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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피플] 간첩 깐수에서 실크로드 박사로…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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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식기자 손동욱기자
  • 201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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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동쪽 끝은 경주… 세계 속 한반도 위상 事典 문자로 각인”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에서 가져온 실크로드 전도를 가리키며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진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무함마드 깐수’ 한때 그의 이름이었다. 1996년 간첩 활동 혐의가 드러나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될 당시다.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단국대 사학과 초빙교수였던 그가 고정간첩으로 드러나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국내 최고 권위의 이슬람학자였기 때문이었다.

구속 소식과 동시에 드러난 그의 본명은 정수일(79·당시 62세). 곱슬머리에 금테안경, 콧수염까지. 누구도 필리핀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그가 순수 혈통의 한국인이었다니…. 부인조차 그를 영락없는 필리핀인으로 알 만큼 철저하게 주변을 속여 왔다는 사실에, 안기부(현 국정원) 조사에서 지금까지 썼던 외국 억양의 한국어를 버리고 능숙한 조선어로 ‘내 국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라고 자백했다는 대목에서 국민들은 경악했다.

그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입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이집트 카이로대학 중국 국비유학생 1호 연구생,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동양권 7개 국어(한국·일본·중국·아랍·페르시아·말레이·타갈로그어), 서양권 5개 국어(러시아·독일·프랑스·에스파냐·영어)를 합쳐 총 12개. 언어 천재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간첩이라니….

정씨는 그렇게 세상을 한바탕 휘젓곤 대구 화원교도소(현 대구교도소)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도 잊혀갔다. 1997년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5년 복역 뒤 특사로 석방됐다.

2008년 드디어 그는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다시 학자의 길로 돌아왔다. 지난달엔 경북도의 후원으로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실크로드 사전(事典)’을 발간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젠 간첩 깐수가 아니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이라는 당당한 직함으로.

지난 3일 경북도청에서 정수일 소장을 만났다. 17년 전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헌팅캡과 고동색 체크 넥타이에선 문명교류학에 심취한 팔순을 바라보는 노학자 분위기가 물신 풍겼다.


‘실크로드 事典’ 발간, 왜
문명교류로에 대한 연구 지지부진
학문적 정립 자극 위해 집필하게 돼
선현들의 세계 향한 족적 되살려
한국의 소외, 바로잡는 데도 노력
숱한 인력·재력 소요된 벅찬 役事
경북도 적극적 후원 있었기에 가능

한땐 간첩… 잊고 싶은 과거
북한서 16년, 한국서 29년 살아
돌이켜보면 파란 많았던 인생
수감 때 실크로드 관련 집필 시작
출소 때 원고지 2만5천여매…
실크로드 사전 발간 큰 밑거름
여생은 문명교류학 개척에 바칠 것


-왜 실크로드 사전인가.

“130여년 전 문명교류의 통로로서 실크로드란 개념이 적시된 이래 동서양 학계에선 꾸준히 연구를 이어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최근엔 문명교류사(학)의 기초 분야로서 사전 편찬을 비롯한 실크로드의 학문적 정립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시도 단계일 뿐, 실크로드의 개념을 포함해 일련의 근본문제를 두고 이론이 분분하고, 구태의연한 통설에 허우적거리며 연구도 부진한 상태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우선 실크로드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 사전을 집필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전개된 문명교류의 실상을 조명하고, 지금까지 한국이 실크로드에서 소외됐던 점을 바로잡아 ‘세계 속의 한국’이란 위상을 복원하려는 목적도 있다.”



-실크로드 사전(辭典)이 아니라 사전(事典)이다.

“이 책은 실크로드와 관련된 단어에 대한 언어적 풀이를 하는 사전(辭典)이 아니라, 실크로드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항에 대한 기술을 통해 실크로드와 문명교류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사전(事典)이다. 외국에서 간행된 몇몇 종류의 실크로드와 문명 관련 서적, 굴지의 세계적 여행기 그리고 현장 답사자료 등을 참고해 총 1천907개의 표제어를 담았다. 1천92쪽 분량으로, 색인을 8천15개나 실었다. 표제어에 대한 해설은 학습서나 참고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상세히 논술했다. 이는 여느 동류의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본서만이 추구하는 ‘작(作)’의 발현이다.”



-현장성을 지극히 반영했다는데….

“도록(圖錄)은 자체가 현장이다. 현장성은 곧 유물을 확인하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사막이나 풀밭, 바닷물에 묻혀버린 죽은 길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길이며, 인류역사의 어제와 오늘로 이어주는 길이다. 현장성 없이는 이처럼 약동하는 길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이에 실크로드의 오아시스로와 초원로, 해로를 직접 답사하면서 현장을 확인하고 몰랐던 것을 찾아냈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잡았다. 더불어 여러가지 여행기와 탐험기 속에 나오는 길, 특히 세계 4대 여행기 중 3대 여행기를 역주(譯註)하면서 여행가들이 답파한 길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데 부심했다. 사전에 실린 350장의 사진은 바로 현장성의 발로다.”



-실크로드 사전의 국제적 의의는.

“실크로드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실크로드는 고행과 낭만이 함께한 길이며, 멀면서도 가까이 우리 속에 있는 길이다. 이 길 위에 선현들이 찍어놓은 족적은 세계를 향한 우리 겨레의 쾌거다. 연구의 미흡으로 인해 몇몇 사례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지만, ‘왕오천축국전’이나 ‘지봉유설’ ‘지구전요’ 등 우리의 값진 고전 속에 그려진 실크로드인의 생생한 모습을 재현하는 데 유념했다. 지금까지 실크로드 3대 간선의 동쪽 끝이 중국이라는 진부한 통념을 깨고, 이 길이 당당하게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실크로드상의 한반도’란 역사적 위상을 사전(事典) 문자로 각인한 것이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중국 시안(西安)이 아니라 한반도의 경주로 규정한 근거는.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로마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단적인 예가 물잔의 손잡이다. 동양에선 물잔을 손으로 받쳐 드는 게 문화다. 손잡이는 고대 로마에서 볼 수 있다. 신라시대 손잡이가 있는 물잔은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온 로마의 문명이다.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단이었다는 사실은 신라 38대 원성왕(8세기 후반)의 ‘괘릉’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괘릉을 지키는 무인석의 얼굴을 보면 눈이 들어가고 코가 우뚝한 ‘심목고비(深目高鼻)’형 서역인의 용모가 놀라울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터번까지 쓰고 있어 누가 봐도 신라 사람이 아니다. 서역인의 용모나 복식에 관해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석공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아랍문헌에서도 신라에서 비단, 도자기, 검, 사향 등 11가지 물건을 수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크로드 문명의 길이 경주까지 이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터키 총리도 지난 9월30일 열린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에서 실크로드의 동단은 경주라고 공식 선포하지 않았는가.”



-방대한 작업이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사전을 만드는 일은 숱한 인력과 재력이 소요되는 벅찬 역사(役事)다. 이 사전의 출간은 여러 방면의 합심과 협력이 낳은 결실이다. 오랫동안 파묻혔던 사전작업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경북도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중심과제 중 하나로 ‘실크로드 사전 간행’을 상정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이 사업을 선도한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김남일 실크로드 추진본부장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의 뜨거운 성원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한땐 고정간첩이었는데….

“분단의 비극이다.(정 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다. 중국에서 30년, 북한에서 16년, 말레이시아·필리핀·튀니지에서 5년, 한국에서 29년을 살았다. 돌이켜 보면 참 굴곡도, 파란도 많았던 인생이다. 역마살이 낀 건가.(웃음) 하지만 정작 실크로드 사전 집필을 시작한

곳은 바로 화원교도소(1998년 4월)다. 집사람이 가져다 준 책으로 교도소 안에서 실크로드 관련 내용을 기록했다. 주로 편지지 앞뒷면을 빽빽하게 활용했다. 출소할 땐 200자 원고지 2만5천매 분량이 됐다. 이번에 나온 실크로드 사전을 집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앞으로 계획은.

“문명교류학을 개척해 인문학에서 하나의 새로운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남은 일생을 바칠 것이다. 문명과 실크로드라는 2개 분야를 학문의 축으로 두고 문명교류학을 완성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선 교재가 필요한데, 모두 22권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14권을 썼고, 현재 2권을 집필 중이다. 남은 6권도 끝까지 집필할 것이다. 22권이 완성되면 이를 아우르는 문명교류학 개론을 집필해 세계 최초로 문명교류학이라는 학문을 만들고 싶다. 대학에서도 정식 학과가 개설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그러면 한국은 문명교류학의 메카가 될 것이다. 이를 마무리하고 죽을 수 있을는지….”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 정수일 소장은…

1934년 중국 연변 조선족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이징대(北京大) 동방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국 국비유학생 1호로 선발돼 이집트 카이로대학 인문학부 연구생으로 유학했다. 중국 외교부 및 모로코주재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평양 외국어대 동방학부 교수와 아프리카 튀니지대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 말레이시아 말레이대 이슬람아카데미 교수로 일했다.

필리핀에서 살다 1984년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레바논계 필리핀인 신분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1988년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 2년 뒤 ‘신라와 아랍·이슬람제국 관계사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후 단국대에서 초빙교수로 임용돼 강의를 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저명인사가 됐다.
그러다 1996년 7월3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돼 단국대로부터 교수직 및 박사학위를 박탈당했다.

이후 12년형을 선고받고 5년간 복역하다가 2000년 8월15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2003년 4월30일 특별사면 및 복권됐고, 5월14일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8년 11월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를 창립했다.

저서로 ‘신라·서역 교류사’ ‘세계 속의동과 서’ ‘고대문명교류사’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 등 가 있으며, 역주서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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