떠나 있었으니까 교수직 수락으로 한국을 접하는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고민을 별로 안하신 건가요.

"그래도 고민을 했죠. 그런데 학교 측에서 연주 마음대로 하면서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교수생활 5년이 지나고 보니까, 제가 학교의 법이란 법은 다 어기고 다닌 거더라고요. 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했을지…. 이건 아니다 싶었죠. 정말 철부지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셈이었죠."

- 교수직 수락에 대해 후회는 없었나요.

"처음 들어간 순간부터 후회했어요. 이건 내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학교는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인데, 그에 비해 저는 너무 자의적이었으니까요. 그만두려고 했을 때 학교 측에서 잡기도 했고, 30대 중후반에는 결혼하고 애 낳고 한다고 그만두지 못한 것도 있어요."

◇…또 하나의 화제

- 2005년 교수직을 사임하면서, 최연소 교수 임용에 이어 또한번 놀라움을 던져줬는데요. 한 인터뷰에서 교수, 연주자, 엄마로서의 1인 3역이 너무 힘들어 교수를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셋 중 뭐가 제일 힘든 것 같습니까.

"음…. 사실 그 말이 제가 사임한 가장 정확한 이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 역할 모두 쉽지 않은데요. 그래도 굳이 하나 꼽으라면 엄마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고 어떤 분야로 나가는 게 좋을지 이끌어 주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 지금까지 탄탄대로 인생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뜻대로 안된 일도 있었습니까.

"20대는 콩쿠르 입상에 학위 취득 등 계획대로 된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시기인 것 같아요.(그녀는 착각이란 두 글자에 힘을 주었다.) 한국에 있었던 30대에는 10년동안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꼈어요. 연주만 하더라도 연습 많이 한다고 잘 친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연습은 대비일 뿐, 결과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녀에게 대구는

- 이번 공연은 세계 무대 데뷔 20주년 기념 독주회죠. 이번 공연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20주년 기념이다보니 상징적 의미가 있고요. 딱히 특징은 없는데…. 성숙한 음악인으로 거듭났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더라고요. 저는 나이밖에 먹은 게 없는 것 같지만요."

- 지역마다 관객들 반응에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구 관객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까.

"제 고향이니까 감회가 남다르죠. 3~4살 때부터 저를 알던 분들이 계시니까요. 늘 반갑고 친근해요. 관객들도 제가 대구 출신이라는 걸 알고 더 반겨주고 친근감 있게 느끼는 것 같고요."

- 대구 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나요. 대구에 대한 기억도 많은가요.

"초등학교 때까지 대구에 살았고, 제가 3남1녀 중 셋째거든요. 오빠 2명이 아직 대구에 살아서 대구 오면 뵙죠. 그리고 대구 오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동대구역에 가면 피아노 레슨 받으러 서울 다녔던 것도 생각나고요."

- 공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습니까.

"공연 3~4시간 전에 1시간 정도 낮잠을 잡니다. 컨디션을 좋게 하려고요. 잠 안와도 억지로 자려고 노력해요. 또 연주 전에 시집을 보는 편이고요."

-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무엇입니까.

"연주를 충실히 해야죠. 전국 시리즈도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연주자로서 연주만 하겠다고 교수직을 그만둔 건 아닙니다. 교육은 언제나 저의 관심사예요. 후배에게 늘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대학생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고요. 전임 자리 아니고 저를 왔다갔다 내버려 두는 자리라면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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