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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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7-20   |  발행일 2012-07-20 제40면   |  수정 2012-07-20
[신작 對 신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다크 나이트 라이즈 : 러닝타임 2시간44분…배트맨의 장대한 마지막 대서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은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 나이트’(2008)에 이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모든 영웅에겐 임무가 있다, 영웅의 임무는 언젠간 끝난다’는 홍보 문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영화를 끝으로 더 이상의 배트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쉬워할 팬들을 위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영화의 스케일과 볼거리를 대폭 확장시켰다. 164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을 할애해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배트맨’ 시리즈의 장대한 대서사를 완성시킨 것. 영화는 조커와의 대결을 끝으로 모습을 감춘 배트맨의 8년 후 이야기로 시작한다.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을 살인자로, 하비 덴트를 범죄와 싸운 의인으로 꼬리표를 붙인 이후 고담시는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됐다. 하비 덴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안은 배트맨과 그 비밀의 내막을 알고 있는 고든 경찰청장(게리 올드만)은 보다 큰 선과 평화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 그렇게 평화가 지속되던 고담시에 파멸을 예고하며 등장한 악당 베인(톰 하디)으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은둔의 길을 택했던 브루스 웨인은 결국 위험에 빠진 고담시를 구하기 위해 나서기로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배트맨에게 베인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놀란 감독은 배트맨의 전설을 이야기하기 위해 ‘배트맨’ 3부작 모두 브루스 웨인의 여정을 쫓는 것에 천착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부모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겪은 후 자신의 정체성과 가야 할 길에 대한 방향성을 찾았다면, ‘다크 나이트’에선 그 길을 발견함과 동시에 공공의 적이 된 배트맨의 혼돈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나약한 모습의 브루스 웨인에 주목했다. 사실 새로운 적으로 등장한 베인은 시리즈 중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강하고 위험한 인물이다. 배트맨과 비견되는 강한 상대를 원했던 놀란 감독은 베인을 가공할 만한 힘을 지닌 무적의 상대로 설정했다. 그만큼 일당백의 배트맨이라도 이번만큼은 정의를 수호하기가 녹록지 않을 거라는 얘기. 캣 우먼으로 불리는 셀리나 카일(앤 헤서웨이)과 부호이자 웨인 기업의 임원인 미란다 테이트(마리옹 코티아르), 젊은 경찰관인 존 블레이크(조셉 고든 레빗) 등이 배트맨의 새로운 조력자로 나선 건 그 때문이다. 특히 셀리나는 검은색 옷과 수트를 즐겨 입는다는 점에서 배트맨과 묘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또 배트맨을 조롱하는 듯한 장난스런 방식은 고전영화의 팜므파탈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배트맨 신화의 마지막 전설을 담은 영화답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액션 장면이 무려 100분에 달한다. 게다가 러닝타임 중 55분 가량을 아이맥스(IMAX) 카메라로 촬영했으니 스펙터클한 영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당연하다. 놀란 감독은 3D나 CGI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 최대한 하나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세트를 만들어 촬영한 ‘인셉션’의 무중력 공간 회전 장면이나 초대형 트럭을 도로에서 실제로 뒤집은 ‘다크 나이트’의 트럭 전복 장면 등 등장하는 모든 장면들의 실사촬영으로 사실감을 추구해왔다. 그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세처럼 여겨지는 3D 촬영을 하지 않는 것도 일에 대한 자신감과 고집스러움 때문이다. 놀란 감독은 스크린을 우리의 삶보다 거대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캔버스로 활용하고자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2D디지털, 2D아이맥스 방식으로 담아냈다. 덕분에 실측 모형으로 제작된 배트맨의 비행 이동수단인 더 배트, 텀블러 등 최첨단 신무기들의 등장도 흥미롭지만 초반의 비행기 하이재킹 장면, 차례로 무너지는 현수교들과 미식축구 경기장의 붕괴 등은 이 영화의 스케일과 실체적인 화려함을 더했다. 그 중 배트맨과 베인의 마지막 격투 장면은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만하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모든 열정을 불태워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다. 북미지역 비공식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관계자들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놀란 감독 최고의 역작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작 對 신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죽음 앞둔 90세 노인이 어린 소녀와 첫사랑에 빠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년만의 신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90세의 노인과 어린 소녀의 러브스토리를 다뤘다는 점에서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았다. 다소 도발적인 소재지만 마르케스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이 이야기는 섬세한 인물설정으로 진정한 사랑에 눈뜨는 노인의 감정을 낭만적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영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이를 원작으로 마르케스와 동갑내기 친구인 헤닝 칼슨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랑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마르케스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기제가 되어왔고, 헤닝 칼슨 역시 자신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여인들을 미치도록 사랑한 주인공들의 삶에 천착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는 90세 노인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통해 고독에 대한 성찰, 경이로운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고집스럽고 보수적인 신문사 비평가 엘사비오(에밀리오 에체바리아)다. 12세 때 실수로 사창가를 가게 된 후 평생 그곳의 여인들과 함께하며 진실된 사랑의 감정을 알지 못하고 독신으로 살아왔다. 90세 생일을 하루 앞 둔 아침, 살아있는 뜨거운 몸으로 침대에서 눈을 뜬 엘사비오는 ‘자신에게 풋풋한 처녀와의 꿈 같은 사랑의 밤’을 선물하기로 결심하고, 단골 마담(제랄딘 채플린)으로부터 앳된 소녀(파올라 메디나)를 소개 받는다. 엘사비오는 그녀와의 만남 이후 난생 처음 오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사랑, 증오, 질투, 괴로움, 좌절이라는 감정이 그의 안에서 열병처럼 번져 버리게 된 것. 그리고 사랑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늙음과 목전의 죽음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와 그를 괴롭힌다.

엘사비오가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러브스토리는 실제로 존재했다. 세기의 거장으로 지금도 칭송받고 있는 예술가들은 황혼의 나이에도 열렬한 사랑을 나눴고 그 사랑의 힘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74세에 19세의 처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와 사랑에 빠졌다. 또 스페인이 낳은 20세기의 걸출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화려한 작품 이력만큼이나 여성편력도 화려했다. “나이는 숫자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야”라고 말한 엘사비오의 대사는 그들과 같은 감정을 교류하고 싶었던 마르케스의 심경을 함축적으로 대변한다. 마르케스는 비행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영감을 얻었고, 이 소설을 이듬해인 77세에 발표했다.

어린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엘사비오는 사랑의 감정과 함께 자신의 늙음과 죽음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늙어 가는 것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부인하기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재의 사랑에, 이제야 알게 된 첫사랑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한다. 그의 일요칼럼은 더 이상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글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는 연애편지가 되고, 노인은 이제 소녀를 사랑하는 일에만 온전히 남은 생의 시간 모두를 바치리라 결심한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그 어떤 작품보다 노장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주인공인 사비오 역의 에밀리오 에체바리아와 로사 역의 제랄딘 채플린은 원작에 표현된 생의 마지막을 앞둔 노년의 고독과 두려움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사랑의 설렘과 죽음의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 에밀리오 에체바리아는 멕시코의 스타 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알폰소 쿠아론 감독 등과 작업하며 이름을 알린 관록있는 연기파 배우다. 또 영화 ‘닥터 지바고’의 토냐 역으로 유명한 제랄딘 채플린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인 유진 오닐의 외손녀이자 찰리 채플린의 친딸로 역시나 스크린 가득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노년에 접어든 사창가 포주 역할을 맡은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은 단연 돋보인다. 덕분에 죽음에 가까워진 시점에서야 사랑을 시작하게 된 노인에 대한 안타까움은 ‘살아있음’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삶의 소중함과 살아있기에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뜨겁게 적신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다소 파격적인 소재처럼 도발적이거나 선정적이기보단 한 노인의 순애보를 따뜻한 남미의 풍광과 제대로 어우러지게 만든 거장의 손길이 느껴지는 한폭의 파스텔화 같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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