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꽃을 물었다’ 펴낸 박정남 시인

  • 김은경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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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4-21   |  발행일 2014-04-21 제23면   |  수정 2014-04-21
고통 없이 피어나는 꽃이 있을까
비탈진 생의 시간 보낸 후
비로소 삶의 진실 찾아가
사람이나 꽃이나 마찬가지
시집 ‘꽃을 물었다’ 펴낸 박정남 시인

‘매화 꽃잎에 베여/ 내가 붉은 줄을 알겠다’(‘매화 꽃잎에 베이다’ 전문)

박정남 신작시집 ‘꽃을 물었다’(시인동네)에서 가장 짧은, 그러나 시가 던지는 울림만큼은 그리 가볍지 않은 시이다. 시인은 “단 두 줄이 전부이지만 시집에 수록된 60여편 중에서 가장 쓰기 어려웠던 시 중의 하나”라고 고백했다.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유난히 꽃에 대한 시가 많다. ‘매화의 사귀’ ‘꽃자리’ ‘밤에 연꽃이 자는 걸 보러 갔다’ ‘인도의 꽃’ ‘족도리풀꽃’ ‘젤, 라, 눔,’ ‘망초꽃 판타지’ 등 제목만 읽어 보아도 벌써 꽃향기가 그윽하다. 시인은 “써놓고 보니 꽃에 대한 얘기가 많았을 뿐, 절대 꽃에 대한 시집은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상징적 의미가 담겼다고 할까요? 어려움, 불편, 고통을 겪은 후에 비로소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는 거잖아요. 끊임없는 동통 속에서 찬란한 꽃이 피는 것은 비단 자연에서만은 아닐 거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그늘지고 비탈진 생의 시간을 보낸 후에 비로소 삶의 진실을 찾아간다고 할까요.”

시집 ‘꽃을 물었다’ 펴낸 박정남 시인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이 묻어나는 시집 ‘꽃을 물었다’를 펴낸 박정남 시인.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시인의 깊은 사유와 시간이 응집된 이번 시집은 여성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성찰력이 돋보인다. ‘숯검정이 여자’ ‘명자’ 등 전작 시집에서 보았던 사회참여적 목소리는 다소 잦아든 대신에 둥글고 원만한, 서정적이고 언어미학을 고려한 시편들이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시의 형식적 측면에서도 단 두 줄의 짧은 시가 있는 반면에, 두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운 장편의 시도 보인다.

“어쩌면 이번 시집이 가장 ‘나’답다고 할까요. 예전 시집들이 말하고 싶은 주장들을 시를 통해 다소 강하게 내보였다면,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내 얘기를 하고 싶었고, 거짓 없이 솔직하게 저를 드러냈어요. 진솔한 마음으로 만들고 나니 아쉬움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 같아요.”

문학평론가 강동우씨는 이번 시집에 대해 무엇보다도 ‘그늘’에 대한 그녀의 감각과 성찰이 두드러진 시집으로 평가했다. 강씨는 “그녀의 시선은 버려지고 사라지는 것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들, 흉터와 그늘을 지닌 것들에 집중하면서 삶에 대한 애착과 사유의 진지성을 담보하고 있다”며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애환을 세심하고 감각적인 관찰로 잡아낸 광경이 진지한 성찰로 전화(轉化)하는 시들에서는 존재론적 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고 평했다.

박 시인은 작업을 할 때 유난히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쏟아붓기도 한다.

“소설가 김훈씨가 ‘칼의 노래’를 쓸 때 하루 종일 칼만 바라봤다고 합니다. 그냥 대충 봐서는 아무 것도 안 나오지만, 대상을 하루 종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사물도 조금씩 내게 문을 열어줍니다. 자기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갈 때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이 열리고, 또 그 길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독자와도 소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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