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강추! 이 집 어때요' 코너 문 닫으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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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0-21   |  발행일 2011-10-21 제42면   |  수정 2011-10-21
주방 아줌마 “화학조미료 퍼붓는데 손님북적 이해 안 가”
“화학조미료에 의한 감칠맛, 우리의 혀는 속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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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당

- 맛집 소개를 중단하며

신문·방송·포털·블로그·지자체 등, 너도나도 소개 ‘맛집’ 60만개 달해
더 이상 기사를 싣는다는 건 무의미, 식재료 고유의 맛 내는 식당 찾을터

‘맛집은 없다!’

독자들은 ‘왜냐’고 되물을 거다. 대답하겠다.

김재환 감독의 독립영화 트루맛쇼.

국내 식당가와 방송 프로그램의 블랙 커넥션을 가차없이 고발했다. 한국 외식사상 첫 충격이었다. 우리 방송이 좀 타격을 입고 움찔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식당들은 솔직히 식문화발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어쨌든 살아남고 싶어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빨리 자신을 알려주는 언론을 이용하려고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한말(韓末·대한제국 마지막 없다. 그 시절 금쪽 같은 식재료도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대기업이 반제품형 먹을거리를 지천으로 토해냈다. 첨단주방기기 덕분에 주인은 요리기본을 몰라도 장사하는데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음식이 아니고 흡사 ‘조립품’ 같다. ‘립싱크’ 같다고나 할까. 진검이 아니고 ‘목검’ 같다. 정색이 아니고 ‘흉내’만 내는 것 같다.

식자재 백화점에 전화만 걸면 수백 종류의 육수와 탕류를 입맛대로 구할 수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식재료가 창고에 가득 쌓여있다. 식품공정상 법정첨가제를 넣지 않으면 유통될 수 없다. 냉동고에 정체불명의 식재료가 대기중이다. 유통기한은 단속나올 때만 유효하다.

냉면 육수도 별의별 게 다 있다. 육개장, 곰탕, 추어탕, 갈비탕 등도 비닐포장돼 나온다. 공장형 된·간·고추장, 김치에 점점 길들여져가고 있다. 유통되는 반제품 식재료는 이미 조미료에 범벅이 돼 있다. 제대로 된 재래식을 만들려면 원가가 공장형보다 훨씬 비싸다. 오랜만에 오는 사위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 다들 편하게 간다. 주방에 들어가면 식재료 포장지가 수북하다. 요리사가 꼭 ‘부품조립공’ 같다.

◆ 이미 전국의 식당이 모두 맛집식당으로 추락했다.

벼룩시장 같은 식당정보지들이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천에 깔리고 있다.

게다가 숱한 파워블로거들이 식당을 소개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으며, 전국의 지자체마다 자기 고장을 대표하는 맛집을 추천한다. 이와 함께 국내 식당을 관광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관광공사, 각종 외식잡지, 블루리본 같은 음식가이드북 등이 ‘식당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에도 추천 식당이 입맛대로 올라가 있다. 아니 제멋대로 올라가 있다고나 할까.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면 맛집이 도배돼 있다. 이미 60여만개의 전국 식당은 언론에 거의 다 노출됐다.

유명 맛집에 가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흡사 북한 지도자급 장교들의 훈장처럼 벽 전체에 언론사 방송 및 취재 일자가 빼곡하게 나열돼 있다. 사람들이 맛집을 갈구하니, 그런 수요가 있으니, 당연히 방송사도 신문사도 맛집 코너를 챙기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나온 식당, 저기서 베끼고, 그렇게 재탕, 삼탕, 언론이 식당을 밟고지나갔다.

맛집이 ‘공해(公害)’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오죽했으면 ‘우리집은 방송과 신문에 소개 안된 식당’이라고 반발하는 식당까지 생기겠는가.

◆ 현대인의 입은 더 이상 입이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맛의 주체성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언론의 보도에 의해 자기 혀가 줏대없이 움직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식당을 찾을 겨를도 열정도 없는 사람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언론에 보도 된 식당을 향해 흡사 몽유병 환자처럼 간다. 대구에 3만여개의 식당이 있으며, 인구 대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식당이 밀집해 있다. 반면에 음식값은 가장 싸다. 그러니 전국에서 식당으로 성공하기가 가장 어려운 도시가 됐다. 심하게 말해 10개 식당 중 1개 정도를 빼고 나머지는 10년을 못넘긴다. 식당주들은 “식솔의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순 없다”고 말한다.

다급해진 그들은 좋은 식재료보다 단번에 혀를 유혹할 수 있으며, 효과도 즉석에서 나오는 해결사 같은 ‘양념’에 더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 회사의 그 화학조미료가 아직도 건재한 것이다. 그 결과는 뭔가. 당신들이 지금 먹고 있는 ‘어느 집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감칠맛 일색의 조미료 투성이 정크푸드’인 것이다. 그런 곳의 주방의 찬모들은 가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이렇게 화학조미료를 많이 사용하는데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이해할 수 없네. 참 이상한 일이지.”

좋은 식재료에 목숨을 걸 수 없다.

그것에 목숨을 걸면 음식값 대비 원가 부담이 너무 치솟기 때문에 감히 엄두를 못낸다. 그들은 묘수를 안다. 화학조미료를 비롯 각종 향신료, 양념 등을 메이크업하듯 저급한 식재료에 융단폭격을 할 수밖에 없다. 식재료에 자신없는 그들은 육수라도, 간이라도 맛있게 하려고 머리를 짠다.

자연히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작전세력’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수백만원을 주고 비법의 맛을 전수한다. 그 맛은 제철 좋은 식재료의 맛이 아니다. 남아야 하기 때문에 재료는 적당하게 싼 걸 쓸 수밖에 없고 대신 ‘비아그라’ 같은 효력을 가진 조미료를 넣는다. 화학조미료, 설탕, 물엿, 치킨 파우더 등을 마구 투하한다. 설탕보다 200배 더 단맛이 강한 아스파탐(Aspartame),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액, 인조 고추기름 등이 가세한다. 과일향과 맛까지 공장에서 만들 수 있다. 음식이 꼭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나온 것 같다. 맛의 스펙트럼도 지극히 한정돼 있다. 양념 맛이 대동소이하다 보니 팔도 식당의 맛이 99%는 같아질 수밖에 없다.

호남도 예외가 아니다. 샴푸 모델로 나오는 여성의 머릿결 같은 미끌거리는 감칠맛이 난다고 하면 이는 모두 화학조미료를 넣고 인위적으로 만든 육수를 베이스로 한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굶어죽지는 않았다. 이제는 톱 프랜차이즈 식당이 대구 외식수요의 50% 이상을 집어삼켰다. 이들 프랜차이즈도 10년을 못 넘기고 거의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일반 식당은 더 이상 생존이 버겁다. 체인점은 한마디로 ‘떴다방’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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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추 맛집 코너도 접습니다

그래서 맛집 식당을 소개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강추 이식당’ 코너도 정중하게 문을 닫는다. 올챙이 식당출입기자 시절, 기자는 맛있는 집의 비밀을 잘 몰랐다. 맛집 주방에서 자기 음식을 폄훼하는 말들을 들었다. 요리에 지친 조리사와 찬모의 눈매에서 ‘금쪽같은 딸을 먹여살리는 귀한 사위를 위해 요리를 하는 장모님의 마음’과 같은 설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양념도사들이 작전세력으로 개입해 한번 먹으면 절대 입에서 뗄 수 없는 기절할 정도로 맛있는 맛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맛내기 실험’을 거듭했다. 공식처럼 다시마, 무, 건새우, 양파, 대파, 적당한 한약재 등을 넣고 육수를 냈다. 모두 따라했다. 그 결과 동태, 황태, 북어, 삼계탕, 대구탕, 복어탕, 추어탕의 국물맛이 동일해진 슬픈 세상이 도래했다. 식재료가 정말 싱싱하다면 솔직히 별다른 양념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런 음식의 맛은 절대 미끌거리지가 않는다. 제대로 된 육개장도 절대 감칠맛이 나지 않는다. 우린 지금 감칠맛이 나야 정말 맛있다고 말한다. 장례식장에서 내는 그 공포의 육개장 맛을 기억할 것이다.

감칠맛은 ‘자연의 맛’이 아니다. 마치 투기세력들이 벌이는 땅투기와 같은 맛이다. 그 맛은 결코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맛없는 음식에 승부를 걸어야 된다고 본다. 그게 제대로 된 음식이다. 우리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맛있는 음식만 먹고 다닌 탓인지 성인병 환자가 급증한다. 음식으로 인해 생긴 병을 음식으로 치료하는 ‘힐링푸드’가 뜨고 있다. 그들은 맛을 포기하고 식재료의 고유한 맛을 찾아다닌다. 배 위에서 금방 잡은 생선에 물과 된장만 넣고 끓인 국이 왜 특급 육수가 들어간 식당의 국보다 더 진한 감동을 주는 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이제 그만 맛있는 식당을 예찬하자.

그래야만 양심적인 음식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토양을 만들자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조작을 통해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는 마음이, 정성이 양념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주인이 직접 장을 보고, 재료가 없으면 절대 손님을 받지 않고, 제철 식재료가 아니면 요리를 하지 않고, 식당에 사람이 과도하게 몰리면 음식에 충실하지 못한다면서 손님을 그만받는 양심적이고 우직한 오너셰프가 다시 그립다.

이제 맛은 없어도 제대로 된 멋진 식당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비록 외롭고 힘든 것은 물론, 성원의 박수도 받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떠나려고 한다. 우보지행(牛步之行)으로 말이다.

식당만큼은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믿는다. 줄 서는 식당, 우리 외식문화의 수치란 생각이다. 일본의 대를 이은 노포(老鋪)인 ‘시니세’는 줄서는 걸 결코 거부한다.


이춘호 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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