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은 ‘성공적인 기부채납’을 보지 못했다

  • 김진욱,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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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9-19  |  수정 2011-09-19 07:49  |  발행일 2011-09-19 제3면
범어네거리 지하공간·도서관 문제투성이
취지와 달리 비슷한 금액의 공사로 대체
오히려 市 예산 들여 철거하고 새로 짓기도
20110919
공사가 중단된 대구시 수성구 범어권 구립도서관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대구 수성구청은 최근 도서관 기부채납을 약속한 시행사와 시공사를 상대로 법적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말 많고 탈 많은 ‘기부채납’ 왜?
대구 수성구청이 민간사업자로부터 기부채납받기로 한 범어권구립도서관(가칭)이 1년3개월째 공사가 중단되자 잔여공사 금액을 확보하기 위한 소송을 하기로 결정하면서(영남일보 9월14일자 9면 보도) 기부채납 사업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범어권구립도서관처럼 제때 기부채납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부채납받은 건물이 너무 낡아 행정기관이 자체 예산을 들여 철거를 하는 사례도 있다. 또 당초 계획과 다른 장소에 기부채납되는 시설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앞으로도 대구시에 기부채납되는 시설물이 많아, 기부채납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한 상태다. 기부채납이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으로부터 무상으로 재산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골칫덩이가 된 기부채납 시설물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주상복합아파트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시행사인 <주>해피하제는 두산위브더제니스를 건립하면서, 두산위브더제니스와 연결되는 방향의 범어네거리 지하상가와 범어권구립도서관을 건립해 기부채납키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해피하제는 범어네거리 지하상가를 대구시에 기부채납했다. 범어권구립도서관은 완공후 수성구청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범어지하상가 조성에 투입된 금액은 480억원, 범어권 구립도서관 건립에 필요한 자금은 250억원이다.

대구시는 범어네거리 지하상가를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기부채납받은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면서, 이곳의 72개 점포는 아직도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대구의 최대번화가중 한곳인 범어네거리의 지하상가 한켠이 1년7개월째 썰렁한 채로 있는 셈이다.

범어권구립도서관은 80%의 공정률속에 지난해 7월이후 공사가 중단돼 있다. 수성구청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시행사인 <주>해피하제뿐만 아니라 시공사인 두산건설을 상대로 재산가압류와 손해배상 소송 등을 통해, 남은 공사금액을 확보해 자체적으로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8년 10월 대구시에 기부채납된 앞산수영장은 기부채납 시설물이 대구시 예산을 낭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구시 부지에 앞산수영장을 건립해 운영하던 <주>대원개발은 16년간의 무상사용기한이 끝나자, 앞산수영장을 대구시에 기부채납했다.

대원개발은 앞산수영장을 계속 사용하고 싶었지만 관련 규정상 사용기한을 연장할 수 없게 되자, 시설물 관리를 소홀히 했다. 기부채납될 당시, 앞산수영장은 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철거해야 했다. 이 때문에 앞산수영장을 기부채납받은 대구시는 4억원을 들여 철거했다. 대구시가 철거할 건물을 기부채납받은 것이다. 대구시는 앞산수영장 부지에 110억원을 투입해, 앞산수영장과 비슷한 복합형 스포츠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계획과 다른 곳에 들어선 시설물

지난해 하반기에 입주가 시작된 수성구 황금네거리의 주상복합아파트 ‘SK리더스뷰’에 대한 교통영향향평가 때, 대구시는 교통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해 SK건설이 황금네거리 지하차도(캐슬골드파크아파트~중동교 방향·길이 640m 폭 16.5m)를 만들어 대구시에 기부채납토록 했다.

그러나 황금네거리 인근 캐슬골드파크아파트 주민들의 반대로 지하차도 건설은 무산됐다. 대신 수성구 지산동 대구지방경찰청 앞 무학로(두산오거리~지산네거리)와 인근 청호로(관계삼거리~황금아파트네거리)를 잇는 터널을 건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공사금액이 황금네거리 지하차도를 개설하는 비용 200억원과 비슷하고, 황금네거리 교통량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고 대구시가 판단한 것이다. 이 터널이 수성구 지산·범물동을 오가는 교통량을 분산할 수 있어, SK리더스뷰 건립에 따른 교통혼잡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교통영평가때의 기부채납 취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대체 교통시설물 논란은 그 전에도 있었다.

수성구 두산동의 주상복합아파트 ‘대우트럼프월드’가 들어설 때도, 대우트럼프월드 건립 이후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민간사업자가 두산오거리에 고가차도를 건립해 기부채납키로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상동교~두산로구간 고가차도 건설로 대체됐다. 공사금액이 200여억원으로 기부채납해야 할 고가차도 건설비와 비슷했다. 하지만 대체 교통시설물이 대우트럼프월드와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곳에 들어서자, 기부채납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대구시의회 등에서 제기됐다.

◆기부채납 시설물 이어진다

기부채납은 주로 두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주택건설사업자가 아파트를 건립할 때 공익시설물을 지어 행정기관에 기부채납하는 것과 공공기관 소유의 부지위에 민간사업자가 특정 건축물을 지어 사업을 하면서 10~20년 뒤에 기부채납하는 것이다.

범어네거리 지하차도나 범어권구립도서관을 비롯해, 대구지방경찰청앞 무학로와 청호로를 잇는 터널 공사 및 상동교~두산로구간 고가차도가 전자에 해당한다. 앞산수영장은 후자에 해당한다.

주택건설사업자에게 기부채납받는 것은 해당 아파트 분양가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며, 결국 과도한 기부채납은 아파트 분양가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분양가 안정화 대책 중 하나에 과도한 기부채납을 받지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공부지를 무상사용한 민간사업자가 특정 건축물을 기부채납하는 것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구시가 향후 기부채납받을 대형 시설물이 적지 않다.

민간이 운영중인 대구스타디움 인근의 자동차극장(부지 면적 1만3천여㎡)은 2015년말 대구시에 기부채납된다. 대구스타디움 활성화를 위해 2003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민간사업자가 운영한 뒤, 대구시에 기부채납하는 것이다. 자동차극장의 주요 시설물은 관리동 1개와 스크린 2개. 앞산수영장처럼 대구시비를 들여 철거해야 할 시설물을 넘겨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구스타디움 서편 주차장 부지 지하에 조성된 대구스타디움몰도 민간사업자가 운영하지만, 20년이 지나면 대구시가 떠안아야 할 시설물이다. 지하에 쇼핑몰, 영화관 등이 들어서는 대구스타디움몰은 지상건물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20년뒤면 개보수가 필요한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수성구 어린이공원 주차장 부지에 건립될 예정인 대구뮤지컬전용극장도 대구시에 기부채납되는 방식이다. 민간사업자가 20년간 사용한 뒤, 대구시에 넘긴다는 방침하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시 부지위에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하도록 하는 것은 당장 대구시비를 들이지 않고, 대구시가 필요로 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기부채납 시설물이 먼 훗날 대구시에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만큼, 기부채납 사업을 추진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기자 jwoo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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