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이우 대구우체국 마케팅팀장의 별난 수집人生

  • 박진관 천윤자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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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11   |  발행일 2013-01-11 제36면   |  수정 2013-01-11
우표·지폐·승차권·복권·입장권·초대권·담배포장지…‘기념종이’ 수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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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우씨가 자신의 방에서 평생 모은 우표를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천: 천사 같은 사람.

이: 이유 없는 사람.

우: 우체국 사람.

천이우 대구우체국 마케팅 팀장(52)의 명함에 있는 이름 삼행시다.

“누구든지 제 이름을 보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허허허.”

천 팀장의 아파트(대구시 북구 칠성동 성광우방타운)는 일명 ‘천사우정박물관’이다. 지난해 11월12일 이사를 오면서 구의원을 비롯해 지역 유지를 초청해 개관식도 했다. 개관식은 이번뿐만 아니다. 매번 이사를 가서 새집에 입주할 때마다 하는 연례행사다. 또한 그의 아파트는 ‘우체국민원봉사의 집’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25년간 우체국에 근무하면서 대문에 ‘우체국민원봉사의 집’이란 라벨을 붙여놓고 이웃주민으로부터 받은 편지나 우체국택배 같은 잔심부름 봉사를 하고 있다. 현재 천 팀장은 13년째 대구우체국에서 계절상품과 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다.

천 팀장이 우체국에 입사한 건 운명(?)이다. 1971년 5월25일부터 우표 모으는 취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우체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일본에 있는 한 친구와 해외펜팔을 했어요. 매일 우표를 사러 우체국에 갔는데 작은 망치로 편지를 ‘탕탕’ 두드리며 소인을 찍는 우체국직원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우표 수집을 하다 우체국에 입사한 거죠.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우표부터 먼저 샀습니다.”

그는 우표 말고도 지폐, 지하철 승차권, 톨게이트 영수증, 복권, 관광지 입장권, 전시·공연 초대권, 연극·영화 관람권, 담배포장지 등 종이로 된 수십가지 물품을 모으고 있다. 천 팀장의 방은 작은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벽지는 사방이 소인이 찍힌 우표로 도배돼 있다. 소인이 찍힌 것은 보통 다 버리는데 2만장이 넘는다고 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세종대왕이 새겨져 있는 100원짜리, 이순신장군 영정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도 볼 수 있다. 또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2달러짜리 지폐와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자원봉사자에게 준 100만달러 지폐, 북한지폐, 외국지폐 등 다양한 지폐도 유리함에 진열돼 있다. 서울, 부산지하철 승차권은 물론 대구지하철개통기념 승차권도 있다. 복권은 70년대~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복권은 거의 빠짐없이 구비하고 있다. 전매박물관에 온 듯 파고다, 새마을, 환희, 청자, 샘, 은하수, 거북선, 비둘기 등 60~80년대 담배포장지도 구경할 수 있다.

가장 압권은 역시 우체국과 관련된 수집품이다. 소인이 찍히지 않은 우표 1만2천여장을 비롯해 우편엽서, 우편번호부, 우체국통장, 소형우체통모형, 우체국 미니카 등 가히 작은 우정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이 중에는 1884년 11월18일 발행한 대한제국 최초의 우표와 역대 대통령우표, 1970년 발간한 최초의 우편번호부와 점자우편번호부, 북한우표 등 희귀한 것도 있다.

소인 찍힌 우표 2만장
자신의 방 벽지에 도배
우표 1700장으로 만든
한반도 모자이크 작품도
베란다엔 옛날 우체통…
작은 우정박물관 방불케

100·500원짜리 지폐서
지하철개통기념 승차권
대한제국 최초의 우표
점자 우편번호부까지
희귀한 자료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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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우씨와 그의 딸이 함께 우표로 만든 통일한국 작품(위쪽)과 미니 우체통.

“대통령취임기념 우표는 좀 비싸지만 그만큼 값이 나갑니다. 옛 경제기획원과 국방부, 환경처 등에서 발간한 우표도 있는데 한꺼번에 많이 구입하기보다 1~2장만 구입했습니다.”

거실 장식장에는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외국 우체국의 미니우체통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옛 미니우체통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또한 우체국택배 장난감미니카도 있는데 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앙증맞은 것들이다. 안방 입구 벽에는 딸과 함께 1천700장의 우표를 이용해 통일한국 모자이크를 만든 작품이 걸려 있다. 베란다에는 옛날 사용하던 실물크기의 거리 우체통과 벽걸이우체통이 있다.

“외국여행을 가면 먼저 거리의 우체통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우체통 앞에서 기념촬영부터 하지요. 하하하. 하나둘씩 모으다보니 불어났네요. 40년 이상 모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종이라서 부피가 작아 표시가 나지 않아요. 수집을 하면 성격이 꼼꼼해지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습관이 길러지지요.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취미도 아닙니다.”

이밖에 천 팀장은 자신이 받은 편지와 청첩장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어릴 때 주고받던 펜팔 편지와 군대시절 편지가 빼곡하게 정돈돼 있다.

“가끔 적적할 때 옛날 편지를 읽어보면 당시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한마디로 심심할 수가 없습니다.”

부인인 박희경씨(48)는 처음 남편이 수집 취미를 가진 것에 대해 신기했으나 지금은 무던한 상태가 됐다.

“결혼 하기 전 남편이 땅에 떨어진 우표를 줍는 걸 보고 ‘참 별난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가정, 봉사활동, 여행, 수집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도 남편이 자랑스럽죠. 가정에 워낙 충실하고 아이들에겐 자상한 남편이니까요.”

박씨는 남편이 가계부를 써서 가계도 꼼꼼하게 챙긴다고 거들었다.

“85년부터 가계부를 하루도 빠짐없이 썼습니다. 매일 날씨도 적고 금전출납도 기록하는데 일종의 일기인 셈입니다. 가계부를 쓰면 절약정신이 자신도 모르게 길러지고 기억력도 좋아집니다.”

매년 가계부 앞장에는 해당연도 정부대통령과 내각수반을 다 기록해 놓은 것도 특징이다. 또한 우체국 직속상관과 우체국장 이름까지 써놓았다. 한번은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카메라점 주인과 카메라 가격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옛날 가계부를 보여주자 카메라점 주인이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도 했다.

천 팀장은 수집가이면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 특히 학교폭력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영남일보를 복간 때부터 구독하면서 학교폭력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 간직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을 하면서 받은 감사패와 감사장도 수십개다.

“우체국과 우체국 직원은 사람과 사람, 사연과 사연, 물품과 물품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입니다. 우체국에 근무했기에 우표 수집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봐야지요.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주택으로 이사 가서 개인 우정박물관을 개관해 1층을 박물관으로 꾸미고 싶다.

“우표에는 당대 사회상이나 인물, 자연 등 역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혼자 수집했는데 이젠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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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연 천사우정박물관 개관식.

그는 기자를 배웅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편지나 청첩장을 부칠 때 반드시 요금별납이나 라벨을 붙이지 말고 우표를 붙이면 더 성의 있게 보이고 대량 발송한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도 좋지만 옛 추억을 생각하게 하고 수집가의 봉투 수집을 위해서라도 꼭 종이에 편지를 쓰는 습관을 기르면 좋습니다.”

글·사진= 박진관기자pajika@yeongnam.com·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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