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서양화 왜 구분 짓나 자연의 어울림을 바라보며…
1958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나왔다.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6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일본 도쿄 ‘한국현대작가초대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국의 빛전’, MBC 미국 개국기념으로 미국에서 ‘한국대표작가초대전’ 등 국내외 단체전에 300여 차례 참여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대구시미술대전 우수상, 대한민국미술교육상, 대한민국 예술인상 등을 받았다. 현재 대구예술대 미술콘텐츠과 교수, 석암미술관 관장, 예술한지연구소 소장, <사>환경미술협회 운영위원장 등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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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을 산책하며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대구예술대 미술콘텐츠학과 김동광 교수. 학교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는 넓은 창문으로 팔공산과 유학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김동광 대구예술대 교수는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는 학교 안에 작업실이 있다. 지난해부터 개인전 때문에 몇 차례 만난 자리에서 김 교수는 늘 자신의 작업실 자랑을 했다. 작업실에서 보는 자연풍경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대구의 상당수 대학이 외곽에 자리 잡아 자연을 벗 삼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많은 터라, 김 교수의 말도 사실은 건성으로 들은 감이 없지 않았다. 아무리 시골에 있는 대학이라도 학교라는 건물 특성상 우뚝 선 큰 건물과 그 앞뒤에 나무가 심긴 정원이 자리 잡고 있는, 뻔한 풍경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 작업실에서 보면 안동까지도 한눈에”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개인전을 코앞에 둔 김 교수의 작업실을 구경 갈 기회가 생겼다. 작가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를 위해서는 전시 전에 미리 여러 작품을 보고 작업과정도 꼼꼼히 파악해야 하는데 작업실을 살펴보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러 갔던 그 방문에서 김 교수의 작품만큼이나 작업실에서 바라본 다부리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 작업실이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유학산, 팔공산의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병풍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내친 김에 ‘전원 속 예술가들’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한 번 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이 시리즈를 위해 취재를 갔던 날, 그는 또 작업실 자랑을 했다.
“오늘은 날이 흐린데 날씨 맑은 날, 여기서 보면 안동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취재 간 날은 곧 비가 쏟아질 태세였기 때문에 그의 말의 진위 여부를 따질 수 없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교수의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만큼 좋다는 이야기다.
대구예술대 제1예술관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3층에 자리 잡았다. 무더위 속에 취재를 위해 오르는 계단길이 그리 반갑지 않았지만 작업실에 다다르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이런 마음을 금세 사라지게 만들었다.
“1993년 개교할 때 교수로 임용돼 들어왔는데, 그때 1~3층 중 어디를 작업실로 할 것이냐고 묻더군요. 편리성을 따지면 1층이 좋지만, 학교 주변의 풍광이 너무 좋아 3층을 택했습니다. 처음 3층에 올라와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경치를 보고는 이런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어디서 다시 보겠냐 싶더군요.”
오랫동안 시내에서 작업을 해 와 시내의 탁한 공기, 소음,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 등에 지쳐 있던 그는 학교의 작업실이 마냥 좋았다. 해발 450m 이상 되는 깊은 산중의 꼭대기에 자리 잡은 학교는 맑은 공기, 고요함, 한적함 등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특히 작업실이 조용하고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작업할 때는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
“시내에 작업실이 있을 때는 친구들이 수시로 오고 갔지요.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작업할 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도심 속의 작업실은 혼자만의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작업활동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어쩌면 시골생활이 도시생활보다 더 익숙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산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그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은 그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고, 창작열을 북돋워주기도 한다. 물론 작업에서 자연환경을 화면에 들어오도록 유도한 것도 이런 어릴 적의 추억이 동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설명한다.
자연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곳에 들어온 후 그의 그림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초창기, 생명의 기원이 되는 밭을 중심으로 한 풍경을 그렸던 그는 최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초창기 작품이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이것으로부터 더 확장돼 인간 사이의 관계까지도 표현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관계를 소재로 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김동광 교수는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차별성을 띤다. 사람들이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담아내면서 이들 사이의 관계, 감정 등을 나무, 꽃 등 주변의 자연물과 색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활짝 핀 꽃과 생명력 있는 나무로 담아내는 것은 물론 이들의 행복한 감정, 슬픈 감정 등을 색상으로 밝고, 어둡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상의 상징성도 그의 작품의 깊이를 느끼게 하지만 닥종이죽을 사용해 부조형식으로 완성하는 표현기법도 눈길을 끈다. 그는 안동한지를 만드는 재료인 닥종이 죽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닥종이 죽으로 부조를 떠서 여기에 채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입체감이 살아 있다. 현재 한국미술계에서 닥종이 죽으로 부조작업을 하는 작가는 몇 명 되지만, 대부분의 작가가 작품의 일부만 부조기법을 적용하는 데 비해 그는 작품 전체를 부조로 해 입체감이 훨씬 두드러진다.
그는 “이렇게 전체 화면에 부조작업을 하면 작업하는 시간과 노동력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서너번씩 해야 하는 물감칠도 더 공이 들어가고, 물감 사용량도 많아진다. 전체 작업과정이 훨씬 힘들다”고 설명했다.
“열린 사고, 자연의 모습에서 조화를 배우다”
그의 작업이야기를 들으니 작품이 어느 장르에 속하는지 궁금했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 같기도 하고, 서양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입체감이 살아 있어 조각적 특징도 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의 매력이기도 한데,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국적 특색을 가진 파인아트’라고 설명했다. 어느 장르라고 딱히 고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미술계에서 장르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데 그의 작품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작업은 그가 대학 시절 여러 장르의 미술교육을 두루 받았던 것이 바탕이 됐다. 김 교수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영남대에는 사범대학 안에 회화과가 있어 그는 한국화, 서양화, 조각 등을 두루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 그의 작업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이런 작업적 특성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외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닥종이 죽을 활용한 것,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의 느낌이 나는 것 등이 동양화 같은 매력을 주면서 사람과 자연을 소재로 해 세계 어느 사람이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내용을 담고 있어 외국인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몇 년 전부터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꾸준히 참가해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 또 지난달 열린 일본에서의 개인전에서도 예상외로 작품이 많이 팔려 나가 그의 작품에 대한 외국인들의 호감도가 상당히 높음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동양화와 서양화 중 어느 것인지 묻습니다. 조형성과 시대성만 갖는다면 이 시대에 동양화, 서양화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사고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런 열린 사고를 얻는 데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자연풍경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무엇을 구분 짓고 대립시키기보다 어우러지고 조화를 찾아가는 자연의 모습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긍정·조화의 가치를 알게 했지요. 그것이 제 작업실 앞에 펼쳐진 풍경이 제게 준 선물입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 김동광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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