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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리콴유 공공정책학원 연구원 인터뷰를 하기 위해 싱가포르국립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날 리콴유학원에서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전·현직 세계 중요 정치인과 학자들이 참석한 국제관계 포럼이 열리고 있었다. 요란한 경호나 검색도 없었고 다른 목적으로 들른 방문객도 출입이 자유로웠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동아시아 경제 고도성장기에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 4마리 용 중 하나로 이끈 탁월한 지도자로 고(故) 박정희 대통령에 비견된다. 유교적 권위주의에 기반을 둔 그의 강압적 통치는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인권 및 자유와 관련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박정희와 다르지 않다. 더구나 그는 31년간의 장기집권 이후에도 2대 고촉동과 자신의 아들인 리셴룽 현 3대 총리 체제까지 정치 자문 명목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여전히 하고 있는 생존 인물이다. 그럼에도 국립대학교에 그의 이름을 내세운 학원이 존재하고, 그의 명성이 많은 세계적 정치인과 학자를 불러모아 정책을 연구하고, 국제관계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떤 성인이라 해도 과(過)는 있는 법이다. 1958년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대약진운동으로 많게는 3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민을 굶어죽게 하고, 문화대혁명의 정치적 광풍으로 세대를 단절했음에도 마오쩌둥은 여전히 중국의 국부로 톈안먼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키 작은 대륙의 거인 덩샤오핑이 마오는 공이 7할, 과가 3할이라며 부정하지 않은 덕이다. 무릇 역사를 이끄는 정치가의 그릇이라면 그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에서 박정희컨벤션센터 건립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왜 논란이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마땅히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박정희의 이름은 내내 팔아먹으면서도 하지 않은 수십 년 터줏대감들이 야권 후보자의 공약에 딴죽을 건다면 그건 염치는커녕 낯부끄러운 줄조차 모르는 뻔뻔함이고 치졸함이다. 김대중정권의 공약으로 대구시민의 상처 운운도 비루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이명박정권 때는 뭘 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당연히 여권 후보자가 먼저 들고 나왔어야 할 일이다.
앞에서 리콴유학원을 먼저 든 이유가 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학원은 수천억원의 돈을 들인 호화로움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가 이룬 성장과 안정의 통치사상을 연구하고, 그의 명성으로 세계적 지도자와 지식인을 불러 정치 미래를 설계하며, 우의를 다져 국익을 도모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내실이지 번쩍거리는 껍데기가 아니다. 그것은 곧 실질을 숭상하고 검약을 실행한 박정희 정신이기도 하다.
장소는 이전하는 경북도청 자리가 맞춤하다. 박정희 정신이 시작된 곳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곳에 많은 예산에 연연하지 않는, 소박하나 미래정신이 담긴 국제회의장과 관리동만 우선 건립해도 된다. 그곳에서 매년이든 격년이든 박정희 통치철학에 관한 국제포럼을 열고, 개발도상국과 중진국의 성장정책, 세계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연구와 토론이 이어지도록 해 박정희가, 대한민국이, 그리고 대구가 국제 우호와 정책의 한 축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덧붙여 같은 부지 내에 대구 청년의 미래를 위한 창업인큐베이터 단지까지 만들어지면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세계적 명사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이끌어 그 미래가 더욱 밝을 것이다.
리콴유학원도 홍콩재벌 리카싱의 출연이 큰 몫을 차지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나서지 못하면 국민모금과 예산이 확보될 때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 지금껏 단번에 화려한 전시성 건물로 치적을 자랑하려는 자세였기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박정희를 종교로 내세우는 이들까지 있는 모양이다.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 사이비성 종교가 아니라 실질과 검약이 세계의 중심을 만든다.
김정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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