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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본’ 시리즈, ‘007’ 시리즈에 견줄 만한 원신연 감독의 리얼 액션 ‘용의자’ 말이다. 흥미로웠다. 총 제작비 90억원, 홍콩과 푸에르토리코 등을 넘나든 9개월간의 촬영이라는 물리적인 크기도 그렇지만, 그보다 액션전사로 돌아온 공유의 모습이 그랬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부드러운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그가 그간의 이미지를 배신하듯 거칠고 강한 남성이 되어 돌아왔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용의자’는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채 남한으로 망명한 전직 북한 특수정예요원이자, 우연히 국가기밀을 손에 넣고 쫓기는 신세가 된 지동철의 진퇴양난을 그린 액션물이다. 공유는 아내와 딸을 죽인 자를 찾아내 복수하기 전까지는 죽을 수도, 잡힐 수도 없는 지동철의 캐릭터를 차용해 오로지 몸과 눈빛으로만 137분의 러닝타임을 숨 가쁘게 몰아친다.
그는 최정예 특수요원 캐릭터를 위해 주체격술과 카체이싱, 암벽 등반, 한강 낙하까지 다양한 고난도의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아이와 처를 잃은 남자가 뭘 못하겠나. 한 마리의 짐승이나 괴물처럼 보였으면 하는 바람에 몸조차도 처절하게 만들었다”는 그다. 원 감독은 그런 공유에게서 “재규어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한발 더 나아가 사지에 서 있었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보다 밀도 있게 지동철 캐릭터를 끌어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대사 없이 몸짓연기
‘도가니’의 연장선인 셈
‘본’이나 ‘007’처럼
시리즈 되면 좋겠는데…
실연한 카체이싱 장면
극장서 보니 나도 짜릿
원진 무술감독 정말 빨라
연습 불구 많이 맞아
원없이 때려도 봤는데
아드레날린 분비 통쾌
‘맷 데이먼 출연시키자’
내가 제의해 성사될 뻔
-첫 액션영화 도전이다.
“작품을 선택하는 건 장르에 상관없이 항상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용의자’는 장르가 액션이라서 도전이라기보다 표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대사가 거의 없고 몸짓이나 눈빛으로 모든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가니’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부수적이다. 따라서 관객들이 단순히 ‘주먹질 좀 하네, 몸 좀 쓰네’라고만 얘기한다면 나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 같다. 대사가 없는 캐릭터지만 관객들이 이를 통해 뭔가를 전달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영광이며, 기쁨으로 생각하겠다. 그게 도전 이유였다.”
-대사보다 지문이 많은 시나리오는 분명 배우에게 쉬운 선택이 아니다. 부담감은 없었나.
“당연히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을 만난 자리에서 ‘장르는 액션이지만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만 있는 액션영화가 아닌, 휴머니즘까지 아우른다’라는 말을 듣고, ‘감독님이 나와 같은 곳을 바로 보고 계셨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감독님도 이제껏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액션 비주얼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를 나와 함께 해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믿음을 주셨다.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같다 보니 ‘내 몸을 던지면서 일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흥미로웠다. 당신의 어떤 점에서 액션전사의 이미지를 포착했을까.
“나 스스로 판단한다는 게 어색하고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간 드러나고 보여진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이 봤을 때 보여지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각자 주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감독님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그런 눈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취향이나 기호에 맞게 배우들을 선택한다. 내가 주로 부드러운 캐릭터로 비치고 있었지만 원 감독님은 좀 더 거시적인 접근을 한 것 같다. 단순히 액션 캐릭터가 아닌, 그 안에 알맹이를 얹었을 때 나라는 배우에게서 뭔가 뽑아낼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지.”
-당신이 생각하는 지동철은 어떤 인물인가.
“지동철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동철에게 다가갔던 마음은 그러했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 같다. 그래서 지동철에게 연민 아닌 연민을 느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연기했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지만 그런 마음으로 접근을 했다. 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지동철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쉽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연기적인 틀을 깼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듯한데.
“틀을 깼다기보다는 좀 더 확대됐다는 느낌이다. ‘도가니’ 때 처음 연기적인 도전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픔을 다룬 실화인 만큼 더 조심스럽고 찍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도가니’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가 인호를 정면으로 잡는다. 카메라를 대사 없이 쳐다본다는 것은 배우에게 엄청난 부담감이 느껴지는 부분인데, 이는 카메라 너머에 앉아 있는 수많은 관객을 실제로 쳐다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랬을 때 관객들이 ‘왜 쳐다봐’라고 생각하면 실패한 거다. ‘도가니’를 하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한 도전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조마조마했고 부담감도 컸지만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그 메시지를 잘 받아 줬다. ‘용의자’는 그 확장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 엔딩 장면을 보면 시리즈를 염두에 둔 감독의 의지가 느껴진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했다. 딸과 만나는 장면으로 끝낼지, 아니면 2편을 암시하는 지금의 컷을 넣을지에 대해서다. 그런데 꼭 2편을 만들자는 의도는 아니었다. 어차피 액션장르의 영화니까 마지막으로 정적인 부분을 보여주되 뭔가 사람들이 액션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임팩트를 주기 위한 테크니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사의 끝을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이자 고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완성도면 시리즈에 대한 욕심을 가질 만하다.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이 ‘용의자’를 사랑해주시면 그 수익금으로 이보다 좀 더 큰 스케일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라고 ‘본 시리즈’ ‘007 시리즈’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멋진 일이다.”
-카체이싱은 정말 짜릿했다.
“현장에서 촬영할 때 우리 스스로만 새로운 앵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아도취는 아닌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카체이싱은 현실 속에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대리만족이나 스릴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촬영에 임했다. 감독님이 걱정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더 웃으면서 신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계단에서 후진으로 내려오는 씬은 내가 직접 촬영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사운드와 함께 봤을 때 엉덩이가 저려 올 정도였다.”
-당신과 합을 맞춘 액션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특히 원진 무술감독은 중국 무술계에선 사부로 통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같이 해보니 어땠나.
“원진 무술감독님은 예전 ‘가자왕’의 주연을 맡았던 분이다. 지하철 액션신으로 만났는데 합을 맞추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너무 빨랐다. 연습하는 과정에서 합을 미리 인지하고 반복해 연습했는데도 그분한테 맞은 적이 많았다. 막아야 할 시점에서 그분의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그래서 위험했던 순간도 많았다. 감독님이 옆에서 지켜보다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반면 장점은 그분들이 완급조절을 다 알아서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확실한 피드백 덕분에 내가 더 파워 있게 보이고 스피드가 빨라 보였다. 그 차이점은 (김)성균씨와 액션장면을 찍을 때 많이 느꼈다. 무척 고생했다. 둘 다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힘은 배로 들었고, 다칠 확률도 그만큼 높았다. 그런 부분에서 체력적인 소모가 심했다.”
-힘들지만 재미도 느꼈을 것 같다.
“원 없이 때려보니까 거기서 오는 대리만족은 있었다.(웃음) 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통쾌함도 있다 보니 체력적인 소모는 있었지만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카체이싱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언제 그렇게 차를 험하게 몰아보겠나. 그런 다이내믹함이 어찌 됐건 분명한 대리만족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위험은 둘째 치고 신났다.”
-대역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배우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10~20%를 제외하곤 내가 다 했다. 예를 들어 암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고 차가 정면충돌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까지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나진 않던가.
“욕심이 났다. 왜냐하면 내가 한 것과 대역이 한 것은 카메라 앵글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이 보이면 안 되니까 뒷모습과 부감만 찍어야 했다. 그랬을 때 그 한 컷의 차이가 자칫 전체를 판가름하게 만들 수 있다. ‘어! 저 장면 어떻게 찍었지’라는 말이 나와야 사람들이 더 집중하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하더라도 감독님에게 ‘내가 해볼게요’라고 때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감독님은 ‘이 영화는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다. 아직 산 넘어 산인데 길게 생각하자’고 말했다. 조금은 아쉽지만 감독님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나보다 고수니까 믿고 따랐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내 체력을 안배시키기 위한 배려였다.”
-어떻게 몸매를 만들고 관리했나.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몸은 지동철의 몸이다. 처음에는 3개월 동안 일반식을 먹지 못했다. 탄수화물 섭취량이 부족한데 힘을 쓰는 액션 영화이기에 힘들었다. 그렇게 처절하게 몸을 만든 이유는 상반신 탈의 신(scene)에서 중요한 건 지동철의 몽타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동철이 합격률이 3%밖에 안 되는 최정예 특수부대를 거친 인물이기에 그 과정에서의 몽타주를 생각했다. 관객들이 훗날 지동철이 행하는 모든 액션, 카체이싱을 납득하게 하려면 혹독하고 처절한 느낌이 나야 했기에 좀 더 이를 악물고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교수대에서 어깨를 탈골하는 신이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 시퀀스가 기대가 됐다. 감독님께서 그 장면이 큰 스크린으로 나갈 때, 앉아있는 관객들의 숨이 멎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 같지 않고 괴물이나 짐승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데뷔 12년 차다. 중간에 연기를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어떤가.
“20대 후반에 연기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웃음이 나온다. 그만큼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는 건데 분명한 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배우에게 있어 흥미롭고 재밌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20대 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어른들이 말하는 연륜과 경험의 중요성이 특히 배우에게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30대 중반이 된 지금 알게 됐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40대가 됐을 때는 또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설렌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다기보다는 오히려 행복하다.”
-그렇다면 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떻게 보면 배우가 어렸을 때 꿈이나 목표가 아닌, 내가 12년 동안 이 일을 해오고 있고 나름대로 내 색깔을 다지면서 큰 사고 없이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 점점 삶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과거에 분리되어 있던 것이 이제서야 하나로 모아진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과정의 연속이고 미완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합쳐졌을 때 직업란에 배우라고 자신 있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맷 데이먼이 출연할 뻔했다고 들었다.
“우리도 굉장히 흥분됐다. 그와 접촉을 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와’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푸에르토리코에서 촬영을 할 때 현지 촬영을 도와준 분들이 ‘블랙스완’을 만들었던 할리우드 제작진이었다. 우리가 농담 삼아 푸에르토리코에 등장하는 외국배우들은 이름 있는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이 가져온 리스트를 보면서 놀란 게, 현재 미드와 할리우드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석호필로 잘 알려진 ‘프리즌 브레이크’의 웬트워스 밀러는 물론, ‘로스트’ 와‘CSI’에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스케줄만 맞는다면 다 출연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거다. 그 자체로도 신기했는데 내가 제작사 대표에게 첩보영화의 교본인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을 접촉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대표 역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에이전시에 전달했는데 맷 데이먼 측에서 번역본과 기획서를 보내 달라고 하는 거다. 그러고는 최종적으로 맷 데이먼에게 전달했고, 그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한 달 후, 충분히 관심이 가는 프로젝트지만 가족과 함께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정중히 고사한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엘리시움’을 찍고 난 후라 여유가 없었던 거다. 아쉽긴 했지만 그 시도와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차기작은 뭔가.
“장르를 규정짓기 힘들 만큼 낯선 영화다. 뭔가 또 엄청난 도전이 될 것 같고, 그만큼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볼 수 있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준비 과정이 많이 필요한 영화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나도 궁금하다.”(웃음)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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