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속 예술가들 .19]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 부부

  • 김수영 박관영
  • |
  • 입력 2012-08-14   |  발행일 2012-08-14 제30면   |  수정 2012-08-14
자연·향기·평화… 이 부부가 사는 법
[전원 속 예술가들 .19]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 부부
조각가 고수영(오른쪽)·허선희씨 부부가 자신들이 가꾼 마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당 곳곳에 보이는 조각은 이들 부부의 작품이다.


경산시 압량면에 자리한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 부부의 작업실은 지금 나리꽃이 한창이다. 작업실 입구와 뒷마당 곳곳에 큰 키와 탐스러운 주홍빛 꽃잎을 자랑하는 나리꽃이 피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국과 코스모스를 비롯해 크고 작은 다양한 색깔의 꽃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즐기고 있다. 이들 꽃은 1998년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고씨 부부가 직접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키운 것들이다.

“작가에게 안정된 작업실을 마련하는 것은 최고의 꿈입니다. 빌려 사용하는 작업실에서 작업하면 늘 불안한데, 자기만의 안정된 작업실을 갖는다는 것은 큰 기쁨이지요.” 부부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떠나 6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2001년 귀국한 고씨 부부는 경산시 하양읍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우사로 지어진 건물을 빌려 작업실로 썼는데, 2008년 이곳을 비워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주인이 이 우사를 팔아버린 것이다.

고씨는 “매달 월세를 내면서 작업실을 쓰는 것이 꼭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집주인이 나가달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했지만 생각을 바꿨다. 이참에 우리 부부가 쓸 작업실을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지만 이때 작업실을 만들지 않았으면 평생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중한 작업실이다 보니 이를 가꾸는 데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작업실이 거창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지만 작업실 주변에 꽃을 심고 곳곳에 자신들의 작품을 놔둠으로써 일반 전원주택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아내와 정성 들여 심어놓은 갖가지 꽃을 보면서 고씨는 자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고, 작업의 방향도 바뀌었다. 이탈리아 유학시절부터 ‘역동성’이란 주제로 추상조각을 주로 제작했던 고씨는 2009년 ‘향기’를 주제로 한 연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꽃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작품에 스며든 것이다.

“향기란 작품도 추상조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주된 소재가 꽃이다보니 구상적인 색채도 띠고 있습니다. 꽃이 가진 생명력,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담아내면서도 꽃의 형태를 작품 속에 가미해 구상적 특성도 살아있도록 만들었지요.”

이 작품은 꽃이 모티브가 됐지만 꽃 향기에만 국한하지는 않는다. 자연의 향기, 사람의 향기는 물론 사람이 가진 고유한 성격, 인간의 본성 등을 두루 아우른다. 나아가서는 향기를 통해 얻는 기쁨과 행복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원 속 예술가들 .19]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 부부
작업실에서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 부부.

나리도 코스모스도 있는 작업실
부부가 정성들여 함께 가꾼 꽃동산

살아 숨쉬는 것에서 나오는 향기
작품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줘

자연에서 느끼는 평화로움
자연스럽게 작품속에 스며들어

토끼 키우고 잠자리도 잡을 수 있어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하는 곳



[전원 속 예술가들 .19]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 부부
작업실 입구에 있는 그네에서 조각가 고수영·허선희씨부부가 아이들(앞줄 왼쪽 병천군, 오른쪽 병헌군) 및 작업실에서 키우는 개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 이전의 추상작품은 대중과의 소통에서 한계를 느끼게 하더군요. 작품이 너무 어려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향기 연작은 대중과의 소통에 새로운 물꼬를 트게 해주었지요.”

향기는 고씨가 주로 사용하는 소재인 돌이 주는 차가움도 많이 누그러뜨렸다. 향기 자체가 살아 숨쉬는 것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것이다 보니 작품이 훨씬 따뜻해 보인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뜻해 보이고, 단순한 듯하면서도 함축적 의미가 많이 살아 있는 것이 고씨의 작품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이다.

아내 허씨는 이곳에 들어온 뒤 새롭게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심적 평온함이 작품에도 그대로 스며들 수밖에 없다.

“유학생활 동안 여러 가지 심적 고통이 많았습니다. 그때 종교를 갖게 됐지요. 이를 통해 기도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됐는데, 저는 작업과정을 기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작업하는 동안 기도할 때의 평온함을 느낀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허씨의 작품은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예수와 마리아 등의 형상을 한 목조각 작품이 많다.

“종교적 성격의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작업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모형작업과 드로잉 등을 한 뒤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들어온 뒤 어느 순간부터 이런 과정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느꼈던 예수님의 모습을 바로 작품화한 것이지요. 어떤 정형화되고 계획된 모습이 아니라 제가 느꼈던 순간의 이미지를 작품화한다는 데서 예전과는 많이 다른 작업입니다.”

허씨는 작품 성격이 이렇게 바뀐 것은 결국 자연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이 작품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한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의 평온한 모습과 자연의 평화로움은 결국 똑같은 것이란 설명도 덧붙인다.

이곳에 들어온 뒤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이들 부부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작업실과 살림집이 차량으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다 보니 아이들을 수시로 작업실로 데리고 온다. 요즘은 방학이라서 아침에 출근할 때 아이들을 작업실로 데리고 와서 온종일 함께 생활한다. 아이들은 작업실 2층 서재에서 공부를 하고, 이들 부부는 1층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든다. 취재하러 간 날, 작업실 입구에서 기자를 먼저 반긴 사람도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날 앞마당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이렇게 마음껏 뛰놀수 없잖아요. 이곳에 데리고 오면 축구와 야구도 마음껏 하고, 곤충채집도 하지요. 아이들이 이곳에서 토끼를 키우는데 새끼를 낳아 일곱 마리나 됩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좀처럼 체험할 수 없는 것도 우리 아이들은 이곳에서 다양하게 경험하지요.”

큰 아들 병헌군(문명중 3년)과 둘째 아들 병천군(정평초등 3년)도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병헌군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질 못한다. 친구들은 토끼를 키우고, 잠자리와 매미를 잡으러 가는 것이 뭐가 재미있느냐고 오히려 묻는다. 그런데 이곳에 한 번 놀러와 보면 우리를 무척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고씨 부부는 작업실 한 켠에 ‘갤러리in숲’이란 작은 화랑도 운영한다. 애써 만든 작품을 일반인에게 소개하기 힘든 작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이들 부부는 전시공간을 찾지 못하는 지역의 많은 작가가 이 공간을 이용해 주길 바란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런 자신들만의 작업실을 갖게 돼 이들 부부는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이야기하는 부부를 보면서 자연을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속에서 피어나는 넉넉하고 자연스러운 웃음이 특히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과 비슷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고수영은 1967년 대구시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조소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와 이탈리아 로마 국립미술아카데미 조각과를 졸업했다. 1994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10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경북미술대전 은상, 신라미술대전 대상, 대구미술대전 우수상, 올해의 청년작가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현재 대구문화예술회관, 북구문화예술회관,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역 등에 소장돼 있다. 허선희는 1970년 경산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조소학과와 동 대학원, 이탈리아 로마 국립미술아카데미 조각과를 졸업했다. 3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성산미술대전 특선, 삼성현미술대전 특별상, 대한민국 신조형미술대전 특별상 등을 받았다. 울산 롯데호텔 정문 조형물, 부산 메디컬센터 ‘체코 프라하 천문 시계탑 및 예수 12제자’ 청동작품, 울릉도 도동성당 나무 십자가상 등을 제작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