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천5백곡의 노래시를 쓰다…살아있는 전설의 작사가 정두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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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1-22   |  발행일 2013-11-22 제37면   |  수정 2013-11-22
“이미자에게 500여곡 작사해 줬는데 그중 50곡 정도 히트한 것 같아”
흑산도 아이들의 사연이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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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출신의 작사가 정두수씨는 평생 3천500여곡의 노래시를 남겨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히트 작사 제조기’로 불리고 있다. 여든을 앞 둔 나이지만 여전히 작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66년 비내리는 어느 봄날 인천 연안부두. 고뇌어린 한 작사가가 하염없이 바다를 낚는다. 그는 남진을 위한 노랫말을 짜내던 중이었다. 당시 국내 최고의 지구레코드사 전속 작사가였던 그는 마감에 몰린 기자처럼 피말리는 심정으로 가사를 저울질해 보지만 신통치가 않았다. 꿉꿉한 맘을 추스르며 선술집에 들어갔다. ‘낮술 삼매경’에 빠질 즈음 갑자기 뱃고동 소리가 그를 감전시킨다. 그건 실제 소리가 아니었다. 라디오 연속극 효과음이었다. 갑자기 유년 시절 그의 놀이터였던 부산 광안리 바다가 와락 그리웠다. 자신도 모르게 ‘가사 한 줄이 왜 이렇게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독백하는 순간 제목이 번개처럼 다가섰다.

‘옳지, 가슴 아프게로 정하자. 바다와 나 사이를 짓누르고 있던 건 저 봄비가 아니라 바다였어.’ 다음 가사는 일사천리로 쉽게 빠져나왔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하략)

남진을 당대의 국민적 가수로 격상시킨 노래 ‘가슴 아프게’는 이런 산고를 겪고 어렵게 어렵게 태어난다. 당시 남진은 19세였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생이었다.

 

미리 써둔 ‘덕수궁 돌담길’을
한산도씨가 가져가 작곡 ‘대박’

‘흑산도아가씨’는 육영수 여사와
흑산도 아이들의 사연이 모티브

‘물레방아 도는데’ 노래 속의
소식 없는 주인공은 삼촌

작사가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시인
직접 써보라 하면 힘들어 도망

서태지 이후 직설·자극·상업적…
서정성·문학성이 사라졌다



일흔여덟의 정두수.

시인이기도 한 그는 시까지 포함해 3천500여곡의 노랫말을 남겼다. 그런 그가 요즘 큰 행사 준비로 무척 바쁘다. 오는 28일 서울시 용산구 삼각지로터리 근처 전쟁기념관에서 어쩜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의미로운 출판기념회 준비 때문이다. 출간된 책은 남인수에서 조용필까지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흐름을 정리한 ‘노래따라 삼천리’.

그런 그가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지난 2일 옛가요 사랑모임인 ‘유정천리’와 함께 청송군 수정사 계곡에 있는 왕평 묘소를 참배했다. 그와 동행하며 한국 옛가요와 함께 동고동락해온 한 원로 작사가의 지난 날을 음미했다.

◆ 내 작사의 원천은 고향

나름 유명한 작사가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고향인 경남 하동군 덕분이란다. 태어날 때 ‘삼포(三浦)’를 갖고 태어났다. 삼포란 멋진 산과 바다, 그리고 강. 다시말해 한려수도·섬진강·지리산을 의미한다. 그 셋을 알처럼 품은 경남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가 그의 고향이다.

그의 문학적 예술성은 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부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한학자. 형은 유명한 시인 정공채다. 어릴 땐 하모니카가 분신이었다. 6·25 때는 부산 영도 근처 연세대를 다니다가 1958년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 예대 문창과에 들어간다.

그는 유행가 가사라 하지 않고 ‘노래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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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진은 젊은 시절의 정두수씨.
-작사가가 된 동기는 뭔가요.

“동래고 2학년 때 진주 개천예술제 시부문에 참가해 재능을 인정받았어요. 어느 날 내 친구가 진주에 내려와 당구장을 경영하고 있는 남인수 선생을 만나러 가자고 하더군요. 당시 남인수는 진주시 본성동에서 결핵 요양중이었는데 무턱대고 당구장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저희를 반겨주더군요. 남 선생은 제가 시에 재능이 있는 걸 알고 더 관심을 가졌지요. 아마 그때가 62년일 겁니다. 당시 KBS에서 건전가요 가사 공모를 자주 했는데 제가 응모한 ‘즐거운 여름’이 당선됐어요. 원래 현인이 부른 노래인데 나중에 서수남·하청일 듀엣이 이 곡을 리메이크해 크게 히트했죠.”

-그럼 작사가가 된 겁니까.

“시인이 되려면 신춘문예나 현대문학 같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해야 하는데, 당시 국내엔 공식적인 작사가 등용문이란 게 없었어요. KBS 공모전에 입상하니 모두 작사가로 인정해줬죠. 저는 단번에 KBS전속 작가로 대접 받았습니다. 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에서도 현상공모를 했는데 거기 출품한 ‘공장’이란 시도 당선이 돼요. 상금이 꽤 많아 전세금으로 충당했을 정도였습니다. 별도의 월급은 받지 않고 고료 명목으로 곡당 1천500원을 주더군요. 당시 문예지에 시 한 편 원고료가 고작 200원 하던 시절이니 상당한 예우였죠.”

-본인의 오늘을 있게 한 노래는 뭐죠.

“63년이었습니다. 친구 중에 당시 MBC 전속가수였던 양병철씨가 있었어요. 그가 ‘방송국에만 매여있지 말고 대중가요 전문 작사가로 전향하라’고 권유했어요. 저는 대중가요 작사가가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61년 미리 써둔 ‘덕수궁 돌담길’이 있었어요. 그런데 ‘동백아가씨’와 ‘여자의 일생’을 작사·작곡한 한산도씨가 제 가사를 갖고 작곡합니다. 이 곡은 진송남이 불러 대박이 납니다. 진송남은 부산 성남초등 제 후배입니다.”

-바야흐로 유명 작사가의 길이 열렸네요.

“당시 최고의 레코드사는 지구레코드사였습니다. 박시춘, 박춘석, 나화랑, 백영호, 김인배, 한산도 등 기라성 같은 작사·작곡가가 포진해 있었어요. 가수로는 이미자, 문주란, 하춘하, 남진, 나훈아 등이 진을 쳤어요. 대단한 사단이죠. 임정수 사장이 덕수궁 돌담길 때문에 제게 전속 러브콜을 날렸어요. 망설일 필요가 없었죠. 정말 대우가 좋더군요. 월급만 2만원이고 작품을 낼 때마다 3천원을 주고, 그 곡이 히트하면 별도로 5만원을 더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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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가 1965년 ‘흑산도 아가씨’를 취입할 때 작곡가 박춘석과 함께한 정두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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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오늘을 있게 한 ‘물레방아 도는데’의 배경이 된 정두수의 고향(경남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전경.
◆ 흑산도 아가씨 태동 배경

-흑산도 아가씨는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65년 봄 어느 날 박춘석씨가 커피 한 잔을 하자더군요. 여가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던 다방인데 거기서 우연히 동아일보 석간 사회면 톱 기사를 보게 됐어요. 육영수 여사가 흑산도 아이들을 해군 함정에 태워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는 미담 기사였죠.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거센 풍랑이 이들을 가로막았어요. 딱한 소식을 접한 육 여사가 해군본부에 부탁해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줬다더군요. 순간 필이 확 오더군요. 아이들 대신에 ‘아가씨’를 집어 넣었죠. 다들 연인 간 이별 노래로 아는데 실은 아이들 얘기가 모티브였죠. 작사를 위해 흑산도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정보까지 수집했습니다. 결국 대박이 났고 보너스로 5만원을 받았어요. 당시 전차 차비가 1원50전이었어요. ”

-이미자도 엄청 좋아했겠네요.

“이미자는 59년 19세로 KBS ‘예능로터리’란 프로그램의 아마추어 노래자랑에서 1등을 차지해 가요계에 나오죠. 64년 발표된 ‘동백아가씨’를 이미자가 만삭의 몸으로 녹음한 거라는 걸 일반인은 잘 모를 겁니다. 흑산도 아가씨 이후부터 이미자와 박춘석, 그리고 저는 트리오처럼 똘똘 뭉쳐다니면서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 ‘아네모네’ ‘황혼의 블루스’ ‘한 번 준 마음인데’ ‘비에 젖은 여인’ 등 같은 히트곡을 썼어요. 제가 이미자에게 500여곡을 주고 그중 50여곡이 성공한 것 같아요.”

-선생님 휴대폰 컬리링도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이던데요, 어떤 곡이죠.

“어느 날 서울의 한 다방 어항 속 물레방아를 보고 힌트를 얻었죠. 실은 내 고향 하동을 노래했고 노래 속의 소식도 없는 주인공은 바로 일제강점기 전쟁터로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온 제 삼촌입니다.”

◆ 좋은 가사 없이 좋은 곡 안 나와

-작사가나 작곡가, 가수 가운데 누가 가장 힘이 있나요.

“다들 자기가 최고라고 하겠죠. 하지만 가요계 흐름을 보면 역시 좋은 곡과 좋은 가수가 있어도 좋은 가사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것 같아요. 멜로디가 심금을 울리는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역시 한 시대와 서민의 공동적 관심사를 좋은 노래시로 형상화시킬 때 히트곡이 태어나죠.”

-어떤 때는 작사가가 정치가보다 더 영향력 있는 것 같아요.

“일반인은 유행가 가사 적는 사람 정도로 알지만 실은 아니죠. 그들만큼 시대의 정서를 적확하게 ‘확인사살’할 줄 아는 문인도 드물어요. 그런데 시인은 작사가를 한 수 아래로 보려고 해요. 마치 시인이 동시 작가를 유치하게 보려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시인에게 유행가를 만들어 보라고 왜 이렇게 가사 적는 게 힘드냐면서 도망갈 겁니다.”

-가사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봐요.

“시인이야 문학성을 앞세워 은유법 등 각종 수사법을 동원해서 실험적이고 새로운 시를 만들면 되지만 가사는 그것과 전혀 달라요. 작사가 자기 기분만 생각하면 그야말로 ‘꽝’이에요. 시대와 세상 정서, 그리고 가수의 성향과 음색, 작곡자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야죠. 짧고 쉬우면서도 민초가 공감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는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없죠.”

-전국에 노래비도 적잖게 있을 것 같네요.

“전국에 흑산도 아가씨 등 13개의 노래비도 세워졌다고 하더라고요. 민망하기도 하고….”

◆ 이제 재평가를 받는 한국 작사가들

-작사가는 저작권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현재 1만여명의 작사가가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예전에는 기준이나 원칙도 없었죠. 62년 저작권협회가 발족하긴 했지만 국제저작권협회도 가입하지 못했고 정부 당국의 보호도 받지 못했어요. 무늬만 저작권협회였죠.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작사가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형성됩니다. 무명 작사가는 서러웠죠.”

-작사가도 표절시비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짜깁기 시대가 있었어요. 가령 특정 작사가가 월북했을 경우 그 작가의 노래 제목을 바꾸고 각색해서 자기 것으로 슬쩍하는 작사가도 있었습니다. 다들 알고도 안면 때문에 문제 삼지 못했습니다. 저도 정귀문 작사의 ‘바다가 육지라면’이 히트쳤을 때 흑산도 아가씨와 비슷하다면서 일부에서는 제가 이름을 바꿔 노랫말을 지었다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성인 트로트 가사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부터 우리 가요의 가사가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충격적인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래에 서정성이나 문학성이 없어요. 불륜이나 삼각관계 등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가사를 통해 한 방에 유명해지려는 욕망이 그대로 노출되더군요. 너무 상업적이에요. 충동을 줄 지는 모르지만 이런 곡은 결코 롱런하지 못해요. 그런 곡을 보면 옛가요 전문 작사가로서 안타깝고 화도 나요.”

-후배 가수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조용필이나 나훈아, 이미자가 왜 생명이 그렇게 깁니까. 바로 옛가요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을 노래하기 때문이죠. 그래야 성공합니다. 상업성에 놀아나지 말아야 할텐데….”

-저작권료 많이 받죠.

“좀 받죠. 하지만 이내 마누라 주머니에 다 들어가버리죠. 허허허.”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정두수=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KBS 건전가요 가사 공모에서 ‘즐거운 여름’이 당선돼 전속 작사가로 데뷔. 1963년 진송남이 부른 ‘덕수궁 돌담길’이 주목을 받으면서 당시 국내 최고 지구레코드사 전속이 된다.

이후 ‘흑산도 아가씨’의 이미자, ‘가슴 아프게’의 남진, ‘물레방아 도는데’의 나훈아, ‘공항의 이별’의 문주란, ‘그 사람 바보야요’의 정훈희를 비롯해 조용필, 하춘하, 진송남, 은방울자매, 패티김, 들고양이, 최희준, 김부자, 김상희, 감상진, 설운도 등 100여명의 인기가수가 그의 가사를 품었다. 발표한 가사는 시를 포함해 3천500여곡.

71년 서울 종로2가 세광음악학원 3층에 국내 첫 작사 전문 학원인 정두수 작사교실을 오픈했다. 이후 ‘알기 쉬운 작사법’도 출간했다. 2002년 하동읍 섬진강변 송림 백사장에서 정두수 가요 30년 기념공연을 가졌다. 현재 경기도 광주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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