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제일관 원래위치에 완벽복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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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관기자 
  • 201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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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성을 부활시키고, 영남제일관을 원형대로 복원하자.'

대구 중구청이 최근 '대구읍성 부활과 근대역사문화벨트 DB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광화문과 숭례문처럼 이번 사업은 철저한 고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옛 사진연구가 정성길씨(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는 "최근 거의 완벽하게 복원된 서울 광화문은 물론, 현재 복원 중인 숭례문의 경우 원형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데 비해 현 영남제일관은 졸속으로 이뤄졌다"면서 "지금이라도 영남제일관은 옛 대구읍성내 원래 위치에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일제가 허물었던 대구읍성의 상징, 영남제일관 옛 사진을 영남일보에 공개했다. 정씨는 1998년 옛 영남제일관 사진을 처음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추녀와 여첩(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지금까지 공개된 옛 영남제일관 사진에서도 추녀와 여첩이 이번만큼 뚜렷이 보이는 것은 없다.

영남제일관은 1906년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과 도로개설을 빌미로 친일파 박중양의 주도로 대구읍성을 헐어버리면서 동문이었던 동성로의 진동문, 북성로의 공북문, 서성로의 달서문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구읍성의 남문인 영남제일관은 현재 대구시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과 종로가 만나는 지점에 존재했다고 알려지며, 나머지 3개의 문에 비해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영남제일관은 1980년 대구상징물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대구시가 수성구 만촌동 망우공원에 다시 세웠으나, 당시 제대로 기록된 사진자료가 없어 복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성루의 위치·규모·품격 면에서 원형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문의 규모도 원형보다 1.5배나 크고, 2층 문루의 기둥을 4개로 만들면서 칸수가 3칸으로 줄어들었으며, 현판의 글자체도 원형과 다르다. 2층 문루의 칸수는 경상감영의 권위와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숭례문을 비롯한 서울의 4대문은 5칸, 전주의 호남제일관은 3칸이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은 도시의 품격을 좌우하는데, 복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시는 "내년부터 도심 바닥에 읍성을 쌓는 장대석 연장 및 성문복원 등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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