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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모화사상 탓 公山을 공산이라 하지 않고 팔공산으로 바꿔 잘못된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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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관기자
  • 20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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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일고 있다. 팔공산은 예부터 ‘공산’으로 불렸으나 조선시대 때부터 팔공산이 됐다.


구태서의 문집인 ‘돈와집(遯窩集)’. 돼지 돈(豚)에 ‘’이 있다.
담티고개의 담티는
담장처럼 높은 고개 뜻

옻골 명칭 대구에 2곳
북구 구암동 동산은
구암동산으로 불러야

돈지봉의 ‘돈지’는
돼지 아닌 왕건과 관련
豚趾를 遯智로 바꿔야

화원유원지 잔뫼는
잣뫼의 잘못

서거정이 읊은 ‘남소’
올바른 위치는
서문시장 부근이다

대구지하철 2호선 담티역에 있는 담티역 설명이 잘못 기록돼 있다.

대구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옻골동산도 구암동산으로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이정웅 위클리포유 대구지오 자문위원.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옛 영선못터 표지석.


◆담티고개는 담을 틔우듯이 산을 뚫은 고개가 아니다

대구지하철 2호선 담티역에는 담티역 유래에 관한 안내문이 3개나 있다. 모든 안내문에는 ‘일제강점기 대구와 경산 간에 신작로를 만들 때 산을 뚫었는데, 이때 산을 밀고 길을 만든 것이 집과 집 사이의 담을 틔우듯이 산을 뚫어 만들어 ‘담티고개’라 부르게 됐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얼토당토않다. 또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병을 온 명군 이여송의 지리참모인 두사충이 말년에 명당자리를 구하러 다니다 지금의 담티고개 부근에서 담(痰)이 끓어 숨을 거뒀다는 전설이 있지만 확인할 수 없다. 두사충을 기리는 모명재가 인근에 있지만 스토리텔링일 뿐이다. 한편 고갯마루에 서낭당과 당나무가 있어 당티로 부르다 담티로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오지만 억측이다.

이정웅 달구벌 얼찾기 모임 회장은 “실제 담티는 원현(垣峴), 즉 우리말로 담고개라는 뜻이다. 고개는 보통 한티재·곰티재와 같이 ‘티’로 쓴다”면서 “대동여지도(1861)에 대구-경산 고개가 마치 담장처럼 높은 고개, 즉 ‘대장현(大墻峴)’으로 나와 있는데 고개(峙)가 티로 변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 담을 틔우듯이 뚫었다는 내용은 황당무계하다.

현재 대구도시철도공사 홈페이지 담티 역명의 유래와 2002년 발간한 대구역사기행에는 원현이나 대장현 같은 이야기가 없다. 이 회장은 “지명을 잘못 해석해 이런 오류가 생겼다”며 “시급히 시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옻골동산은 구암동산으로 하는 게 맞다

옻골은 대구에 2군데가 있다. 하나는 동구 둔산동 경주최씨 옻골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대구시 북구 구암동 옻골동산이다. 서울에서 경주최씨 옻골마을로 가려는 한 관광객이 북구 구암동 옻골동산을 찾았다는 웃지 못할 실화도 있다.

19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될 때 옛 칠곡읍 지역인 관음동·국우동·도남동·동천동·읍내동·구암동·태전동·팔달동·학정동 등은 대구시로 편입됐다. 칠곡향교, 칠곡초등, 칠곡중 등 칠곡의 옛 중심지는 대구에 있는데 현재 칠곡군청은 왜관읍에 있다.

칠곡의 옛 이름은 팔거리다. 신라시대 팔거리현이 고려시대 팔거로 바뀌었고, 칠곡(七谷)으로 부르기도 했다. 조선 인조 18년(1640) 가산산성 축성을 계기로 팔거현이 칠곡도호부(七谷都護府)로 승격됐다.

칠곡(七谷)이란 이름은 팔거리현의 명산 가산이 일명 칠봉산(七峰山)으로도 불리는데, 산꼭대기와 골짜기가 7개라서 ‘七谷’이라 했다. 이후 일곱 칠(七)자를 칠(柒)자로 바뀌어 ‘柒谷’으로 불리다 칠(柒)과 같은 자인 칠(漆)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옻나무가 많아서 옻 칠(漆)자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대구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옻골동산과 매년 개최되는 옻골축제도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정웅 회장은 “최근 칠곡향교측이 건립 중에 있는 강북경찰서를 팔거경찰서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면서 “옻골동산도 구암동산으로 바꾸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돈지봉(豚趾峰)은 돈지봉(遯智峰)이다

대구동구청 홈페이지 안심동의 유래를 살펴보면 ‘돈지봉(豚趾峰)’의 명칭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산봉우리 밑으로 돼지를 주업으로 하는 농가들이 형성돼 그 돼지를 생계수단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많아 돈지봉이라고 불린다는 설이 있다’고 나와 있다. 또 동구청이 발간한 ‘내고장 동구를 찾아서’에도 같은 설명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구본욱 대구향교 장의(영남일보 위클리포유 대구지오 자문위원)는 “돈지봉은 대구시 동구 해안동의 옛 마을 신덕과 안심동에 걸쳐 있는 나지막한 봉우리로, 고려태조 왕건과 관련이 깊다. 왕건이 동수전투에서 견훤의 군사에 패해 동쪽으로 말을 달릴 때 이곳에 이르러 말을 숨기고 전열을 정비한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후 태조 왕건이 몸을 숨긴 산봉우리라고 해서 돈지봉(遯智峰)으로 부르고 왕건으로 새 덕을 입었다고 해서 신덕(新德)으로 불렸다”고 밝혔다.

구 위원은 “이러한 사실은 조선 고종 때 신덕에 은거하며 신덕서당과 용계서당에서 50년간 강학한 구태서의 문집인 ‘돈와집(遯窩集)’에 수록돼 있다”고 말했다.

구 위원은 또 “‘돈(遯)’은 ‘둔’으로도 읽히는데, 원래는 ‘돈’으로 읽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잔(盃)을 닮아 배산(盃山)이 아니라 잣뫼가 잔뫼로 둔갑했다

‘성산리(城山里)’는 대구시 달성군 화원유원지가 있는 낙동강변의 구릉지다. 이 구릉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은 윗잔미(성산 1리)와 아랫잔미(성산 3리)다. 화원유원지가 있는 동산이 마치 잔(盃)을 닮아 잔뫼 또는 한자로 배산(盃山)이라 했으며, 윗·아랫잔미라는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이 내용은 달성군이 펴낸 ‘내고장 전통가꾸기(1981)’라는 책에 나온다. 또 2002년 향토사교육연구회가 발간한 ‘대구 역사기행’286쪽 달성의 동명유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배성십경(盃城十景)이라는 한시도 있다.

하지만 이정웅 달구벌 얼찾기 모임 회장은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성산(城山)이고, 순우리말로 잣뫼”라면서 “잣뫼가 잔뫼로 둔갑해 배성(盃城)으로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래 잣(城)은 ‘성이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서거정의 남소는 영선못이 아니다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남소하화(南沼荷花)는 남소에 있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위클리포유 대구지오 자문위원)는 “남소의 위치를 성당못이나 지금은 사라진 영선못으로 비정하고 있으나 천왕당지가 있던 서문시장 부근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서거정(1420~1488)이 생존했던 시기에는 영선지가 없었으며, 달성 인근에 연꽃과 관련한 못이 연화제, 연신제, 연신신제 등 3곳이나 된다”고 했다.

남소 또는 남지는 해동지도, 여지도, 지승, 경주도회 등 지도책에 의하면 달성의 아래쪽, 즉 대구읍성 서문의 왼쪽에 위치한다.

전 위원에 따르면 18세기에 발간한 해동지도의 경우 지도상에는 남소만 표시돼 있고, 성당지, 연화지, 불상지 등은 ‘대구부의 주기’에 기록돼 있다. 따라서 성당지나 연화지가 남소가 아님은 분명하다.

한편 1920년대 일제는 연신지 또는 연신신지로 추정되는 천왕당지를 메우고 서문시장을 만들었다.



◆팔공산을 공산으로 돌려주자

팔공산(八公山)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팔공산의 원이름을 공산(公山)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팔공산은 옛날 곰뫼, 곰산, 꿩산 등으로 불렸다. 신라시대에는 중악(中岳), 부악(父岳) 등으로도 불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공산(公山)으로 나온다. 조선 초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공산 또는 팔공산으로 부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산이 팔공산이 된 이유는 첫째, 팔공산이 여덟 고을에 걸쳐 있다는 설(영종대왕 반거팔읍지지). 둘째, 왕건과 견훤의 동수전투 때 8장군이 순국했다는 설. 셋째, 8성인이 득도했다는 설. 넷째, 동화사 팔간자에서 유래됐다는 설 등이 있다.

이정웅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공산이 여덟 고을이 아니라 다섯 고을에 걸쳐있고, 8공신이 순직했다는데 신숭겸, 김낙, 외에 나머지 장군이 순직한 기록이 아무 데도 없다”고 했다.

전영권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중국 안후이성에 있는 팔공산에서 북조의 전진왕 부견과 남조의 동진왕 효무제 사이 팔공산 비수에서 대전이 벌어져 부견왕이 참패한 고사와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과의 동수대전이 유사성이 있어 팔공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는 문경현 전 경북대 사학과 교수의 주장이 유력하다”며 “중국의 고사에 빗댄 모화사상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

신라 때 팔공산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없는데 조선시대 팔공산으로 둔갑한 걸 보면 타당성이 있다.

정만진 대구지오 자문위원은 “공산 앞에 ‘팔(八)’자가 붙어 원래 공산(公山)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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