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위클리포유 별난집 별난맛 10년 연재 박진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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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21   |  발행일 2013-06-21 제37면   |  수정 2013-06-21
“그간 맛집 380곳 소개 객관적 평가했다 자부 불친절 종업원 뒤에는 불친절 주인이 있더라”
20130621

음식칼럼니스트 박진환.

10년째 영남일보 주말섹션 위클리포유에서 ‘별난집 별난맛’을 운전하고 있다. 2003년 6월19일 첫 칼럼을 실었다. 꼭 십 년째 되는 지난 수요일 밤, 대구시 수성구 프렌치 레스토랑 앙뜨레누보에서 축하연을 벌였다.

말이 10년이지, 그 오랜 기간 무탈하게 코너를 진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맛집 관련 글은 특정업소 영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라 경쟁업소는 상당한 시기와 질투를 할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가 정에 치우치거나 친소관계에 기운다면 당연히 물의를 빚게 되고, 그러면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다.

10년 동안 대구의 음식문화는 나름대로 상당한 발전을 했다. 10년 전과 그 이후, 그가 소개한 식당은 어떤 위상을 가졌을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업이 되어 버린 외식업, 문을 열면 10명 중 7명 정도는 수년을 못 버틴다고 하는데 지금 숱한 예비창업자가 식당개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과연 그는 올챙이 오너셰프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가 대표로 있는 대구시 동구 신천동 <주>신천 사무실에 있는 서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방선 이례적 맛칼럼 처음엔 엄청난 부담…
허름한 생계형 식당 소개한 후 대박 ‘뿌듯’

내 돈 주고 맛을 봐야 내 글에 힘이 실려…
친구부탁 거절했다가 연락 끊긴 아픔 있다

종업원들은 반드시 주인을 닮게 되더라…
마음이 착한 사람이 음식사업해야 성공

요새는 웰빙·슬로· 유기농 식당에 주력…
지역의 식당 업주들 홍보마인드 부족해


- 음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섹스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동안 면역세포 활력에 도움을 주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동일한 물질이 분비된다. 식욕과 성욕을 관장하는 뇌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식욕중추는 성욕중추와의 간격이 1·5㎜ 정도다. 그래서 하나의 중추가 영향을 받으면 다른 중추도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남녀간 차이가 있다. 식욕중추는 배고픔을 느끼는 섭식중추와 포만감을 느끼는 포만중추로 이루어져 있다. 남자는 섭식중추와 성욕중추가 가까운 반면, 여자는 포만중추와 성욕중추가 더 가깝다. 즉 남자는 배고플 때, 여자는 배부를 때 성욕을 더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여자를 만나면 밥부터 먹어야 한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 식당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고독한 영혼을 치료하는 일종의 병원이다. 셰프는 의사, 종업원은 간호사다.”

- 첫 칼럼을 내보낼 때 대구에선 음식칼럼니스트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자부심과 함께 엄청난 부담을 안고 살아왔다. 당시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음식칼럼을 전문적으로 적는 미식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 개인적으로 미식가라고 생각하는가.

“기름지고 화려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미식가가 아니고, 거리나 날씨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특별한 미각을 가진 전문가이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글로써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본다.”

- 10년간 참 많은 식당을 찾아다녔겠다.

“그동안 380여 군데를 소개했다. 일본 오사카 맛집에서 대구·경북의 맛집까지 1년에 평균 38군데, 월 평균 3.2군데를 소개했다.”

-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찾기가 참 어려웠겠다.

“원하는 식당 찾는 게 꼭 신대륙 찾는 것 같다. 처음엔 10곳 정도 가야 겨우 한 군데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수 지인은 내가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공짜로 밥 먹고 글 적어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프로의 세계를 오해하는 처사다. 내 돈을 주고 먹어야 비로소 글에 힘이 실린다.”

- 주위에서 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관계자도 부지기수일 것 같은데.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절대 적을 수 없다. 섭섭하다며 나와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보기 때문에 매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가능성이 보일 경우에는 조건을 제시한다. 추후 안 됐을 경우는 취재하지 않는다.”

- 식당 차리려는 올챙이 사장에게 한 마디 한다면.

“우리 입맛이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술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종업원 관리능력도 아주 중요하다. 돈만 갖고도 안 되고, 요리만 한다고 해서도 안 되고, 맛과 멋을 마케팅할 줄 아는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내부고객인 종업원 관리가 필요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대형식당이라도 주인은 맛을 내는 메커니즘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항상 일정하게 그 맛을 유지할 수 있는 품질관리와 재고관리도 해야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조리사와 종업원들한테 휘둘리게 된다.”

- 자기 입에 맞는 집이 맛집이라고 보기 쉬운데 남의 입에는 당연히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맛집을 소개하는 게 칼럼니스트의 사명인 것 같다.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마땅한 식당을 찾기 위해 여러 식당을 훑어보고,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두세 번 더 가 본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에 의해 쓰려고 노력했지만 폐업한 곳도 더러 있다. 초심을 유지하지 못해 영업이 안 되는 식당도 있다. 그렇지만 소개된 대다수 식당이 지역민에게 회자되고 있다. 영남일보에서의 외압이나 추천강요가 없었기에 나만의 기준에 의해 여태까지 소신껏 글을 적을 수 있었다.”

- 음식칼럼니스트는 어떤 존재인가.

“글로써 요리를 하고 맛을 내는 사람이다. 맛에 대한 평가로만 그치지 않고 음식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 이를테면 테이블 매너, 식당의 분위기나 레시피까지도 전달해야 된다. 특히 푸드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촉수도 지녀야 된다. 그 지역과 그 시대 음식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안목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즘 식품에 대한 안전성이 강조되므로 웰빙·슬로·유기농 관련 식당 발굴에 주력한다.”

- 글을 쓰면서 언제 가장 보람이 있었나.

“소개되기 전엔 모녀가 운영하는 정말로 허름한 생계형 식당이었는데 글이 나가고 난 뒤부터 대박이 났으며, 그로 인해 확장 이전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모녀는 지금도 수시로 메뉴를 개발하면서 배고픈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업소는 전국 방송을 타는 바람에 전국구 유명업소로 등극하기도 했다.”

- 올챙이 사장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있다. 어떤 식당이 흥하고 어떤 식당이 망하는가 하는 것이다.

“식당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 하는 사업이다. 한없이 남에게 퍼주어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 항상 긍정적인 사람, 항상 웃는 얼굴, 본인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사람들이 사업에 성공한다. 부정적 사고를 갖거나 이웃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남에게 원망을 사는 행동을 많이 하는 식당주는 어느 시점까지는 잘 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손님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국 망하든지, 확장을 해서 망하든지, 아니면 불의의 사건사고로 망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봤다”

- 인간은 누구나 편견을 갖고 있다. 칼럼니스트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예전엔 맛은 그저 그런데 줄을 서는 식당은 ‘조상이 돌보든지 하늘에서 천운이 내려와서 잘 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짧은 생각이었다. 지금 보니 조금 전에 언급한 그런 현실과학적인 근거와 이유가 있더라. 이런 얘기를 하면 ‘마음씨 좋은 주방장이 있으면 안 되느냐’고 반문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식당종업원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리만큼 무조건 주인을 닮게 된다. 불친절한 종업원이 있는 집은 불친절한 주인이 뒤에 버티고 있다.”

- 대구에 숱한 식당이 있지만 특별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별난집 찾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다.

“‘아직도 쓸 식당이 있는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구에만 2만개 이상의 식당이 있다. 식당은 변화와 진화가 가장 심한 업종이다. 개업·폐업이 반복되고 새로운 업태, 새로운 메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앞으로도 별난집과 별난맛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 대구밖에 없는 음식도 많은데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대구십미(十味)가 있다. 따로국밥, 동인동찜갈비, 납작만두, 복불고기, 누른국수, 야키만두, 논메기매운탕, 무침회, 뭉티기, 막·곱창이다. 이게 대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갈수록 타지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구는 칼국수의 고장이다. 전국에서 건면 매출이 가장 높은 데도 대구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공장인 풍국면도 대구에 있지 않은가.”

- 그간 대구음식문화의 추이를 지켜본 느낌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아직까지도 대구만의 토속적인 전통을 갖춘 식당은 없지만 전국의 유명 음식 각축장이 대구이기도 하다. 프라이드치킨, 동인동찜갈비 등 대구에서 출발해 전국적 인기를 끄는 음식이 부쩍 많아졌다. 전라도 음식이 농익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대구처럼 산업으로서 면모를 갖춘 대형식당은 없다시피 하다.”

- 이젠 지역색이 있는 음식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여기서 좀 유명하다 싶으면 며칠 안 돼 다른 데서 동시에 베끼기에 나선다. 그게 식품문화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것 같다.

“맞다. 교통과 매스컴의 발달로 전국 어느 곳에서 대박이 났다고 하면, 금세 전국으로 번진다. 식재료도 실시간으로 전국 각처로 번져나간다. 자연히 ‘어느 지역에서만 유명한 음식’이란 말도 곧 사라질 것 같다.”

- 대구 주인들, 참 무뚝뚝하고 마케팅 마인드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대구 곳곳에 참 맛있고 매력적인 음식이 지천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홍보가 미흡하다. 종종 신문에 칼럼 쓴다고 섭외를 하면 아직까지도 ‘우리 집은 필요 없다’고 하는 데가 많다. 심지어는 유명한 공중파 방송국에서 섭외해도 거절했다는 것을 무용담처럼 전한다. 돈 안 들이고 매체를 통해 자기 식당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도 그런 태도를 보이니 안타깝더라. 그만큼 홍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식당 주인이 많다. 식당 주인 의식이 고객 수준을 못 따라 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수세식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거나 입식과 좌식의 고른 배치, 예쁜 식용가위 등 도끼로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늘 끝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고객은 쉽게 감동하는데 안 그렇다. 식당 주인에게 종종 김건모 노래 ‘핑계’를 한 번 들어보라고 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항상 남(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고객은 자연스럽게 감동하기 마련이다.”


◆ 나만의 칼럼 원칙

“음식칼럼니스트는 누군가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맛보고 나름대로 평가를 내려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는 사람이다. 프로조리사 못지않은 전문지식을 겸비하고,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보면서 단련된 까다로운 혀를 갖고 있으며, 단순히 음식을 비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음식 경향을 제안한다. 그리고 음식을 식문화의 테두리 안에서만 보지 않고 문화 전반에 걸친 풍부한 경험으로 복합적이고 문화적인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 음식평가의 조건

“모든 음식에 편견이 없어야 하고 잘 먹어야 된다. 기본적으로 글과 음식에 대한 이해를 겸비해야 한다. 특히 재료나 조리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지나쳐 단순히 자기 혀에서 느껴지는 느낌만으로 판단하면 곤란하다.”

◆ 칼럼 선정기준

① 값싸면서 맛있고 덜 알려진 곳으로 옛맛이 배어 있는 정성이 깃든 집.

② 지방에서 사랑하지 않으면 없어질 맛이고,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집.

③ 제 돈 내고 당당하게 먹어야 제대로 맛을 평가할 수 있는 집.

④ 두세 번 방문. (처음에는 점심, 저녁 붐비는 시간, 두 번째는 한가한 시간, 세 번째 비로소 취재 의뢰를 밝히고 주인과 인터뷰. 이때는 떳떳하게 밥값을 낸 상태이기 때문에 지적할 것은 지적하고 계속 이 집의 자랑거리로 이어 나갈 부분을 인정)

⑤ 신문에 기사 게재 후 사후 관리 차원에서 재방문.

◆ 칼럼 작성원칙

“가능하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적당한 한도에서 절제되고 자제되면서 장황하지 않고 아주 간결, 단순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나아가 식당을 찾고자 하는 고객 입장에서 상황과 목적에 맞춰 굳이 그곳을 찾아 확인하지 않아도 마치 그곳에 앉아 그 음식과 분위기를 즐기는 것처럼 표현해야 한다.”

◆ 칼럼 게재 후 식당 분위기

“전화문의는 쇄도하지만 정녕 방문고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신문기사를 오려 와 방문하는 고객도 있다. 홍보만 있고 비전은 없는 기사 탓도 있고 요사이 방송·신문매체를 통한 맛집소개가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이루어져 맛집 관련 기사 등이 거의 신용불량단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음식만큼 기억의 공간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물질은 없다. 토속적 음식은 변질되지 않는 모성애와 같은 안정과 정착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음식은 매우 밀도 높은 삶과 문화의 표현이다. ‘그래, 이 맛이다’라는 것은 단순히 맛있다는 말보다 훨씬 실감나는 표현이다. 어릴 적 어머니 손맛의 기억을 암시하는 듯하다. 음식의 맛은 기억이다. 세대를 거치며 내려온 맛의 기억들이 응축되어 나오는 것이 요리다. 이를 제대로 음미하고 보존하는 것도 훌륭한 문화활용이다.”

◆ 꿈

“음식문화학교를 운영해 보고 싶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박진환

195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관광경영학과에서 경영학 박사학위(실버층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외식 동기와 외식업체 선택 요인)를 취득한다. 선친이 중구 남산동에서 제과점과 빙과공장을 경영했다. 교직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20여년 전 허허벌판이던 들안길에서 ‘춘천막국수’를 연다. 그 다음에는 전골요리 전문점 ‘고래성’을 연다. 이후 매일신문사 11층에서 ‘매일가든’을 경영하고 이어 한중합작 중식당 ‘칭다오’를 대구지방경찰청 근처에서 연다. 이 와중에 1991년 단체급식회사인 <주>신천을 오픈한다. 10년 전부터 영남일보 위클리포유에서 ‘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 고정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사>대구음식문화포럼 상임부회장으로 있다.

계명대 겸임교수, 현재 경북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경북도와 대구시 맛집선정위원. 저서로는 ‘박진환의 음식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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