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소·녀

  • 김호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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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15   |  발행일 2012-08-15 제9면   |  수정 2012-08-15
초등 3학년 강민서양
토끼 키우며 동물 사랑
“커서 수의사 될래요”
토·끼·소·녀
강민서양이 피비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나이 3세(생일 10월1일), 몸무게 2.2㎏, IQ 30에 별명은 돼지뽕~. 내 코에 뽀뽀하기, 슈퍼맨 자세로 선풍기 바람 쐬기, 똥오줌 확실히 가려서 누기, 냉장고 앞에서 말린 파파야 줄 때까지 서서 떼쓰기가 장기인 내 동생 피비를 소개합니다.”

‘토끼바보’로 불리는 강민서양(10·대구교대부설초등 3)은 맘 놓고 휴가도 떠날 수 없었다. 홀로 남겨져 있을 피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다. 피비가 차멀미가 심해 장거리 여행은 엄두도 못 낸다. 살던 둥지를 떠나 이동하는 그 자체가 피비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다. 외할머니가 오셔서 하룻밤 정도 돌봐 주시는 건 가능하지만, 그래도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민서양이 피비에게 동생처럼 애정을 쏟는 이유는 따로 있다. 토끼 나이 세살, 사람으로 치면 벌써 마흔줄에 들어섰다. 노년이 머지않은 피비이기에 민서양은 더욱 애지중지한다.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슴이 저려온다.

토끼와의 인연은 민서양이 1학년이던 어린이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물로 토끼 1쌍을 받았는데 키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팠다. 병명은 장폐색. 토끼를 위해 깔아놓은 패드가 원인이었다. 이빨이 간지러운 토끼가 본능적으로 자꾸만 패드를 갉아먹은 것이다. 비닐 패드는 장에 고스란히 쌓였고, 너무 어려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선고를 받았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탈진이 심해지더니 결국 죽고 만 것이다.

그날의 충격과 슬픔은 민서양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2010년 9월8일 수요일 날씨 흐림. 새벽에 일어나 보니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엄마 보고 화장실에서 뭐하고 있냐고 물었다. 버니를 목욕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토끼는 설사하면 죽는다던데~ 큰일났다. 병원에서 버니 뱃속에 이상한 게 들어있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마음이 아프다. 불쌍한 토끼. 미안해. 나는 천사였으면 좋겠다. 밤 8시30분. ㅠㅠ 버니가 죽었다. 병원에서 화장. 사랑해! 버니야.”

다시 인연을 맺은 토끼는 3개월 만에 유행성 출혈열을 앓다가 코피가 터져 죽고 말았다.

민서양은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피비를 성공적으로 키워냄으로써 토끼박사 반열에 올랐다. 반려동물 건강수첩을 마련하여 꼼꼼히 피비건강을 챙겼다. No. 5031. 동물병원에 등록하여 각종 예방주사는 물론이고, 기생충 약을 투여해 진드기를 없애주는가 하면, 몸무게를 체크해서 신체발달상황을 수시로 수의사와 상의하고 있다.

피비가 없는 일상은 이제 민서양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민서양의 일기 속에, 동시(童詩) 속에, 토끼는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국어 교과서(말·듣·쓰 2-2)와 연계해 토끼에 관한 정보를 묻는 곳엔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있다. 지난해 과학탐구보고서 대회에선 토끼 행동 연구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자타가 공인하는 토끼바보이자 토끼박사. 경험에서 우러난 민서양의 토끼사랑만큼 학교공부 또한 뛰어나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민서양은 요즘 함부로 버려지는 토끼,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특히 관심이 많다. 다른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관심은 넓어졌다. 청도 소싸움 대회장에서 차마 경기를 계속 지켜볼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힘없이 죽어가던 토끼의 애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는 민서양의 꿈은 수의사.

“눈이 내리면 세상은 하얀 토끼로 변해요. 토끼 자동차, 토끼나무, 토끼우산, 눈이 내리면 세상은 하얀 토끼가족이 돼요”라고 노래하는 민서양에게 세상은 가장 큰 토끼다.

글·사진=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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