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진정한 ‘홍익’은 ‘공감’에서부터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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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3-25 07:54  |  수정 2014-03-25 07:54  |  발행일 2014-03-25 제30면
[취재수첩] 진정한 ‘홍익’은 ‘공감’에서부터

얼마 전 한 지인이 기자에게 물었다. “경북 경찰이 ‘홍익(弘益)’을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지. 좋은 뜻이니까 슬로건으로 했겠지.” 기자가 답했다. 그러자 지인이 코웃음을 쳤다. “청장이 심취해 있는 단학의 이념이 ‘홍익’이거든. 그 때문에 부하직원은 많이 괴로워.”

권기선 청장 취임 후 경북경찰은 마치 ‘홍익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홍익경찰’ ‘홍익치안’ ‘홍익 사랑나눔’…. 경북경찰청 간부의 기고글 주제도 온통 ‘홍익’이다. 그런데 그 ‘홍익’의 출처가 따로 있단다.

취재를 위해 꽤 장시간 자료 조사를 했다. 비위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납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수련법의 일종인 단학은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엔 추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분명한 것은 몇몇 단체가 조직화돼 단학 및 홍익인간 이념 보급에 애쓰고 있다는 것. 조사 결과, 실제로 권 청장은 단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고, 지난해엔 단학 관련 인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권 청장의 취미생활은 경북경찰 내부에 빠르게 전파됐다.

간부들이 단학 관련 책을 구입하는가 하면, 관련 단체를 방문하기도 했단다. 일선 경찰서는 잇따라 단학 수련 단체 관계자를 초청해 특강을 하고 있다. 지난달엔 경북경찰이 주도가 돼 뇌교육을 청소년 문제 치유에 도입하는 협약이 맺어지기도 했다.

‘단학’이나 ‘홍익’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장(首長)의 사사로운 취미가 경북경찰 전체의 슬로건이 되는 것, 그로 인해 특정 집단이 돈을 벌 기회를 얻고, 이런 과정이 전체 직원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민은 내막도 모른 채 ‘홍익경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 문제가 명확해졌다.

자료 조사를 끝내고 권 청장을 상대로 취재를 했다.

“단학이나 홍익 이념 보급 때문에 직원의 불만이 있습니다. 알고 있나요?” 이에 권 청장은 “한 번도 직원 앞에서 단학 이야기를 한 적 없다”며 갑자기 질문의 요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성, 단군, 김구 선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는 바람에 기자는 끼어들 틈도 얻지 못했다. 참 독특한 취재였다.

기사가 나간 후 다수의 경북경찰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청장이 오해할까봐 밝히지만, 기자는 종교가 없다. 특정 종교에서 비롯된 반감이 아니라 지극히 객관적 시각에서의 문제 제기였다.

짐작건대 경북경찰청장이란 자리는 분명 쉽지 않은 자리일 것이다. 모든 직원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경찰로 이끌고 싶은 청장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의욕과 강요에 앞서 경찰, 더 나아가 지역민과의 ‘공감’이 우선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노진실 2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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