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어거스트:가족의 초상·론 서바이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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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04   |  발행일 2014-04-04 제42면   |  수정 2014-04-04

어거스트:가족의 초상 (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불륜·출생의 비밀…할리우드에도 막장 드라마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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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막장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국내 드라마 얘기가 아니다. ‘어거스트:가족의 초상’(이하 가족의 초상)은 불륜과 외도, 근친상간, 언어 폭력, 그리고 출생의 비밀까지 국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막장 코드가 골고루 녹아 있는 할리우드판 막장 드라마다. 막장에 동서고금이 따로 없겠지만 이들 가족의 얽히고설킨 인물관계부터 허를 찌르는 설정과 구도를 접하면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에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메릴 스트립, 줄리아 로버츠, 베네딕트 컴버배치, 이완 맥그리거, 샘 쉐퍼드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숨이 벅찰 정도다. 이 영화의 어떤 매력이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들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8월의 어느 여름날, 아버지(샘 쉐퍼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오랫동안 소원했던 가족이 미국 오클라호마주(州) 오세이지 카운티에 모인다. 가장 먼저 근처에 사는 둘째 딸 아이비(줄리엔 니콜슨)가 달려오고, 큰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가 남편(이완 맥그리거)과 딸 진(아비게일 브레스린)을 대동하고 멀리서 찾아온다. 막내딸 캐런(줄리엣 루이스)도 나이 많은 약혼남 스티브(더모트 멀로니)를 장례식에 데려온다. 하지만 이 가족, 왠지 불안한다. 오랜만의 가족상봉이건만 어색하고 냉랭한 기운을 넘어 언제라도 폭발할 듯 폭풍전야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다. 그 시한폭탄의 뇌관은 구강암에 걸린 엄마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이다. 약물 중독에 남편의 자살까지 겹쳐 그녀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언제나처럼 가족 모두에게 독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한다.

교수인 바바라는 그런 엄마가 못마땅해 연락을 끊다시피 했다. 사실 그녀도 말 못할 속내가 있다. 역시 교수인 남편 빌이 젊은 여자와 바람나 별거 중이고, 사춘기 딸은 반항적이다. 그런데 아빠는 자살했고, 엄마는 여전히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온다. 하지만 기가 막힌 이들 가족의 흑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운데 묵묵히 엄마를 돌봐주고 있던 아이비는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았지만 가족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마음 둘 곳 없던 그녀에게 유일한 힘이 되어준 건 사촌 리틀 찰스(베네딕트 컴버배치)다. 사촌 간의 힘든 사랑에 빠진 아이비와 찰스는 그래서 뉴욕으로 떠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더 기막힌 건 두 사람이 이복남매라는 점이다. 캐런은 또 어떤가. 남성편력을 자랑하던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데려왔지만, 호색한인 그는 캐런의 어린 조카에게도 접근해 치근덕댄다.

이런 징글맞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이후 벌어질 상황은 대충 짐작하고도 남는다. 역시나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밝혀지는 기막힌 진실들을 마주한 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슬픔도 잠시, 마치 원수를 대하듯 서로를 헐뜯고 가시 돋친 설전을 펼친다. 시종 비아냥거리는 태도와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엄마의 행동을 참다못한 바바라는 엄마와의 육탄전까지 불사한다. 신기한 건, 보통의 가족들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낯선 상황들이지만 마치 우리 주변의 가족들을 보는 것 같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서로의 상처를 들춰내고 남보다 더하게 죽일 듯이 싸우지만, 다시 화해하고 상처를 봉합해갈 수 있는 가족이라는 굴레, 또 현대사회의 가족관계와 가족애의 씁쓸한 초상을 되짚게 만든다.

‘가족의 초상’은 트레이시 레츠의 희곡 ‘어거스트: 오세이지 카운티’를 원작으로 했다. 토니상 5개 부문을 포함해 퓰리처상, 뉴욕비평가상, 드라마데스크어워드 3개 부문을 수상했던 작품이다. 특히 영화는 완벽에 가까운 캐스팅으로 절반의 성공을 이뤘다. 연출을 맡은 존 웰스 감독의 말마따나 “축복”인 셈이다. 덕분에 위트가 녹아있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물론, 각 캐릭터의 다층적인 심리와 개성을 살려낸 흥미로운 결과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론 서바이버 (장르:액션 등급:15세 관람가)
탈레반 향해 총겨눈 네이비실…정적 속 긴장감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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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미 해군은 탈레반 부사령관 아마드 샤를 제거하기 위해 네이비실 대원 4명을 투입한 ‘레드윙 작전’을 펼친다. 아마드 샤는 휘하에 150~200명의 병력을 상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전을 위해 마이클 머피(테일러 키치) 대위 지휘하에 3명의 하사관이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 투입된다. 정찰 전문 매튜(벤 포스터), 통신 담당 대니(에밀 허시), 의무병이자 저격수 마커스(마크 월버그)가 그들이다. 이들은 여러 시간을 헤맨 끝에 샤의 본거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은폐가 가능한 적당한 장소를 찾아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무를 베기 위해 산으로 올라온 3명의 양치기에게 노출된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대원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전수칙에 의하면 이들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을 풀어준다면 자신들의 존재가 적에게 알려질 수 있다. 대원들은 곧바로 이들을 죽일지 살릴지 여부를 놓고 논쟁에 들어간다. 결국 머피 대위는 양치기들을 석방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 선택은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론 서바이버’는 이 작전의 유일한 생존자인 마커스 러트렐 중사의 생생한 경험담을 수록한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마커스는 전우들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남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그가 유독 영화화를 반겼던 이유다. 이 영화의 매력은 외롭고 처절했던 그날의 격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상황을 영화적 장치보다는 실제의 상황에 가깝게 담아냈다. 압도적인 사운드와 배경음악을 일체 배제하고, ‘정적(Silence)’을 또 하나의 주요장치로 배치한 게 주효했다. 몸을 은폐한 네이비실 대원들이 총을 겨눈 채 적의 동태를 살피는 장면에선 바람소리 외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이 몇 초간의 정적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그래서 대단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사실적이다. 이 과정에서 미군의 전폭적인 협조도 이뤄졌다. 치누크, 아파치 헬리콥터는 물론, 해병대는 차량과 실제 해병대원들까지 지원했다. 덕분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사실감과 디테일이 스크린을 압도한다. 특히 네이비실 대원들이 적들의 집요한 공격을 피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은 압권이다. 몸이 굴러 떨어지면서 바위와 나무에 부딪힐 때 들리는 마찰음은 그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며, 그 공포감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레드윙 작전은 실패했다. 고도로 훈련된 최정예 대원들이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날의 작전은 미해군 특수부대의 작전 시작 이후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날이기도 하다.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치누크 헬기가 탈레반의 미사일로 격추돼 네이비실과 육군 특수부대원 16명이 전사했다. 피터 버그 감독은 이 점에 주목했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단지 숫자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그들의 안타깝고 용맹스러운 이야기가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길 원했다. 그 점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극한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끈끈한 전우애라 할 수 있다. 네이비실 대원들은 가장 두려운 순간을 전우를 지켜주지 못했을 때라고 했다. 총격전이 시작되면 자신보다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총을 쏘고, 그렇게 서로를 보호하고 지켜줄 때 어떤 확신이 생긴다고 말한다.

‘론 서바이버’는 제목 그대로 외롭게 혼자 살아남은 마커스의 고군분투에 주목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집에 온 손님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낸다’는 아프카니스탄의 ‘파슈툰왈리’ 전통도 언급된다. 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마커스를 보호해주는 굴라브와 그의 가족에 대한 묘사는 또 다른 감동으로 전해진다. ‘블랙 호크 다운’에 비견할 만한 끈끈한 전우애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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