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제한상영가’ 판정받은 영화, 외국선 왜 ‘16세 이상 관람가’인가

  • 윤용섭
  • |
  • 입력 2013-09-06   |  발행일 2013-09-06 제36면   |  수정 2013-09-06
세계적 거장도 ‘등급의 칼날’ 앞에선 좌절하고만다는 영화 등급제…도입 12년 실태 점검
국내 제한상영관 한 곳도 없어 사실상 영화에 대한 ‘사형 선고’…소송까지 가기도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는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 판정 받았다가 일부 편집해 상영
“등급분류는 관객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못 볼 영화’를 정하는 게 아니다”
20130906

제한상영가 등급은 한국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다.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감독이라도 등급의 칼날에선 예외가 없다.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2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는 일부 장면 편집 끝에 세번째 심의에서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또 다큐멘터리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후 행정소송을 통해 승소했다.

등급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제한상영가 등급제도가 도입된 2002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영화 등급분류와 특정 부류의 영화 유통을 어떻게 제한하고 있을까. 영진위 자료를 토대로 국내 제한상영가 실태를 알아본다.

⑵ 각국 영화 등급 심의기관과 등급제도

미국의 등급분류기관인 영화등급위원회(FRB)는 미국영화협회와 전국극장주협회가 설립한 등급관리국(CRA)에 소속돼 있다. 미국의 등급분류는 민간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부여된 등급의 준수와 집행 또한 법률적 구속력이 없고 자율 규제에 따른다. 등급분류의 가장 큰 목적은 학부모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의위원은 자녀를 가진 일반 부모들로 구성되어 있다(국내는 예술원 회장의 추천에 의해 대통령이 위촉하는 방식).

미국의 등급제는 상영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목적보다는 더 많은 극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의 개념이 강하다. 또한 등급을 받게 되면 길거리 배너나 포스터 부착 등 공식적인 홍보가 가능한 점도 고려된다.

일본은 영화의 제작, 배급, 수입을 대표하는 20여개 사에 의해 구성된 영화유지위원회가 설립한 영화윤리관리위원회(이하 영윤)가 등급을 분류한다. 역시 민간 자율적인 등급분류제도다. 영윤의 심의위원은 제작, 배급, 예술인 등 각 부문 대표자로 구성되며 영화산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도 포함한다.

프랑스의 등급분류는 영화산업법에 의한 강제 조항으로 규정돼 있다. 영화 상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부장관의 상영허가필증을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운영은 독립적으로 유지된다. 전체위원회는 행정부, 영화업계, 전문가, 청소년 관객(18~25세) 중에서 위촉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등급결정 기준을 적극적으로 공개한다는 것이다. 관람연령 제한을 받는 영화는 극장 입구에 그 이유 등을 명기해야 하고 광고와 선전물에도 이 사실을 언급한다.

 

⑶ 영화 유통 제한의 경우의 수

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영화 상영이 불가능한 경우는 없다. 현 등급제에서 가장 제한적인 등급인 NC-17의 경우, 광고에 제한이 있어 대부분의 극장주가 상영을 꺼릴 뿐 극장주가 원한다면 상영을 할 수 있다.

등급분류 신청을 아예 하지 않은 NR(Not-rated)이나 FRB가 판정한 등급을 거부하는 UR(Unrated) 역시 광고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서 상영이 매우 힘들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제한상영관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포르노영화의 경우에는 등급 표식이 필요 없는 대신, 특정 공간에서만 상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포르노 전용관은 미국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일본은 ‘등급구분외’(RC) 판정이 존재한다. 이 경우 사실 상영을 하기가 쉽지 않지만 역시 불가능하지는 않다. 극장주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등급을 아예 받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30906
‘홀리 모터스’

20130906
‘숏버스’
20130906
‘악마를 보았다’.

⑴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한 국내 ‘제한상영가’

영화에 대한 사전 심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제한상영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국내에선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을 경우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영화는 ‘죽어도 좋아!’(2002)를 시작으로 ‘고갈’(2009), ‘악마를 보았다’(2010), ‘무게’(2012), ‘줄탁동시’(2012),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2013) 등 총 12편이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고, 외국영화의 경우 ‘숏버스’(2006), ‘홀리모터스’(2013) 등이 같은 판정을 받았다.

당초 제한상영가 등급의 도입 배경에는 등급보류를 없애고 완전등급제를 실현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성인의 볼 권리를 보장하자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한상영관이 수익성 문제로 모두 문을 닫아 버린 지금, 제한상영가 영화는 어디에서도 상영될 수가 없다.

영등위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등급분류심사를 받은 영화 1천51편 가운데 청소년관람불가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작품이 각각 480편과 12편으로, 전체의 46.8%에 달한다. 제한상영가 비율은 2008년 29%에서 2010년 30.5%, 지난해 45.8%로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영등위는 “해마다 출시되는 영화가 크게 늘어나고, IPTV나 VOD 서비스 등 차후 부가시장을 목적으로 한 성인영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⑷ 등급분류, 근본부터 다시 고민하라

한국은 등급을 받지 않으면 상영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등급제에 관 주도 성격이 강한 프랑스나 스페인, 캐나다, 호주 등도 마찬가지다. 민간자율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는 관례로 굳어져 있어 등급을 받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고, 극장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등급 심의를 받고 있는 상황.

마찬가지로 자율등급제인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에 등급 심의를 받지 않아도 상영이 가능하지만, 대규모 상영을 통해서 많은 수익을 기대한다면 등급을 받는 편이 유리하다. 등급을 받지 않거나 부여된 등급을 거부한 영화들은 주로 아트하우스나 비메이저 계열의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등급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상영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나 학부모에게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서비스’ 기능이 강하다. 역시 성적인 부분과 폭력성의 정도가 등급을 판정하는 주요 기준이다.

등급분류체계 자체도 대동소이한데, 등급 판정의 결과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기준이 비교적 엄격함을 알 수 있다. 2007년 국내에선 재심까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던 ‘숏버스’의 경우 프랑스에서는 16세 이상 관람가, 일본과 영국, 아르헨티나, 호주 등에선 모두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이처럼 한국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이 내려진 영화들은 대부분 외국에서는 18세 혹은 16세 이상 관람가였다. 영진위의 박희성 정책연구부 정책조사팀장은 “등급분류를 하는 이유를 보다 근본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관객이 볼 영화, 못 볼 영화를 등급으로 미리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관객이 영화를 보다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쪽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의 볼 권리까지 제한하지 않고, 등급 판정에 대한 불만의 소지를 줄일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지금의 제한상영가 논란은 단순히 등급 자체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그안에는 등급제 자체를 민간자율로 전환할 것인지, 관이 주도하는 현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또 제한상영가 등급을 현행대로 유지할 건지, 만약 유지한다면 제한상영가 영화의 유통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등 여러 층위의 문제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그럴수록 외국의 사례를 꼼꼼히 따져보고 우리와의 비교를 통해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고쳐 나갈 것은 고쳐야 한다. 외국의 다양한 등급제도가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활용안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한국서 제한상영가 판정받은 영화의 외국 등급분류 사례
영화명 한국 프랑스 미국 일본
홀리모터스 초심 : 제한상영가(문제 장면조치) 재심 : 청소년 관람불가 T.P. : 전체관람가 NR(Not Rated) 
*극장개봉함
등급 안받고 개봉
숏버스 제한상영가(소송을 거침)재심 : 청소년 관람불가 16세 미만 관람불가 UR(Unrated) 
*극장 개봉함
R18 : 18세이상 관람가
악마를 보았다 초심 : 제한상영가(문제 장면조치) 재심 : 청소년 관람불가 16세 미만 관람불가 
+ 경고사항
NR *극장 개봉 R18 : 18세이상 관람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