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소녀 오예리의 톡톡 세상] 세계 와인의 숨은 보석 ‘포르투갈 와인’ 테이스팅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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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07   |  발행일 2014-03-07 제39면   |  수정 2014-03-07
부드러운 탄닌과 잘 익은 과일의 하모니…맛과 향의 스펙트럼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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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타 도 잠부헤이로’는 평균수령 7∼40년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잘 익은 고품질의 포도송이만을 이용해 제조한 와인. 프렌치 오크통에서 2년간 숙성시킨 뒤 별도의 여과 과정 없이 병입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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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르투갈 대사관 주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포르투갈 와인 테이스팅’ 행사에서 각국의 와인업계 관계자·언론인 등이 포르투갈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포르투갈 와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마 와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포트(Port)’란 이름의, 치즈와 함께 곁들여 마시는 달달하고 알코올 도수가 제법 높은, 짙은 자주빛의 디저트 와인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이리 한 번 저리 한 번 갸우뚱하며,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길 겁니다.

사실, 와인 세계에서 포르투갈 와인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근래에 들어서까지도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18세기초에서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영국인 애호가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주정강화 와인(Fortified wine)인 ‘포트(Port)’나 ‘마데이라(Madeira)’만이 그동안의 명성에 힘입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지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모든 것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와인 양조 기술이 전수되고 대규모의 설비 투자가 이뤄지면서 최첨단의 양조 시설을 갖춘 뛰어난 품질의 매력적인 포르투갈 와인들이 전세계 무대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거기에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왔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기존의 구세계 와인들에 차츰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와인 애호가들이 호주나 미국, 칠레 등의 신세계 와인을 탐미하기 시작한 데다, 이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존의 것과는 또 다른 뭔가 새롭고 이색적인 와인을 찾아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소비자가 차츰 늘고 있는 것도 포르투갈 와인 산업계에는 큰 기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 화답이라도 하듯, 포르투갈 정부나 와인 협회에서도 이미 전세계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전에 나서기 시작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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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르투갈 대사관 주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포르투갈 와인 테이스팅’ 행사에서 각국의 와인업계 관계자·언론인 등이 포르투갈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 포르투갈 와인 테이스팅 행사

포르투갈 대사관 주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번 ‘포르투갈 와인 테이스팅 행사’도 이런 흐름에 힘입어 ‘Vini Portugal(포르투갈 와인 산업 협회)’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행사였습니다. ‘포르투갈 와인’하면, 아직 ‘포트’ 정도에서만 머무르고 마는 대중의 관심을 좀 더 넓혀, 폭넓고 다양한 포르투갈 와인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이죠. ‘Discover the Diversity(다양성을 발견하라)’란 캐치프레이즈가 행사장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는 가운데 ‘Wines of Portugal(포르투갈의 와인)’이란 주제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포르투갈 와인이 곳곳의 테이블 위에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녁 6시.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해가 서서히 서쪽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테이스팅 행사에 초대받은 게스트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니만큼, 주로 외교가 사람이 많이 눈에 띕니다. 와인 업계 종사자, 기자, 그리고 와인에 관심이 많은 투자가나 갤러리스트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이 포르투갈 와인을 화두로 점차 이야기꽃을 피워갑니다.

◆포트투갈 와인 탐험

어디서부터 이 와인 탐험의 서막을 여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은 포르투갈 북부 지역으로 눈길을 돌려봅니다. 포르투갈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Minho(미뉴)’란 지역은 북쪽으로는 스페인 국경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포트 산지로 유명한 ‘Douro(도우루)’지역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가장 서늘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지요. 신선하고 깔끔한 맛의 화이트 와인으로 잘 알려진 ‘Vinho Verde(비뉴 베르드)’란 어린 와인이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는데요, ‘Vinho Verde’란 포르투갈 어로 ‘Green Wine(푸른 와인)’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와인의 색이 푸르른 빛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Verde’란 그만큼 와인이 어리고 신선해 ‘녹음’을 연상케 할 만큼 풋풋한 기운과 싱그러운 생명력을 가득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거의 절반 정도가 사실상 레드와인임을 감안할 때, 와인의 이름만으로 그 빛깔을 연상시키거나 와인의 특징을 단정짓기엔 분명히 무리가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 와인이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건 바로, 이 가볍고 산도가 높으면서도 알코올 도수는 낮고 가볍게 톡 쏘는 듯한 느낌의 ‘화이트 비뉴 베르드 와인’이 청량 음료를 마시는 듯 상쾌하고 개운한 느낌과 기운을 전해주기 때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덕에 누구나 큰 부담 없이 가볍게 들이킬 수 있는 테이블 와인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산물 요리와의 궁합, 즉 ‘마리아주(Marriage·음식과 와인과의 조화)’도 뛰어나답니다. 아시아 지역 요리와의 조합에도 그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꾸준히 다양한 음식에 곁들여가며 그 조화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즐겨볼 만한 와인인 듯싶습니다.

그동안 포르투갈 와인이 전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그리 친숙하기 다가오지 못했던 건, 상대적으로 포르투갈 내국인의 높은 와인 수요적 문제도, 언어상 문제도 분명 있겠지만, 길이도 길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네들만의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해온 탓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에는 거의 350여종에 이르는 토착 포도 품종이 자라고 있는데,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샤르도네(Chardonnay) 등과 같은 국제적인 포도 품종에 익숙한 소비자에게는 그만큼 포르투갈 고유 품종을 사용하여 만든 와인이 낯설 수밖에 없고, 또 대부분의 와인이 그런 토착 품종을 블렌딩하여 만드는 터라 그 맛과 향을 예측하기조차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와인 애호가들이 점차 익숙하지 않은 와인에도 관심을 넓혀가고 있는 만큼, 포르투갈 와인 업계로서는 그들의 토착 품종을 알리고 홍보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토리가 나쇼날…포르투갈 대표 포도품종

‘알렌타시아(Alentasia)’란 와인업체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토리가 나쇼날(Touriga Nacional)’이란 포르투갈 고유의 적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적극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에 ‘Tempranillo(템프라니요)’라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고유 품종이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바로 ‘토리가 나쇼날’이 있다고 할 만큼, 포르투갈의 최고 포도 품종으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향이 풍부하고 균형이 잘 잡혀있어, 특히 도우루나 다웅(Dao)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고 품질의 와인으로 이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고, 심지어는 포트를 만들 때 들어가는 여러 포도 품종 중에서도 단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포도 품종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와인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와이 싱(Wai Xin)’이라는 친구의 추천으로 2010년 빈티지의 토리가 나쇼날을 한 번 테이스팅해 보기로 합니다. 와인은 짙고 영롱하게 빛나는 루비 색상에 스치듯 은은한 바이올렛 향을 풍깁니다. 농익은 자두와 블랙베리에 살짝 가미된 꽃향기는 마지막으로 풍성한 오크향이 뒷받침해주며 균형을 잡습니다. 입에 한 모금 물고 살짝 공기와 함께 들이마시며 맛을 음미해 봅니다. 부드럽게 감기는 타닌과 더불어 잘 익은 과일의 진하고 농염한 맛이 입안 가득 무게감을 전합니다. 과연,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이라 칭송받을만 합니다. 내친 김에 다른 종류의 레드 와인도 한번 맛보기로 합니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미뉴에서 도우루와 다웅, 바이라다 지역을 차례로 지나 동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또 다른 유명 와인 산지인 알렌테호(Alentejo) 지역을 만나게 됩니다.

스위스의 열정적인 와인 애호가가 이 지역에서 소유하고 있는 ‘퀸타 도 잠부헤이로’란 와이너리는 평균 수령이 7년에서 40년 된 포도 나무에서 일일이 손으로 정성들여 수확한 잘 익은 고품질의 포도송이들만을 이용해 와인을 제조한 후, 프렌치 오크통에서 2년간 숙성시키고 별도의 정화나 여과 과정 없이 병입해 만든 레드 와인 세 종류를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그중 특히 2007년 빈티지의 ‘잠부헤이로(Zambujeiro)’와인은 미국의 열렬한 와인 애호가이자 비평가인 로버트 파커가 96점의 점수를 매긴 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몸값을 자랑하는 와인이기도 합니다. 알렌테호 지역의 덥고 건조한 기후는 포도송이로 하여금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로 듬뿍 담아 신선한 과일향이 진하게 풍기는 풍성한 와인을 만들어 내었는데요, 강건하고 과감한 체격에 덧입혀진 타닌도 붉은 과일과 다크 초콜릿이 펼쳐내는 맛의 향연과 더불어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며 오래도록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함께 와인을 테이스팅하다 우연히 알게 된 ‘인도차이나(Indo Chine)’그룹의 총 지배인 스테판씨 역시 이 와인의 파워풀한 몸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도는 풍부한 과일과 섬세한 타닌의 조화에 감탄했다며, 마치 숨겨진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포르투갈 와인의 우수성과 잠재력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다양한 토착 품종이 따로 또 함께 섞여 빚어내는 놀라운 와인 맛과 향의 스펙트럼은 그동안 포르투갈의 다양한 와인 세계를 미처 경험하지 못한 많은 참석자에게는 그저 눈을 휘둥그레하게 할 만큼 놀랍고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 아듀, 콜헤이타 포트!

해가 저물고, 행사장이 위치하고 있는 보트 키(Boat Quay) 주위의 마천루에서도 화려한 조명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을 무렵, 이제 필자도 이번 포르투갈 와인 테이스팅 여정의 대단원을 장식해줄 와인을 찾아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 ‘마데이라’를 찾아서였는데요, 포도 속에 담긴 당분이 미처 알코올로 완전히 발효되기 전에 알코올 도수가 강한 주정을 넣어 발효를 멈추게 하는 방법으로 제작되는 이런 주정강화 와인들은 맛이 달달하면서도 제법 알콜 도수가 높아 디저트 와인으로는 제격입니다. 와인 잔에 담긴 ‘콜헤이타(Colheita) 포트’를 입 속으로 들이킵니다. 콜헤이타는 ‘수확’이란 뜻의 포르투갈어로, 오로지 같은 해에 수확한 포도 품종만을 섞어 와인을 만든 후 최소 8년, 길게는 바로 판매하기 직전까지 큰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다 병입하여 판매하는 와인으로 특히, 포르투갈 현지에서 인기가 높은 포트 중 하나입니다. 은은한 황갈색 빛이 감도는 가운데 잘 말린 과일에 살구 껍질, 꿀, 말린 호두, 커피에 이르기까지 파도가 밀려들 듯 또 한 차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맛의 스펙트럼이 펼쳐집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요? 이렇게 다양하게 줄지어 늘어선 와인을 하나 하나 맛보며 살기에도 진정, 인생은 무척이나 짧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포르투갈 와인은

포르투갈은 포트(Port)라는 달콤한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식사 후 디저트와 함께 마시는 디저트용 와인이다. 포르투갈의 와인은 이탈리아,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레드 와인을 많이 생산하고,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시키기 때문에 와인 스타일도 이들 나라와 비슷하다. 포르투갈은 12세기부터 부분적으로 원산지 통제제도를 시행할 만큼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전통적인 와인강국. 오랫동안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와인을 생산했지만 최근엔 첨단기술을 도입, 품질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포트와 마데이라(Madeira)가 유명하며, 최근에 수출용으로 개발한 로제도 세계 각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항공사 승무원 ohyer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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