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연중기획>상생 지역격차 해소] <3부>수도권 논리 넘어 지방의 힘으로 ⑤ 강소병원으로 위기 넘는다

  • 임호
  • |
  • 입력 2013-11-07   |  발행일 2013-11-07 제3면   |  수정 2013-11-07
동네병원부터 살려야 서울지역으로 환자 이탈 막을 수 있다
작년 대구·경북 지역민 타 지역서 사용 진료비, 무려 1조2873억원
특정질환 전문 치료, 강소병원 육성이 대안…상급종합병원과 연계…의료시스템도 정착해야
[상생 지역격차 해소] 수도권 논리 넘어 지방의 힘으로 ⑤ 강소병원으로 위기 넘는다
수도권과의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지역의 강소병원들이 더욱 전문화되고, 환자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구의 한 전문병원이 최신 의료장비인 MRI를 통해 환자의 질환상태를 정밀하게 판독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의료계의 수도권 쏠림현상이 동네의원을 위협하고 있다. 지방의 동네의원 살리기나 1차 의료기관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수도권 대형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은 병원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환자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킨다. 즉 병원비 외에도 교통비와 간병비·숙박비·보호자의 경비까지 포함하면 환자의 비용 부담은 배가 된다. 최근 이슈가 되는 선택 진료제 폐지와 원격의료 제도 같은 정책도 1차 의료가 활성화됐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다.

◆고사하는 동네의원

지난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2년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에서도 의료의 수도권 편중현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서울의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 100명 가운데 33명은 다른 지역 사람이다. 금액으로는 4조3천979억원에 이른다. 대구·경북지역민이 지난해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사용한 의료비만 1조2천873억원이나 된다.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은 동네의원의 휴·폐업으로 이어진다. 2011년 병원 휴·폐업은 4.4%에서 지난해 8.4%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최근 상가정보업체 ‘상가뉴스레이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동네 의원은 하루 평균 4.99개가 문을 열고 4.45개가 폐업했다. 최근 3년 기준으로 치과는 하루 평균 3.15개가 문을 열고 2.1개가 문을 닫았다.

의료기관 양극화 현상은 상급의료기관에 이르면 더욱 심각해진다. 의원급에서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3만여개에 이르는 전체 의료기관 중 44개에 불과한 상급종합병원에 지급되는 의료보험료 비용이 전체의 23%를 차지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빅5’라고 일컬어지는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성모병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5%에 이른다.

동네의원이 벼랑 끝에 내몰린 형국이다.

지역 의료계는 수도권 쏠림현상을 막고, 동네의원이 살아남으려면 의료 전달 체계가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의원이나 한의원, 치과의원과 같은 1차 의료 기관이 감기나 설사, 치통 같은 흔하고 간단한 진료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상태가 중하거나 간단한 수술을 위해선 특정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중소병원이나 2차 병원을 찾게 된다. 문제가 더 심각하면, 전문적인 치료와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종합병원(3차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다.

문제는 상당수 시민이 지역의 1·2차 병원을 제대로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금만 아파도 큰 병원, 그것도 수도권의 대형 병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수도권 쏠림 막을 방법은

지역 의료계에선 환자의 수도권 쏠림을 막을 대안으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수요자 중심의 진료를 앞세운 강소병원 육성을 꼽고 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특정 질환을 집중 치료해 해당 분야에서 대형병원을 능가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울 송도병원이다. 송도병원은 32년간 대장·항문 질환 치료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2007년 이후 대장·직장암 환자 3천800여명을 수술했고, 중증 암 환자로 분류되는 대장암 3기 생존율은 무려 76%에 이른다. 유수의 대학병원보다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연간 1만2천명의 치질환자 수술, 연간 위·대장내시경 검사 5만5천례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 송도병원 이종균 외과 전문의는 “수술만 잘 한다고 좋은 병원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예약→치료→퇴원→완치까지 환자의 안전을 책임지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진정한 강소병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 송도병원 정도는 아니지만 대구에도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강소병원이 적지 않다.

미세재건술로 유명한 W(더블유)병원은 2011년 한 해에 수지(手指)접합분야 수술 및 진료를 무려 8천건 이상 해냈다. 이 분야 전국 1위다. W병원의 경우 전체 환자의 30%가 수도권과 경북, 경남, 전라도에서 찾는다.

대장·항문전문병원인 구병원의 대장암 수술통계를 보면 2009년 91건, 2010년 120건에서 2011년 153건, 2012년 183건으로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구병원을 찾는 대장암 환자의 30%가 타지역 출신이다.

어지럼증을 앓는 환자가 전국에서 쇄도하는 오희종신경내과의 경우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를 획득, 진료뿐만 아니라 환자의 안전까지 책임지고 있다. JCI는 WHO(세계보건기구)가 환자 안전보장을 위해 협력을 맺은 세계적 권위의 미국 국제 의료기관 인증기구다. 현재 JCI를 획득한 곳은 미국의 존스홉킨스병원과 메이요클리닉, 메사추세츠종합병원을 비롯해 전 세계 48개국 420개 병원에 이르며, 국내에선 세브란스병원, 고대안암병원 등이 있다.

또 매년 2천명에 가까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올포스킨 피부과, 여성질환전문병원인 효성병원,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화상전문병원인 푸른병원과 안과전문병원인 제일안과의 명성도 전국적이다. 특히 제일안과는 연간 2천례 이상의 백내장, 녹내장, 사시 등 각종 안과 수술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 강소병원은 대체로 환자의 입소문을 통해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러다보니 해당 병원의 발전·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대구가 메디시티로 거듭나기 위해선 강소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연계한 의료시스템 정착이 시급한 상태다. 이를 위해선 지자체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지역 의료계의 주장이다.

대구의 한 병원장은 “현재 국공립병원과 지방의료원에만 공공의료 예산을 쏟아 붓는 정부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지역 강소병원도 거점병원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