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북 의성 마애불과 관수루

  • 류혜숙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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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7-12   |  발행일 2013-07-12 제38면   |  수정 2013-07-12
땅 속에 묻혀 세상에 나오기 전, 한 인부가 바위인 줄 알고 구멍을 뚫기 시작했는데…
유난히 뚫리지 않는 한 곳, 바로 부처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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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단보 통합관리센터 신축 공사 중 발견된 의성 마애불.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상주 낙동면과 의성 단밀면이 마주본다. 여기에서 강물은 넓고 깊게 모여 큰 굽이로 돌아 서서히 남으로 흘러간다. 지금 낙단교가 놓여 있는 이 강에는 아주 오래전 영남에서 손꼽히는 나루가 있었다. 이곳을 오고갔던 수많은 옛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없지만, 강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 절벽 깊은 곳에 부처님이 계신다오.’ 수 백 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흙으로 덮이고 덮여 감쪽같이 감춰지는 동안, 강물은 시치미 뚝 떼고 능청능청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 의성 낙동강변의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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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단보와 관리센터 인근의 낙동강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2010년 10월. 강은 낙단보와 관리센터를 건설하는 공사장이었다. 강변은 20m 정도의 높은 절벽이었고, 흙이 두껍게 덮여 있었다. 인부는 흙이 덮여 있는 곳에 시험 천공을 하고 일부가 바위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흙을 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7m 정도 파내려가던 중 인부의 눈에 곡선으로 새겨진 바위가 드러난다. 조금 더 파 보자, 손가락이었다. 그리고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부처의 암각이었다. 가로 5.5m, 세로 3.5m 크기의 화강암 암벽에, 높이 2.2m, 너비 1.5m 규모의 마애불은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처의 등 뒤쪽에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얕게 새겨져 있고, 이중선으로 새겨진 연화대좌에 앉아 계신다. 삼산 모양의 보관을 쓴 부처의 얼굴은 눈과 입이 선명하다. 가느다란 팔과 꽃을 든 손가락은 부드럽다.

이러한 특징은 981년에 만들어진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상과 985년에 만들어진 고령 개포동 마애보살좌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의성 마애불도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 마애불은 경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에는 얼굴 바로 옆에 주먹 만 한 구멍이 있었다. 암반 조사를 위해 시험 천공을 했을 때 생긴 것이라 한다. 작업을 했던 인부는 이렇게 기억한다. 유난히 뚫리지 않던 부분이 있었다고. 그게 부처의 얼굴이었다고. 천운이요, 부처의 힘인 것 같다고. 아찔하다. 지금 구멍은 메워져 그 흔적만 보인다.

오래전 부처님은 이 낙동강을 오가던 사람과 이 강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많은 소원을 들었을 것이다. 오늘의 부처님은 저 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 물을 보는 누각, 관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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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엽에 창건된 관수루. 현재는 1990년에 복원된 것이다.

마애불이 내려다보는 강에는 옛날 큰 나루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 상주, 문경, 구미, 예천, 군위 일대의 18개 역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 낙정나루다. 이제 나루는 터만 남았지만 동서남북을 왕래하던 그 큰 길목에는 흘러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정자 하나가 여전히 버티고 서있다. 물을 보는 누각, 관수루다.


관수루가 세워진 것은 고려 중엽이다. 그때는 강의 서안, 상주 쪽에 있었다. 조선 초 물난리가 나자 강의 동안, 의성 쪽에 이건했고, 이후로 여러 차례 중수와 중건이 있었다. 그러다 1874년 고종 때 유실되어 버렸고 지금의 정자는 1990년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먼 옛날부터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행인이 줄을 이었다. 관원의 행차가 수없이 오르내리고, 큰 뜻을 품고 서울로 향하던 과거길 선비도 수없이 많았다. 정자는 크고 넉넉하다. 이제는 주말의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위락지로 변모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지나는 길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품 넉넉한 공간이다.


◆ 효자·효부의 마을, 생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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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밀면 생송리의 안동권씨 효부각.

마애불의 등 뒤로는 의성 단밀면 생송리다. 옛날부터 효자 효부가 많이 나는 마을로 유명하다.

1900년에 태어난 생송리 사람 김동문은 80세 노모가 7년간을 앞 못 보고 지낼 때 어머니를 업고 다니며 부름에 답하고 따르기를 수족과 같이 하였다 한다. 87세로 어머니가 별세하자 70세의 아들은 3년 동안 어머니 묘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았다고 전한다. 고종 때 사람 권상두는 어릴 때부터 부모봉양에 지극 정성을 다 하였다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을 시묘하면서 하루에 세 번 애곡하니 피눈물이 흘렀다는데, 그 곁을 호랑이가 지켜주었다 한다. 그 후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곁을 떠나지 않고 밤에도 옷끈을 풀지 못하였는데, 아버지를 잃고 3년 상 시묘를 계속하니 구렁이가 나타나 보호하였다 한다.


생송리 가운데를 뚫고 달리는 912번 도로에서는 김동문 효자각, 권상두 효자각, 김종숭 효자각, 김형석 효자각, 안동권씨 효부각을 줄줄이 만난다. 옛 사람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느라, 이 길에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찾아가는 길

55번 고속도로 의성 IC로 들어가면 28번 국도를 타고 안계면으로 간 후 912번 지방도를 타고 단밀면 쪽으로 가면 된다. 45번 고속도로 상주 IC로 들어가 25번 국도를 타고 낙단교를 건너도 된다. 마애불을 보려면 낙단보 통합 관리센터에 주차하면 된다. 센터의 외부 정원에 모셔져 있다. 센터 앞 912번 도로가에 마애불 안내판이 매우 작아 지나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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