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속 예술가들 .22] 박현옥 대구시립무용단 감독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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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9-25   |  발행일 2012-09-25 제30면   |  수정 2012-09-25
자연속에 들어오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답답했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자연의 강한 치유력 경험
몸과 움직임의 아름다움보다 서정성 강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
무용으로 고장난 몸, 무용으로 치료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자연이었죠
[전원 속 예술가들 .22] 박현옥 대구시립무용단 감독
박현옥 대구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가 그의 집에서 포즈를 취했다. “팔공산에 들어온 지 10년이 됐다”는 그는 “전원생활이 일상생활은 물론 무용작품에도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2004년 금복문화상’ ‘2008년 PAF 춤과 다매체상’ 등을 받았다. 2007년에는 서울무용제에서 ‘내 이름은 빨강’으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안무대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대구시 기초예술지원사업 대형공모에 선정됐다.현재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 대구가톨릭대 공연무용전공 교수, 한국무용교육학회 이사,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예술감독 등으로 있다.


최근 대구시립무용단 박현옥 상임안무자의 작품에는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2008년 대구시 기초예술지원사업 대형공모에 선정돼 만든 대작 ‘마돈나, 나의 아씨여’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 깊다.

무대 위에 넓은 배추밭이 펼쳐지고 그 위를 여자주역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현대무용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재인 배추를 이용해 박 감독은 평화롭고 생명력이 살아숨쉬는 자연풍경을 연출했다.

2011년 그는 대구시립무용단 창단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청산별곡’을 무대에 올렸다.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전반에 자연이 주는 평온함을 드러낸 것은 물론, 곳곳에 불교의 발우공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장면을 가미해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색채를 살려냈다.

박 안무자는 “인간이 현실 속에서 갖는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청산이라는 이상향에 다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청산은 자연을 의미하지만 현실의 속박과 고통에서 벗어난 이상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이처럼 자연이 작품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자연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 안무자는 2002년 팔공산 자락으로 집을 옮겼다. 30년 넘게 살던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전원으로 들어온 것은 우연히 팔공산에 있는 한 조각가의 집을 방문해 받은 신선한 충격 때문이다.

“아는 분과 함께 팔공산에 있는 작가집에 우연히 놀러갔습니다. 그 전에 저는 아파트 생활에서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지요. 그런데 그 작가의 집을 둘러보고는 같이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작업공간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원에서는 도심보다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 조각하는 작업장도 있고 이들 작품을 전시할 공간도 있었습니다. 특히 잔디가 잘 가꿔진 정원에 조각품을 배치해 놓은 것을 보고는 감동을 받았지요.”

그 당시 미술에도 관심이 많던 박 안무자는 무용연습실과 작은 공연장, 전시장을 겸한 복합공간을 열기 위해 현재의 이 집을 지었다. 그 즈음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 형편이 돼 살림집을 추가하게 되고 공간도 좀더 넓혀 건물을 올렸다.

“처음에는 이 곳을 연습실로만 쓰려했는데 집을 집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상황변화가 생겨 아예 여기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건물공사를 하다가 얼떨결에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불편도 많이 겪었고, 고생도 했습니다.”

[전원 속 예술가들 .22] 박현옥 대구시립무용단 감독


[전원 속 예술가들 .22] 박현옥 대구시립무용단 감독
공연 마지막에 주인공이 넓은 배추밭을 거니는 것으로 평화와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화한 작품 ‘마돈나, 나의 아씨여’를 대구시립무용단이 리메이크한 작품의 한 장면(왼쪽)과 대구시립무용단이 창단 30주년 기념작으로 무대에 올린 ‘청산별곡’의 한 장면. <대구시립무용단 제공>


특히 그를 괴롭힌 것은 벌레였다. 여성이면 누구나 무서워하니 이해가 된다. 세탁물, 쓰레기 등의 처리에도 불편이 따랐다. 아파트 같으면 세탁물은 세탁소에 맡기면 되고 음식물 찌꺼기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데, 이 곳에서는 이런 것이 모두 쉽지가 않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소한 불편이 힘들게 하더군요. 하지만 인간이 환경의 동물인 것이 맞더군요. 금방 적응이 되어갔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해결되더군요. 벌레도 우리와 같은 생명체인데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생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깨닫게 된 점을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생각의 전환은 결국 마음의 변화를 말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고, 마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 당연히 작품도 변할 수밖에 없다.

“이 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현대무용에서 몸의 움직임이 갖는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안무했습니다. 몸과 움직임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런 경향은 20세기 미국 현대무용의 예술형식 중 하나였는데, 오랫동안 여기에 매료됐지요. 하지만 이 곳에 들어온 후 서정성이 강한 작품으로 서서히 변해가더군요.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보이고, 가슴을 따뜻하고 평온하게 해주는 안무로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이처럼 마음에 집중하게 된 것은 이 곳에 들어온 후 박 안무자 자신이 경험한 자연의 강한 치유력 때문이다. 거의 매일 도심과 이 곳을 오가고 있는 그는 파군재에서 파계로로 들어오는 길을 ‘치유의 길’이라고 말한다. 번잡한 도심에서의 답답했던 마음이 이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무용치료쪽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전원생활을 하면서 얻은 좋은 변화 중 하나이다.

“무용치료에 관한 것으로 박사논문을 받았지만 안무자, 대학교수로 바쁘게 왔다갔다 하다보니 한동안 이 분야를 등한시한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무용가로서의 욕심이 앞선 것이지요. 하지만 이 곳에 들어온 후 우리 인간이 몸을 너무 과도하게 도구화하고 혹사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무용가는 몸이 도구이다보니, 더욱 육체를 고달프게 만들지요.”

그즈음 오랫동안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던 그의 몸도 한계에 다다랐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서서히 고장 신호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용으로 고장난 몸을 무용을 통해 치료해 보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몸이 편안해지려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즉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을 때의 그 상태로 돌려야 합니다. 무용치료는 육체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마음을 아기때와 같은 그 상태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는 무용치료를 움직이면서 자신과 교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하는 자아와 심리적인 자아의 교감을 통해 심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결국 외부의 사물이나 환경이 아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집중시켜주는 것으로 자연만한 것이 없다.

“도시 속에서 그냥 지나쳤던 작은 소리, 빛조차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자연입니다. 자연은 도시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느끼게 하지요.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 평화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것과의 만남이 많아지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지요.”

전원생활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당시, 이 곳을 연습과 창작공간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1년여 이렇게 운영하다가 이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람이 없고 관리가 힘들어 현재는 공간활용을 중단한 상태다.

박 안무자는 이 공간을 앞으로는 무용치료와 관련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

“유럽 등에서는 예술치유프로그램을 자연 속 공간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연습실도 이렇게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날 예술의 또다른 역할은 치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와 복지관, 양로원 등을 찾아 무용치료 봉사활동을 펼치는 한편, 이 곳도 다양한 예술치료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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