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피아노 112년전 대구에 있었다

  • 김은경,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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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9-14 08:14  |  수정 2012-09-14 10:31  |  발행일 2012-09-14 제2면
■ 대구문예회관 ‘韓 첫 신문물-피아노’ 포럼
美 선교사 부부, 달성군 사문진 나루(現 화원유원지) 통해 처음 들여와
1901년 들여온 것보다 앞서
짐꾼 20∼30명 동원 중구 집까지 3일간 옮겨
대구 온 최초 피아노 기념, 내달 ‘99대 피아노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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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들이 사문진 나루에서 대구시 중구 종로에 있던 선교사 사이드 보텀의 집으로 한국 최초의 피아노를 운반하는 모습. <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 제공>

“내 사랑 대구, 와이리 좋노~ 얼쑤.”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대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노래로 표현했다.

임동창은 13일 오후 2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사문진 나루로 들여온 한국 최초의 신문물-피아노’란 주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해 ‘대구아리랑’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임동창은 “대구는 음악적 저력을 가진 도시”라며 “대구 음악인들과 교류를 나누고, 발전적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달성군이 대구에 들어온 한국 최초의 피아노를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99대 피아노 콘서트’에 앞서 열린 행사다. 콘서트는 다음달 5~6일 피아니스트 이루마, 임동창 등 피아니스트 99명이 참여한 가운데 화원유원지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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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가 13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사문진 나루를 통해 대구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포럼에서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대구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었다.

발제를 맡은 손태룡 한국음악문헌학회 대표(대구 성광고 음악교사)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는 대구시 달성군 사문진 나루(현 화원유원지)를 통해 대구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최초의 피아노 유입과정’이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대구 최초의 피아노는 우드브리지 존슨과 에드스 파커 선교사 부부가 1901년 부산에서 낙동강을 통해 들여온 피아노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1년 앞선 1900년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사문진 나루를 통해 대구로 들어왔음을 여러 문헌자료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최초의 피아노는 1900년 3월26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사이드 보텀(한국명 사보담)과 에피 알덴 브리스 부부가 대구로 오면서 가지고 왔다. 당시 선교사 부부는 짐꾼 20~30명을 불러 사문진 나루에서 대구시 중구 종로에 있는 자신들의 집까지 3일간에 걸쳐 피아노를 옮겼다”며 “당시 인부들은 하루에 일당 10센트를 받았는데, 요즘 돈으로 치면 10만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선교사 부부는 이렇게 들여온 피아노를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데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1년 뒤 사이드 보텀이 부산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피아노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손 대표에 따르면 당시 사문진 나루는 낙동강 상류와 하류에서 모여든 장삿배들이 집결하고, 보부상들이 들락거리면서 영남지역 물류의 중심지였다. 사문진 나루를 통해 들어온 물자는 대구를 비롯해 강원과 호남 등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 때문에 사문진 나루는 그야말로 대호황을 누린 물품 중개지이자, 공급처였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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