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대홍수와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

  • 김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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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26 07:32  |  수정 2013-02-26 07:32  |  발행일 2013-02-26 제14면
50여년 전 물난리 때 국가재건회의 의장으로
유로변경 등 수해복구 나서…현재 시가지 밑그림 완성
영주 대홍수와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
1962년 3월31일 영주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해복구공사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영주시 제공>

[영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취임함에 따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주시의 인연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영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 7월11일 200여㎜의 집중호우로 영주시가지의 3분의 2가 침수된 ‘영주 대수해’가 계기가 됐다.

당시 영주시가지를 남북으로 흐르던 서천(남원천) 제방이 터져 입은 피해는 사망 14명에 도로 등 각종시설 파괴 1천236개소, 주택 유실과 침수 등 주택 피해 1천515동, 이재민은 1만5천319명에 달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 전 대통령은 대수해가 나자 7월18일 기차로 영주역에 내려 현장을 둘러보았으며, 육군대학 교장인 이성가 장군(소장)을 복구사업소장으로 파견해 수해복구공사를 펼쳤다. 박 전 대통령의 이같은 조치로 육군133공병부대 589명과 해병 제1상륙사단 장병 137명이 긴급 투입돼 9개월간 피땀을 흘린 끝에 62년 3월31일 수해복구공사가 완료됐다.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은 수해복구공사만 아니라 당시 동구대(東龜臺)와 서구대(西龜臺) 사이를 흐르던 서천을, 훨씬 서쪽인 한절마을(가흥동) 산허리를 끊어 유로를 바꾸는 대역사를 단행해 오늘의 영주시가지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이다.

향토사학자였던 고(故) 송지향 선생은 영주·영풍 향토지에서 “단순한 복구공사의 차원을 넘어 대영주 건설의 기반을 구축한 창조적인 사업이었다”고 평했다.

박 전 대통령은 62년 3월31일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준공식에도 직접 참석했다. 또 준공식 전날 기념 식수도 했다. 그 나무는 중간에 관리 소홀로 고사해 한때 주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현재는 서천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삼판서 고택 뒤편에 79년 새마을지도자들이 ‘영주읍 서천 직강공사 준공 기념식수’라는 표지석과 함께 전나무 한 그루를 대신 심어 그때를 기리고 있다.

김진영 전 영주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영주 대수해 때 영주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놓았는데도 박 전 대통령의 식수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 취임을 맞아 영주시민들이 한번쯤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제덕기자 jedeo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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