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셜리에 관한 모든 것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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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27   |  발행일 2013-12-27 제42면   |  수정 2013-12-27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관람가)
이혼 앞두고 벌어진 갈등 섬세하게 통찰 ‘시종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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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살고 있는 아마드(알리 모사파)는 4년째 별거 중인 마리(베레니스 베조)와 이혼하기 위해 파리로 왔다. 마리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큰 딸 루시(폴린 버렛)와 둘째 레아(쟌느 제스틴)를 키우고 있다. 과거 이 집에서 살았던 아마드는 그런 두 딸에게 늘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였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은 마리는 그를 집으로 데려오고 아마드는 레아와 놀고 있는 낯선 사내 아이를 발견한다. 네 번째 재혼 상대자인 사미르(타하 라임)의 아들 푸아드(옐예스 아귀스)다. 마리는 사미르의 아이까지 임신 중이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씨민과 나데르 부부의 별거’(2011)로 주목받았던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신작이다. 가족이 중심이 되는 일상적인 소재와 이야기에 천착해 인물 간의 심리와 갈등, 진실을 예리하게 포착해왔던 그는 스토리텔러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전작이 이민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별거 중인 부부에게 닥친 곤경을 다뤘다면, 이 영화는 이혼을 앞두고 전개되는 갖은 오해와 갈등을 섬세한 통찰력으로 풀어낸다.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는 인물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게 머물러줄 사랑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마리는 이제 네 번째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루시는 그런 엄마가 영 마뜩잖다. 사춘기인 루시는 오랜만에 마주한 아마드에게도 “아빠와 같은 이유로 이 집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특히 루시는 사미르를 극도로 경계한다. 루시의 표현에 의하면 사미르는 아들과 의식불명의 부인이 있는 멍충이 유부남이다. 아마드는 루시로부터 사미르의 아내가 사미르와 마리의 불륜관계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듣게 된다.

사실 아마드는 파리에 도착한 시점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호텔 예약을 부탁했지만 집으로 데려온 것부터 시작해 자신의 침대를 빼앗겼다며 투정을 부리는 사미르의 아들과 한 방에서 자게 만든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본의 아니게 그들과 얽히게 된 아마드는 “복수하려고 불렀느냐”며 마리를 향해 불만을 토로한다. 마리의 피곤하고 단조롭던 일상 역시 아마드가 나타남으로 해서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와 감정들로 채워진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 이혼을 감행하려던 그녀의 곁에 이제 과거에 머물러있는 현재와 과거의 남자들이 머무르고 있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심리드라마로 풀어내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 택한 건 퍼즐처럼 각각의 조각을 맞춰가며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드는 그 중심에 있다. 그는 루시의 방황을 안타깝게 생각해 진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나선다. 먼저 루시와 함께 사미르가 경영하는 세탁소에 가서 여종업원을 만난다. 그녀는 손님과의 다툼 이후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살을 시도했을 뿐 사미르와 마리의 불륜관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명쾌하게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이때 루시가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하는 메일을 사미르의 아내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과거’라는 이 영화의 원제처럼 현재의 상황을 통해 실타래처럼 엮여있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전개과정은 맛깔스럽다. 관객을 빨아들이고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능력 역시 전작보다 훨씬 깊이 있다. 감독은 과거로 돌아가는 건 어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진실을 마주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이 영화를 통해 강조한다.

마리 역의 베레니스 베조는 이 영화로 2013년 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흑백무성영화 ‘아티스트’에서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한 바 있는 그녀는 사랑에 빠졌지만 항상 불안해하고, 딸을 걱정하지만 신경질적인 엄마가 된 마리 역을 폭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로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 (장르 : 예술, 등급 : 15세 관람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점을 스크린에 정교하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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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도시인의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고독, 상실, 단절을 표현해왔다. 특히 공간과 빛, 인물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그의 작품은 한 장면 안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는 현실이라는 표피에 감싸인 내부로의 응시이며, 이로 인한 감각적 리듬은 필름 누아르의 영향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전방위 예술가인 구스타프 도이치 감독이 영화적 구성의 작가라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를 선택한 건 그런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다양한 영화의 이미지를 연결해 원작의 감독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천착했던 구스타프 도이치는 이번에도 몽타주 기법을 사용해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재탄생시켰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그런 구스타브 도이치 감독이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며 파격적 영화 연출의 선두에 선 첫 극영화다.

영화에는 미국인들의 일상적 풍경이 담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점이 연대기순으로 전시된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이는 셜리(스테파니 커밍) 라는 여성의 삶으로 구성된다. 그녀의 삶은 1930년부터 1960년에 걸쳐 선택된 13개의 그림 속에서 어우러진다. 감독은 단순히 회화의 재해석이 아닌, 개인과 사회라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주목했다. 사회의 격변 속에서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반대로 개인의 삶은 어떻게 역사를 이루어가는지 말이다.

호퍼의 그림에는 한 명, 혹은 두세 명의 사람만이 등장한다. 이를 반영한 영화 역시 이야기와 인물은 압축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마저 어려웠던 시대의 초상인 셈이다. 그룹씨어터 소속의 배우 셜리와 그녀의 동거남인 듯한 신문사 사진기자 스테판(크리스토프 배치)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뉴스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매 챕터를 시작한다. 주식시장 붕괴와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맥카시 광풍과 냉전, 마틴 루터 킹의 인종차별 항쟁은 물론, 문화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화 데뷔와 말론 브란도, 마릴린 먼로 등의 이야기가 스크린 위로 흐른다.

셜리와 스테판 역시 이와 같은 역사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공황을 맞은 연극인은 대거 할리우드로 이동했고, 이를 거부한 셜리는 생계를 위해 영화관에서 좌석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다. 스테판 역시 출근한다고 넥타이를 매고 나가지만 셜리는 그가 빵배급을 받기 위해 매일 줄을 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셜리는 종종 자신의 신념을 연극 안에 반영해 의사표현을 한다. 조직적이고 사색적인 그녀의 독백은 자기 나름의 역사를 잃지 않기 위한 고군분투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의 현재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개인의 역사를 불러온다. 매 장면 하나하나마다 마치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감동을 주며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 과정에서 탄생시킨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 명화나 역사적 장면 등을 정지화면처럼 연출하는 것)’은 경이로울 만큼 정교한 연출로 탄성을 자아낸다. 덕분에 셜리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아름다운 영상미로 완성된다. 결국 영화를 통해 호퍼의 그림들을 살아 숨쉬게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지는 충분히 반영된 듯 보인다. 그렇게 아름다운 한 편의 실험영화로 탄생한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체험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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