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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건축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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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경기자
  • 201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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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에 묻혀 학문에 전념하려던…

“세상에 발을 잘못 내디뎌 세속을 따르느라 골몰하다 보니 수십 년의 세월이 홀연히 이미 잘못 지나갔다. 고개를 돌려 회상하여 보니 망연자실할 뿐이라 내 몸을 어루만지며 크게 탄식할 뿐이다. 그래도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은 몸을 거두어들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옛 서적을 찾아내어 깊은 뜻을 찾고 뜻을 풀어보니 때때로 내 뜻에 맞는 것이 정말 옛날부터 이른바 ‘공부에 몰두하면 혼연히 밥 먹는 것도 잊는다’고 한 말이 나를 속이지 않음을 알겠다. 겨우 몇 칸의 집을 엮어 이제부터는 곧바로 죽을 때까지 기약하고, 묵묵히 앉아 고요하게 학문을 완성하면서 여생을 지내려 한다.”(본문 64쪽)

퇴계가 50세 되던 해에 안동 계상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그 감상을 적은 글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퇴계는 일찍이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을 닦으면서 살고자 했다. 퇴계는 이 글을 쓰고도 한동안 조정의 부름을 받아 관직생활을 했지만, 결국 쉰일곱이 되던 해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도산서당을 지어 바라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산서원’의 원래 이름은 ‘도산서당’이었다. 퇴계가 생전에 학문 탐구의 처소로 삼고자 지은 건물이 ‘도산서당’이고, 퇴계 사후에 퇴계의 유지를 기리고자 후학들이 도산서당을 확장해 지은 것이 ‘도산서원’이다.

이 책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퇴계 이황과 그가 지은 도산서당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건축역사학회장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자는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퇴계 이황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건축가로서의 면모를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김동욱 지음/ 돌베개/ 320쪽/ 2만3천원)
16세기 조선의 선비들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입각해 사당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냈다. 선비들이 공부하는 서당을 직접 짓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퇴계 역시 자신의 집과 서당을 직접 건축했다.

저자는 조선의 뛰어난 사상가 퇴계를 16세기의 뛰어난 건축가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건물 터를 살피고, 집의 쓰임새를 궁리하고, 경제적 여건을 염두에 두어 가장 적절한 크기와 형태의 집을 계획하는 일이 건축가의 역할이라면 퇴계가 한 일이 바로 건축가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도산서당은 16세기의 대표적 서당이며, 16세기 이후 선비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조선의 선비 건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다. 도산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건축물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도산서당의 건축적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저자는 도산서당이 공간적 기능을 크게 장수(藏修)와 유식(遊息)의 공간으로 나누고, 학문을 닦는 동시에 공부로 피로해진 심신을 달래는 휴식의 공간을 적절히 배정한 것으로 본다. 내부는 크지 않고 소박하고 단정하게 구성함으로써 조선의 건축 전통을 계승했다. 또 사대부의 집답지 않게 네모난 기둥을 써서 애써 격을 낮춘 점, 아무런 치장 없이 간소하고 질박한 외관을 유지한 점은 퇴계가 학문을 닦으면서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지 시사한다는 것.

무엇보다 도산서당을 지으면서 단지 건물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집 곁에 못을 파 연꽃을 심고, 샘을 뚫고, 마당을 둘러싸는 울타리를 두르고, 사립문을 냄으로써 집과 원림(園林: 집터에 딸린 숲)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하나의 건축물이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퇴계가 궁극적으로 찾고자 한 것은 학문을 완성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며 “건축과 조경을 아우르는 통합적 건축물인 도산서당에서 산수간(山水間)과 경계를 나누지 않고 자연을 여유롭게 품에 안음으로써 그곳 공간 전체를 인문화한 것이 퇴계의 높은 인문경지로 나타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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