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26년·가디언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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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30   |  발행일 2012-11-30 제40면   |  수정 2012-11-30
[신작 對 신작] 26년·가디언즈


★ 26년

‘5월 광주’서 가족 잃은 사람들의 前 대통령 암살작전


‘26년’이 드디어 개봉한다. 기획부터 감독 내정, 캐스팅까지 무려 6년이나 걸렸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 암살 작전을 펼친다는 엄청난 내용 때문이었을까. 투자에 외압이 있었다는 소문까지 돌며 ‘26년’은 2008년부터 수 차례 제작이 무산되는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희망은 있었다. 바로 영화화를 바란 개인들의 간절한 열망이었다. 크라우드 펀딩(불특정다수가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금액을 모집하는 것)과 제작두레 방식을 통해 전국적으로 1만5천여 일반인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순 제작비 46억원 중 7억여원의 회비를 모았다. 그야말로 국민의 뜻을 모아 함께 만든 각별한 의미의 영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조폭 진배(진구), 국가대표 사격선수 미진(한혜진), 현직 경찰 정혁(임슬옹)이 한 자리에 모인다. 전혀 공통점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는 이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 앞에 대기업 총수가 된 김갑세(이경영)와 그의 양아들인 주안(배수빈)이 나타난다. 당시 계엄군이었던 김갑세는 도청 건물에서 불가피한 살해를 저지른 후 평생을 죄책감에 살아왔다. 그는 ‘그 사람’에게 사죄를 요구하고, 사죄하지 않을시 죽이겠다며 세 사람에게 이 일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저마다 울분을 참고 살아온 그들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강도는 관객들의 숨을 멎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고, 계엄군이 쏜 총에 내장이 튀어 나오고, 총과 구타에 짓이겨진 얼굴 등은 당시 희생자들을 사실적으로 모사했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26년’은 파격적인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로 화제를 모았던 강풀의 동명 웹툰을 모티프 삼았다. 강풀은 “어린 세대들은 5·18과 8·15를 헷갈려 한다. 그건 그 친구들 잘못이 아니다. 나이가 좀 더 들고, 알고 기억하는 우리가 제대로 전달자 역할을 못했다”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광주를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6년’은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루되, 현 시점에서 비극의 역사를 단죄하는 처절한 복수극에 천착한다. 연출은 ‘후궁: 제왕의 첩’ 등을 통해 감각적인 비주얼 실력을 인정받은 조근현 미술감독이 맡았다. 그는 26년 전의 과거를 되풀이해서 재연하지 않는 대신, 과거를 어떻게 환기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사실적인 재현보다 극단적인 상징에 방점을 찍은 연출방식으로 ‘26년’을 채색해 나갔다. 원작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를 제외시키는 한편,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강한 개성과 콘트라스트를 입혀 그들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부각시켰다. 그 과정에서 다이내믹함은 원작보다 훨씬 더 강조됐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끈 건 ‘그 사람’(장광)이다. 가공의 다른 캐릭터와 달리, 실체가 있는 ‘그 사람’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수시로 소환하고, 이를 진행형으로 만드는 절대 악으로 묘사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말야”라는 ‘그 사람’의 대사는 의도적이긴 하지만, 그들의 목표물이 되는 이유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렇게 분노를 추진력으로 삼을 만큼 탄력을 부여 받았으니 이제 모든 사람을 대신해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는 일만 남았다. 이를 위해 주인공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잇따라 좌절되는 암살 시도와 좁혀오는 수사망, 팀원 내부의 갈등과 돌출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수순으로까지 확장돼 나간다.

이 영화가 아쉬운 건 이 지점에서다. 그 사람이 현존하고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이야기 전개나 감정의 폭을 너무 단순화시켜 버린 건 무책임하다. 그마저도 벌려만 놓았을 뿐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미숙함까지 드러낸다. 때문에 주인공들의 감정과 행동이 관객들과 감정적인 공감을 자아내야 할 부분에서 그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원작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캐스팅은 좋았다. 특히 ‘그 사람’으로 분한 장광은 법으로도 합당한 처벌을 가하지 못한 살아 있는 권력의 상징을 생생하게 포착해냈다.

[신작 對 신작] 26년·가디언즈


★ 가디언즈

개성 넘치는 캐릭터·스펙터클한 비주얼 ‘동심 판타지’


‘가디언즈’는 애니메이션 명가 드림웍스가 내놓은 또 한 번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칸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총괄 제작을,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데이빗 린지가 각색을 담당하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추긴다. 연출은 ‘패닉 룸’ ‘캐스트 어웨이’ 등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했던 피터 램지가 맡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전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 상상력을 지켜주는 5명의 가디언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는 산타클로스 놀스, 땅굴 파는 데 일가견이 있는 부활절 토끼 버니, 매일 밤 아이들의 소망이 담긴 빠진 이를 가져와 그 꿈을 보관해주는 이빨요정 투스, 동화 같은 환상적인 꿈을 선사하는 잠의 요정 샌드맨이 그들. 여기에 새로운 가디언즈로 합류한 잭 프로스트가 있다. 이들 다섯명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파괴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당 피치에 맞서 싸우게 된다.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그렇듯 줄거리 자체는 단순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단조로운 서사를 상쇄시킬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대한 기대감이다. ‘가디언즈’는 가디언들의 배경 설화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서양의 전설 속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개성과 매력을 부여했다. 각각의 특별한 힘과 능력을 지닌 히어로로 탄생한 다섯 주인공들의 면면은 그런 점에서 ‘어벤저스’의 애니메이션 버전이라 불려도 무방할 만큼 활력이 넘친다.

잭 프로스트가 여심을 사로잡을 한국의 꽃미남 스타 이미지로 눈길을 끈다면, 양팔에 문신을 새긴 터프하면서도 다혈질 성격의 놀스와 날렵함을 자랑하는 일당백의 버니는 묘한 경쟁심으로 시종 웃음을 유발한다. 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기에 빠진 이를 소중히 보관해 둔다는 투스의 이야기는 서사의 뭉클함을, 늘 나른하고 순한 표정이지만 피치와의 대결에선 한 치 양보 없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샌드맨은 꿈과 희망의 소중함을 얘기한다.

‘가디언즈’는 17살의 몸을 하고 있는 300살 먹은 철부지 잭의 정체성 찾기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드림웍스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세태 풍자와 패러디는 살짝 배제된다. 잭은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하늘을 날고 서리를 만들고, 바람을 일으키고 눈을 불러오는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자신에게 왜 이런 힘이 주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 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가디언으로서의 어떤 책임감도 없고 목적의식도 없다.

잭이 진정한 영웅으로서 자신이 지닌 능력의 힘과 책임을 깨닫게 된 건 한 꼬마의 믿음에서 기인한다. 동시에 ‘가디언즈’는 잭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 아래 판타지의 세계와 그들의 활약상을 펼쳐간다. 먼저 각 캐릭터들이 운신하는 여섯개의 세계는 그들의 성격과 임무를 반영한 환상적인 비주얼로 스크린을 수놓는다. 드림웍스의 상상력과 노하우, 최첨단 3D 기술력이 동원된 이 영상은 마치 실사를 보는 듯 사실적이고 섬세하다. 3D와 IMAX의 결합은 역동적 비주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덕분에 도로를 가로지르는 썰매타기와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장면 등은 마치 난이도 높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속도의 쾌감은 물론 긴장감이 느껴질 만큼 짜릿함을 제공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현실과 유사한 배우들의 더빙 캐스팅은 이제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책임지는 결정타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휴 잭맨·크리스 파인·알렉 볼드윈·주드 로)에 못지않은 국내 더빙 캐스팅은 그런 점에서 적절했다. 이제훈·류승룡·이종혁·한혜진·유해진 등은 실사에서 보여준 연기력을 바탕으로 특유의 매력과 흡입력이 돋보이는 목소리로 극에 활력을 더했다. 오락성과 작품성을 갖춘, 연말 분위기에 제격인 가족용 애니메이션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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